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굿모닝 광대굿, 죽음을 맛보고 아침을 맞이하는 굿판

습관 너머 특별함을 깨우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광대들의 굿
글 입력 2016.10.20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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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공연리뷰는 전통예술이라는 다소 낯선 장르를 다루려 한다. 하지만 의외로 무겁지도, 어렵지도 않은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죽음을 '예비망자'라는 간접체험을 통해 풀어간다. 무당과 저승사자가 신명나는 노래와 춤으로 죽음을 맛보고,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굿판을 벌인다. 굿모닝 광대굿만의 특별한 6가지 굿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제대로 쓸어지고, 씻겨지고, 취해보며,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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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시오, 아침이오! 
습관 너머 특별함을 깨우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광대들의 굿 

먹어봐야 알고, 찔러봐야 알고,
넘어져 봐야 알고, 죽어봐야 아는 게 인간!
광대들이 무당과 저승사자 되어 살아있지만
사는 재미 모르는 이들을 망자의 세계로 데려간다.
망자들을 단장하고 씻기며 염라대왕 앞에 대령시킬 준비를 하는 무당들.

허나 저승사자 눈에는
망자의 꼴이 여간 풋내 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아까운 죽음은 뒤로 미루고
새 아침을 맞이할 망자를 위한 굿판이 벌어진다.
가짜 굿판 속에서 광대는 요란한 삶을
익살스러운 재담으로 읊어내고, 음침한 죽음을
신명나는 노래와 춤으로 몰아내며, 우렁찬 닭 울음으로
어제보다 재미나고 살맛나고 멋질 우리 인생의 시작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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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판을 벌이는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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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광대굿을 관람하다 보면, 
웹툰 '신과 함께', '죽음에 관하여'가 생각난다.
죽음에 대해 표현한 것이 그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소재를 웹툰보다 더욱 한국적이면서도 가벼운 분위기로,
'망자체험'이라는 간접체험으로 더욱 생생하게 표현한다. 

밤 거리 - 빗자루 거리 - 저승사자 거리 - 풋내씻김 거리 - 취기 거리 - 아침해 거리
굿모닝 광대굿만의 특별한 6가지 굿거리를 따라가다보면,
제대로 쓸어지고, 씻겨지고, 취해보며,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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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골한옥마을 민씨가옥 마당


남산골한옥마을의 민씨가옥 마당이라는 공연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정말 '민씨가옥'이라는 초롱불이 가득한 한옥의 '마당'이 무대였다!
그렇게 '죽음'이라는 특별한 소재의 특별한 '전통예술공연'을
특별히 '야외공연'으로 관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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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관람 전의 모습


낮에는 10월이라고 생각지도 못할만큼 더웠지만,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관람객들을 위해 준비된 핫팩과 남산골한옥마을과 공연의
개선을 위한 설문지와 볼펜을 받고 공연을 기다렸다.

청명한 하늘이라고 일러주며 푸른불을 뿜어내는 남산타워가 보이는
가을의 남산골한옥마을에서 감상하는 연극은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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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체험을 권유하는 무당


연극이 시작되기 전, 자리에 앉아 있는 관람객들에게
망자체험을 권유하는 무당 역할의 배우의 모습은 무서우면서도 친근했다.

망자체험을 하게 된다면,
사전 인터뷰를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공연 중 즉석으로 창을 하는 악사의 목소리를 통해
걱정과 한을 풀어내고, 왕생극락을 향해볼 수 있다!

혹여 망자체험을 하고 싶어도 못했다면, 아쉬워하지 말고
망자의 저승 예행길을 바라보며 연극에 더욱 집중하여 관람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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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너머 특별함

"남산골 신령이여, 이 무당도 사람들에게 신령의 기운으로 
습관 너머 특별함을 깨우치고 싶어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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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 예행연습을 위한 굿을 벌이는 무당들


"밤은 깊어가고, 굳게 닫힌 문 뒤로 하나 둘 불빛들도 꺼져 가는데,
어둠 속에서 갈 곳을 몰라하는 이들이여,
대낮인들 갈 곳을 알고 가는 이가 어디 있소.

그저 습관대로 
주식시장은 3시에, 은행은 4시에, 우체국과 주민센터는 6시에, 
야근은 부장님이 퇴근을 하셔야 끝나고,
젖먹이는 엄마는 퇴근 시간도 없고, 편의점은 24시간 연중무휴로다.
아이고, 그러다보니 사는 것도 습관이오,
먹는 것도 습관이오, 자는 것도 습관이다. 

하지만 습관적인 새소리도 없고, 습관적인 물소리도 없으니.
남산골 신령이여, 이 무당도 사람들에게 신령의 기운으로 
습관 너머 특별함을 깨우치고 싶어하오."

극의 초반부를 이끌어가는 무당의 대사는 
'평소', '일상'이라는 말로 포장되는 '습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대사였다.

'죽음'을 논하기 전에 돌아보는 우리의 '특별할 것 없는' 삶은
습관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 습관들 너머에 있는 '특별함'을
자연과 대비하여 인간 세상을 꼬집는 대사도 어떻게 보면
무당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싶었다.


죽음

"오늘 밤 이 골짜기에서
죽음 앞에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늘 초짜인 사람들이
특별한 주문을 특별한 주문으로 들어주기 위해
실전을 방불케하는 특별 예행연습을 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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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 예행연습을 위한 굿을 벌이는 무당들


이 세상에 오는데 순서 있어도 가는데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죽음 앞에서는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늘 초짜이다. 
주변의 부고를 접할 일이 드문 젊은 세대라면
더욱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일이 없다.
그러나 저승사자들은 말한다. 

"놀라지 말아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늘 곁에 있었잖아요, 모른 척 말아요"

이처럼 우리의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늘 잊고 사는 것이었다. 

굿모닝 광대굿은 평소에 잘 생각해 보지 않은 죽음을
슬프거나 무겁지 않게 풀어내면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혈연보다도 찐하고, 지연보다도 깊고
학연보다도 굳센, 꿈으로 맺어진 인연을 
동무라 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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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 예행연습을 도와주는 저승사자들


"망자들은 꿈의 열매를 맺고,
우리 저승사자들은 꿈의 열매를 수확하니 
망자와 저승사자는 저- 풍년의 꿈으로 맺어진 인연, 
동무 아니더냐"라는 저승사자들은 
망자체험을 한 이들을 비롯하여
관객들을 모두 사랑스러운 동무들이라고 부른다.

저승사자들은 또한, 
저승길 예행연습을 마친 망자체험자들을
돌려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우리가 빈손으로 돌아가지만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땐 
양손가득 열매를 따가지고 가련다. 
풍년의 꿈을 꾸는 
나의 사랑스러운 동무들이여, 
다시 또 만나는 그날까지
영글어라, 영글어라, 영글어라!"

굿모닝 광대굿에서 나오는 배우들은 마치
관객들을 향해 새롭게 소생할 힘인 '꿈'을
영글게 만드는 주문을 외운 것 같았다.

죽음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연극 관람이 끝난 이후에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살 것인지', '어떤 꿈을 꿀 것인지'
직접적으로 제시해 주지는 않지만,
각자의 답을 열렬히 응원해주는 힘이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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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연희집단 The 광대의 공연!
올 여름 '바람개비' 작품을 올리기도 했다 :)
'전통예술'이라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장르를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시키는 매력으로 입힌 뒤
무대에 올려 크고 작은 웃음을 지어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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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집단 the 광대


연희집단 The 광대는 풍물, 탈춤, 기예 등
민속예술을 업으로 삼는 젊은 예인들의 모임이다.
민중과 함께 하고 그들의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과거 유랑광대의 예술과 삶의 자취를 기억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연희집단 The 광대는 시시때때 터지는 웃음 끝에
마음이 넉넉해지는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 속에서 광대의 몸짓과 소리로
희비를 넘나드는 인간사를 위로하며 조롱하고,
옛 음악으로 모두가 어울려 흥을 주고받는 판을 벌이기도 한다. 

연희집단 The 광대는 예인으로서 전통예술의 가치를 존중하는 동시에
그것이 오늘 날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안겨줄 수 있는지 생각한다. 
그렇게 꾸준한 창작으로 시대에 작은 자취를 남기는 광대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이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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