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문화전반]

글 입력 2016.10.2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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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을 꿈꾸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완벽을 꿈꿔봤을 것이다. 다음날 한 숨 잤다가 눈을 뜨게 되면 나의 부족한 점들이 마법처럼 바뀌어져 있는 것을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도 있을까? 성적, 성격, 외모, 능력, 배경 등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을 한번쯤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현실에서 이 모든 것을 완벽히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어쩌면 본능적으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은 사람을 인식하고, 때로는 질투까지 하게 될 때도 있다. 이 질투심이 오히려 우리를 잡아 끌어주는 원동력이 될 때도 있지만, 우리를 잡아 끌어내리는 좌절감이 되기도 한다. 평생에 걸쳐 계속 일어나는 일이지만 나는 특히 청소년기에 완벽이라는 것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영광에 심하게 시달리곤 했고, 사춘기를 겪었던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뭘 해도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유아기의 환상에서 벗어나 다른 또래들과 모든 면에서 뒤쳐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을 때의 혼란, 좌절감도 그 중 하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이를 해소해주진 못하고 있다. 2006년 개봉해 600만 관객을 돌파해 화제를 끌었던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여주인공은 강한나는 성형수술을 하고 새로워진 삶을 산다. 코믹하게 그려내긴 했지만 결코 강한나가 성형수술로 아름답게 다시 태어나기 전 겪어야 했던 일들까지도 코믹하지만은 않았다. ‘엄마 친구 아들이라는 단어는 또 어떠한가? 엄마가 묘사하는 친구의 아들은 항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다. 이에 유래된 엄친아라는 단어가 유머처럼 퍼지기도 했다. 문학이나 드라마, 그림 속에 비치는 비슷한 예를 들자면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릴 때부터 다른 이들의 완벽함에 치이게 되고, 이는 당연함으로 삶에 자리잡게 된다. 이 때문에 에세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문구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축복인지, 외모 지상주의가 얼마나 흉측한 것인지 말한다. 하지만, 정말이지,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도덕적으로, 개념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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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뜬금없을 수 있지만, 고등학생 때 처음 본 미국드라마 글리 Glee”는 놀라웠다. 사실 이 드라마는 뛰어나다기 보다는 청소년층을 겨냥했기 때문에 때로는 고등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상상하는 범주를 넘는 경악을 금치 못할 극단적인 스토리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과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청소년들은 이런 드라마를 보고 자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주연 중 하나인 레이첼이 코 수술을 마음 먹었을 때 그녀의 친구들은 다같이 막았다. 친구들은 그 코 하나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간직해야 하며, 완벽하게 아름답지 않다는 것 때문에 되려 스타로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줄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비교적 큰 신체를 가지고 있는 여자 캐릭터 중 한 명은 레슬링을 하며 다른 또래 남자와도 맞먹는 실력을 뽐내고, 오히려 자신을 건드릴 사람이 없다는 것에 자부심과 자신감을 느낀다. 성 소수자 일지라도, 외모가 아름답지 않더라도, 대중과는 좀 다르더라도 아이들은 자신이 루저임을 자처하며 꿋꿋하게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이들에게는 공부를 못한다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모욕인 것이다. 영화 월플라워”,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등도 트라 우마, 폭식 증과 같은 것을 겪으면서도 결국 일종의 고정관념을 탈피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완벽을 강요당해왔고, 추구해보았고, 따라서 좌절해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완벽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들의 시선과 캐릭터들의 탈주와 몸부림에 찬사를 보내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완벽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살만하다는 건방진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꿈꾸고, 그로 인해 발전하고, 더 나아간 삶을 살기도 한다. 더 어려운 것은 저들처럼 사는 것일 것이다. 모두들 이미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라는 뻔한 교과서적인 내용은 익히 들어보았을 것이고, 이미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 우리는 좌절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자신에게 관대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이것을 발판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해 질 수 있길, 완벽함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사회가 바뀔 수 있길 희망한다.


[최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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