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쩌면 아름다운, 지독히도 찬란한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10.2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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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아홉의 나는 굉장히 예민하고, 무척이나 사나운 사람이었다. 세상의 모든 웃음이 싫었고, 그 나이 때의 싱그러움이 증오스러웠다. 내게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어떠한 행복들. 나는 그 행복들이 내 목을 조르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더더욱 가시를 세우고 사람들 앞에 섰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선 먼저 타인에게 상처를 주어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그림을 전공하던 열일곱, 붓을 꺾은 열여덟, 소설을 쓰기 시작한 열아홉. 붓 대신 연필을 쥔 손은 어색했고, 어쩔 땐 참을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할지, 잘 할 수 있을지. 머리 속에 떠오른 모든 것들은 마침표 없는 문장들이었고, 답 할 수 없는 물음표들뿐이었다. 그때쯤 내가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는 책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나를 위로하기도, 내게 욕을 하기도 하면서 내 옆에 있어주었다. 글을 처음 쓴 것 역시 나를 아는,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아는 존재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나는 평생을 여기서 귀가 먼 체로,
눈이 먼 체로 그렇게 살아야 해.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처음 쓴 소설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하얀 방에 갇혀 혼잣말을 하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아무도 없는 하얀 방에서 계속해서 말을 한다. 아주 후에야, 주인공은 자신을 보고, 읽고 있는 존재가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독자이자 창조자인 "나"다. "나"와 주인공은 문자와 음성으로 대화를 나눈다. 우리의 종말은 내가 주인공을 마침내 죽이면서 끝이 난다. 이름 조차 없던 A4용지 다섯 장의 존재. 시작과 끝 조차 엉성해서 소설이라 볼 수도 없는 이야기는 요즘도 가끔 내 옆에 나타나 그 시절의 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임을 나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어쩌면 찬란했던"



 ​처음으로 주인공을 죽였을 때는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의 죄책감이 나를 덮었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내게는 손이 떨리고 밥을 먹을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열아홉의 내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당시의 내게 글은 강박이고, 희망인 아주 이상한 존재였다.
 당시엔 회색 같이 느껴지던 시간들이, 돌아보면 가장 찬란했던 때라는 것은 열아홉을 훌쩍 넘긴 후였다. 글을 쓰고 싶지 않아 회피하던 스물을 지나 나를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갈망에 영화를 만들던 스물하나를 넘어, 다시금 소설로 돌아온 지금까지. 지독히도 찬란했던 열아홉의 초상은 이제야 겨우 그 모습을 완성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어쩌면 찬란했던 나의 열아홉. 누구도 안아주지 않아 글로 숨어야 했던 나에게, 나의 찬란함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고하며 글을 마친다. 가을이 깊어진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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