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낳은 정이냐, 기른 정이냐 [문화전반]

글 입력 2016.10.2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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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말하는 ‘막장드라마’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출생의 비밀’이다. 왠지 저 가난한 남자주인공은 그를 괴롭히는 대기업 사장님의 아들일 것만 같고, 저 여주인공과 이 여주인공은 사실 집안이 바뀌어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왔을 것 같다는 추측들을 드라마를 보다보면 한 두 번씩 해보게 되기 마련이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유달리 주인공들의 출생의 비밀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것은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소재가 되어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몰아간다. 시청자들은 매번 똑같은 스토리에 욕을 하면서도 열심히 챙겨보는데 작가와 감독들이 이 진부한 소재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꼬박꼬박 시청률이 나와주기 때문이다.


가을 동화.jpg금사월.png
 
출생이 비밀을 다룬 대표적인 드라마들
가을동화(2000) 내딸, 금사월(2015)
 
 
 하지만 이런 ‘출생의 비밀’이 단지 이야기의 극적임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소재든 그것은 작가가 어떻게 다루고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나오게 되는데, 여기 ‘출생의 비밀’을 소재가 자아내는 의미에 좀 더 집중하여 현실적이고 담백하게 다룬 작품들이 있다.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작가 위화의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이다. 이 두 작품은 주인공들이 자신의 아이가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어떠한 계기로 알게 된 후 일어나는 행동변화를 그린 것으로 아버지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아버지가 된다.jpg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주인공 ‘료타’는 일류 건축회사의 엘리트 사원으로 다정한 아내 ‘미도리’, 6살 된 아들 ‘케이타’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부인과로부터 아이가 바뀌었다는 전화를 듣게 되고, 친아들을 키우고 있는 가정과 만나게 된다. 혈연을 중시하는 료타는 아이들을 바꾸자는 제안을 하고 그 때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어나간다. ‘허삼관 매혈기’에서 주인공 ‘허삼관’은 어느 날 큰 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부인 ‘허옥란’이 결혼 전 사고로 얻게 된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난 뒤 일락이에게 180도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허삼관을 그리고 있다.


허삼관.jpg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허삼관'(2014) 中


 두 아버지들에게는 기른 정보다 낳은 정이 중요했다. 료타는 기른 케이타를 낳은 친아들과 스스럼없이 바꾸고 허삼관은 기른 일락이와 낳은 이락이, 삼락이를 보란 듯이 차별한다. 이는아내들이 아이와 함께해 온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냉정한 그들을 비판할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버지였던 시간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차가웠던 그들도 결국 끝으로 가면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은 항상 아이들의 아버지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깨닫는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아이들의 무조건적이고 순수한 사랑이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고 따랐던 아버지가 바로 그들인데, 핏줄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가지고 놀라며 무심코 건네준 아이의 카메라가 자신의 모습으로 온통 가득 차 있을 때, 자신을 위해 지붕에 올라가서 곡을 하는 험한 꼴도 마다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을 봤을 때, 그들은 가슴으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또한 그 동안 아이들과 함께해온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쌓아나간 자신들의 사랑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식구라는 의미처럼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부대끼며 살아오며 그들은 이미 혈연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선 아버지가 되어 사랑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나.jpg
 
아빠를 부탁해.jpg
 
부자, 부녀 관계를 재조명하며 화제가 되었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SBS아빠를 부탁해(2015), tvN 아버지와 나(2016)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시작으로 ‘아버지와 나’, ‘아빠를 부탁해’ 등 몇 년 전부터 아버지에 대한 콘텐츠는 끊임없이 화제가 되며 제작되어 왔다. 자상함에서부터 어색함까지 다양한 부자, 부녀관계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은 조금 어설픈 모습으로 그려지는 부성애에 대한 면모를 재조명하며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왔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그램 속의 아버지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도 직접 배 아파 낳진 않았지만 자신의 어렸을 때와 똑같이 생긴, 똑같은 행동을 하는 자식들을 보며 끈끈한 혈연의 정을 느끼는 것은 공통적인 듯 했다. 그런데, 나와 닮은 내 피가 섞인 혈연관계라는 믿음의 끈이 싹둑 잘려나갔을 때의 부성애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해 두 작품은 대답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시간은 피보다 진하다고



[김현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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