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굿모닝 광대굿 - 거나하게 취하리라

글 입력 2016.10.20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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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집단 The 광대] 2016 굿모닝광대굿_포스터_500mmx700mm.jpg
 

< 굿모닝 광대굿 >을 보기 위해 다시 찾은 남산. 그 날도 역시나 한옥의 고고한 자태는 조명과 함께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번 공연은 야외 한옥에서 진행되는지라 공연 관람을 위해 민씨 가옥으로 향했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으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밤이 되어 날이 더 차가워졌는데 야외 공연이 괜찮을까. 그냥 실내에서 공연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이런 의구심을 예상했는지 티켓 부스에서는 관객들에게 따끈따끈한 핫 팩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따뜻한 핫 팩을 손에 쥐고 한옥 앞마루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잠시 한옥의 야경을 감상했다. 왼쪽으론 남산 타워의 야경이 비추고 오른쪽 하늘엔 둥근 달이, 가운데 마당은 청사초롱의 불빛으로 은은히 빛나던 그 오묘한 조화. 신비스럽기까지 한 분위기에 나는 심히 들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공연. 

사는 것도 습관이요. 먹는 것도 습관이요. 자는 것도 습관이 되어버린 우리네 무료한 일상. 이 지루한 습관 너머 특별함을 깨우기 위해 3명의 무당들은 오늘 밤 모두 함께 저승길 예행연습을 해보자 제안한다. 굿판을 벌이기 앞서, 먼저 잡귀와 부정들을 빗자루로 싹싹 쓸어내는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저승사자들을 불러내어 그들과 함께 산 사람이 망자 체험을 하는 특별한 예행연습을 시작한다. 무당들은 공연 전 관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미리 섭외한 3명의 망자를 무대로 데려온 뒤 씻김굿을 벌인다. 

망자의 부정을 씻겨주어 저승으로 천도시키기 위한 제의. 저승사자와 망자. 무당. 굿.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한 편의 콩트처럼 풀어내 몇 번을 소리 내어 웃었는지 모르겠다. 굿소리를 하던 악사는 아버지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던 망자님에게 우지마라. 유럽여행을 가고 싶었다던 22살의 귀여운 망자님에게는 네 옆에 서 있는 녀석(저승사자)도 아직 유럽여행 한 번 못 가봤다. 좀 더 일하라. 판소리가 배우고 싶었다던 중년의 망자님에게는 명창이 되긴 늦었지만 지금부터 배우셔서 대회를 나가시라 넉살 좋은 입담으로 씻김굿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이 저승길 예행연습이 끝난 뒤는 축제나 다름없었다. 저승사자들과 무당들은 관객들에게 진짜 술을 나눠주며 즐거운 술판을 벌였다. 달이 떠오른 밤하늘 아래 마치 풍류를 즐기던 선비가 된 듯 홀짝 마신 술. 술이라면 질색인 나도 단숨에 들이킬 만큼 즐겁고도 신비스러운 분위기였다. 저승사자들의 말이 옳다. 이 술 한잔 들이키면 실패가 대수랴. 성공이 대수랴. 한 판 신나게 웃고 즐기면 그만인 것을.

이 즐거운 술판은 아침을 알리는 닭의 꼬끼오 소리와 함께 끝이 난다. 초록 꿈(무덤)으로 맺어진 인연들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저승사자들은 아침 햇살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산 자들이 맞이하는 특별한 아침. 그들은 저승의 초록 들판이 아닌 이승의 초록 들판으로 향한다. 또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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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굿’이라면 작두를 타는 무당의 신기 어린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만 굿의 종류는 의외로 굉장히 다양하다. 사람의 명과 복을 비는 재수굿,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행하는 치병굿, 죽은 이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저승 천도굿, 마을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굿 등. 굿의 진정한 의미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인간의 근심걱정을 털어버리거나 망자를 위로하는 한 바탕 축제인 것이다. 이런 굿의 의미처럼 축제와도 같았던 공연. 그 속을 채우는 내용 또한 해학과 익살, 유쾌한 입담이 가득했다. 술을 좋아하는 저승사자, 웃음이 터지던 망자들의 씻김굿, 산 이도, 죽은 이도 모두 위로 받을 수 있던 굿판. 죽은 이는 묵은 회한을 벗어던지고 저승길로 향하며 산 이는 희망과 성찰로 남겨진 삶을 맞이할 수 있으니 망자에게도 축제요. 산 자에게도 축제가 아닌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미신으로 치부되었지만 우리의 민속예술이나 다름없는 굿의 오락적인 모습을 가벼운 듯 가볍지 않게 표현해낸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굿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악기들인데 악기를 연주하던 악사들이 정말 인상 깊었다. 악사 단 두 명이서 가야금, 징, 꽹과리, 대아쟁, 태평소, 장구에 소리까지 했으니. 참으로 다재다능한 광대들이다. 사의 찬미를 개사한 부분이나 연등, 무당들의 붉은 쾌자, 검은 천을 달아 사용한 우산, 하얀 연기처럼 적절한 소품의 활동도 한옥의 아름다움과 굿의 기이한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 단언컨대 한옥에서의 야외 공연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도, 그 자리에 있던 관객들도 그 아름다운 분위기에 취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처럼 항상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재해석된 전통 예술을 보여주는 예술인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지난 번 공연에서도 느꼈지만 연희 더 광대가 보여주는 공연은 완성도가 높다. 연희자들 개인의 역량은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나다. 언제나 아쉬운 것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대중들의 반응일 뿐. 혹시라도 이들의 공연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무조건 추천해주고 싶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나 또한 앞으로 이들이 보여줄 작품들이 굉장히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다음은 또 어떤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들을 웃음 짓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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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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