[Opinion] 꽃잎보다 불던, 당신 [문학]

깊은 사랑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걸 아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글 입력 2016.10.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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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을 진행하기에 앞서
작가의 최근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작품의 가치까지 평가절하하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생각에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책펴지.jpg
박범신 "당신"

 
사랑이라는 가치를 온전히 느끼는 데에 제약은 무엇일까. 나이, 물리적인 거리, 주변의 시선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은 서로 달리 흘러가는 사랑의 시간에 대해서 묘사한 박범신의 “당신”이라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박뱀시니니.jpg

 
 박범신은 1964년 8월 24일 출생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라는 작품으로 활동을 시작한 한국의 소설가이다. 그는 지금까지 “토끼와 잠수함”, “흉기” 촐라체”, “고산자”, “소금” 등의 4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고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수상경력과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별명으로 대중 앞에도 종종 모습을 비춰내 자신의 작품과 작가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현역 작가이다.


당신

개략적인 줄거리는 오랫동안 김가인이라는 남자를 마음에 품던 윤희옥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며 맴돌던 남편 주호백이 치매에 걸리게 되면서 펼쳐진다. 희옥을 지고지순으로 사랑하던 호백이 치매에 걸리며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게 되어 그동안의 시간 속에 혼자만 감춰둔 불만과 응어리들을 표출하면서 희옥은 그때서야 호백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며 남은 시간 사랑을 갚기로 결심한다.


시간의 이동

“당신”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짜임새가 잘 짜여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윤희옥의 관점으로 주호백을 떠올리며 마음의 시간대로 배열하여 과거의 사랑했던 남자 김가인, 자신을 사랑했던 주호백 그리고 윤희옥 자신 셋 사이에서 놓여진 자신의 감정을 서술한다.


장소의 이동

소설 머리 부분에 희옥은 치매에 걸린 남편 호백을 실종신고를 하고 미국에서 돌아온 딸 인혜와 호백의 과거가 묻은 장소를 찾아 다니며 회상한다. 사실 인혜는 김가인과 사이에서 나온 아이이며 혼전임신을 한 희옥을 받아준 호백이다. 자신의 인생의 뮤즈였던 가인, 그리고 자신을 태양계처럼 맴돌던 호백 사이에서 자신이 그들을 바라본 시각을 말해주며 다시금 호백에게 받았던 사랑을 곱씹는다.


사랑의 이동

호백이 치매에 걸린 시점을 기준으로 호백과 희옥의 비수평적 사랑의 관계가 뒤 엎어졌다. 치매에 걸리기 이전에는 항상 호백은 희옥에게 누나가 불렀고 친 자식이 아닌 딸 인혜를 더욱 아꼈다. 하지만 치매와 합병증으로 인해서 몸과 정신이 뒤틀어진 후부터 줄 곧 자신 속에 내제되어 있던 불만이 묻어 나와 극단적으로 이년, 저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고 호백의 간병을 희옥이 담당했다. 그리고 호백이 맨정신일 때에 비로소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둘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확인했고 그때서야 비로소 희옥은 지난 오랜 세월간 사랑에 있어 하수인이었던 호백의 마음을 느껴 진정한 사랑에 접어들고 얼마 남은 시간을 그 동안 못 채워준 사랑을 채우리라 결심한다.


홍매화

사실 희옥 역시 치매 환자이며 실종신고를 했지만 자신이 호백을 땅에 묻어버리고 인혜와 함께 호백을 찾아다닌다. 자신의 앞마당에 호백을 묻을 때에 홍매화나무를 위에 심는다. 이는 나이가 들어도 자신을 사랑한 젊었을 때의 청춘의 피가 여전히 호백의 피를 상징하는 청 매화를 생각하며 자신은 늙었지만 이제서야 사랑한다는 미안함과 앞으로 계속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에 홍매화를 심은 건 아닐까.





같은 시간을 살았지만 다른 시간에 사랑한 희옥과 호백을 보면서 이 책에서 희옥이 뒤늦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외친 “공평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야!”라는 글귀가 생각이 난다. 사랑에 있어서 이상적인 관계는 무엇일까? “당신”이라는 소설을 보면서 남녀가 아주 조금의 오차도 없이 같은 마음의 크기를 가지며 그에 대한 표현의 방식이나 횟수, 농도가 모두 일치하는 공평한 사랑이 정답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작가가 결국 자신이 받은 사랑을 되갚기로 결심한 희옥이 호백을 묻어버리고 홍매화나무를 심은 선택을 한 것은 단지 희옥도 치매에 걸려서가 아닌 사랑에 있어서 셈을 하여 더주고 갚는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사랑에 있어 수평적인 관계를 바라보되 비뚤어진 저울을 그저 받아드리며 함께 나아가는 사랑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오늘 깊은 사랑에 대한 잠잠한 고민이 밀려온다면 박범신의 “당신”을 읽어보는 건 어떤가. 그리고 책 속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농도 짙은 고민을 느껴보길.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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