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통의 존재, 아름답게 시들 것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10.0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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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내가 아주 작은 존재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작다’는 것이 ‘하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작다’고 느껴질 때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크게 느껴질 때이다. 나의 세상은 주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 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일상. 나 자신, 혹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들은 제 3자로 분류된다. 그리고 제 3자로 분류된 사람들은 나의 일상과 멀어진 존재이다. 일상에서 멀어진 만큼 그들은 나의 인식에서도 멀어진다.

   그러나 문득, 그들의 존재를 아주 강하게 인식하게 되는 때가 있다. 저녁,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창밖을 바라볼 때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수많은 승용차의 반짝이는 불빛들, 그 속의 운전자들, 그들은 모두 나처럼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 꿈을 꿀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고, 은밀한 일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모두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 그들이 향하는 곳은, 그들이 사는 세계이다. 낮 시간 그들이 무엇을 했든, 어떤 사람들을 만났든 우리는 저녁에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학생, 대리, 교수, 사업가, 딜러로 하루를 보내고 우리는 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불빛들의 대열을 볼 때, 난 타인이라고 생각한 그들과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이 자신을 중심으로 한 체계화된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주 작은 존재가 된다. 하찮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향하는 집의 무게 역시 나의 집의 무게와 같기 때문에. 평소엔 인식하지 못했던 그들의 삶의 무게 역시 내 삶의 무게와 같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는 그 순간 특별한 개체가 아닌, 아주 ‘보통’의 존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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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원 작가는 그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에서 아주 일상적인, '보통'의 우리네 삶을 그리고 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면 내가 아주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낌과 동시에, 그럼에도 특별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그의 산문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발췌해보고자 한다.



<해파리>

여기는 수족관.

28인치 평면 티비만한 작은 수조 안에 깨알같이 작은 해파리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유난히 활발한 몸짓을 보이며 물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 녀석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저 위에서 보면 결국 이런 것일 거야. 이렇게 작고, 단지 여러 개체 중의 하나일 뿐일 아무것도 아닌 삶“



   이 부분에서 우리들의 모습은 물 속을 부유하는 수많은 해파리들로 비유된다. 해파리들이 수조 속에 뒤엉켜 있을 때 우리는 그것들 각각의 모습을 명확히 파악해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의 삶을 ‘여러 개체 중의 하나일 뿐인 아무것도 아닌 삶’이라고 규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차창 밖의 수많은 자동차의 불빛들을 보며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기보다는 뭉뚱그려진 풍경을 바라보게 되듯이. 그러나 우리가 타인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다. 수조 안의 깨알같이 작은 해파리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한 아주 보통의 존재이지만, 수많은 사람들 중 특별한 한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대>

활짝 핀 꽃 앞에
남은 운명이
시드는 것밖에 없다 한들
그렇다고
피어나길 주저하겠는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면 오르막을 오르게 되고, 그러면 곧 내리막길을 만나게 된다. 모든 영화와 소설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사건이 소개되는 발단에서부터 절정을 거쳐 결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삶을 일대기적으로 본다면, 탄생의 순간 우리는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해 어느 순간에 이르면 죽음에 더 가까워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 순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많은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반복되는 사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활짝 핀 꽃은 다음 순간에 시들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석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날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채워져 있고, 피고 지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피어나며, 동시에 진다. 종종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보통’인 우리들의 삶은 앞서 말했듯 상승과 하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강은 다음 상승을 위한 발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피어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아름답게 시드는 것 역시 우리의 삶이기에. 아름답게 시들 수 있는 것은, 다시 아름답게 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수많은 사람들 중 아주 보통의 존재인 나를 위해.
그리고 또, 아주 보통인 존재의 아름다운 시듦을 위해.


[노혜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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