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런던] 길, 자전거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멋있게

글 입력 2016.10.04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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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런던]
글 그림 전채은
 
 


 
#4. 길, 자전거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멋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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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연극에 매료된 나만의 이유로 지금 막 이곳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사람들이 신기했고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은 물고기처럼 자유스러워 보였다.
독일 지하철역 사이 마다에서 오월의 꽃향기가 진하게 펴져나가고 있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생각을 방해 받지 않아서 좋다. 길거리의 풍경이 달라질 때 마다 나의 생각도 바뀌고 또 멈춰 서서 글을 썼다. 혼자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지만 새롭게 만들어지는 생각마다 가슴이 설레어 걷고 또 걸었다. 베를린 곳곳에서 내 생각을 발자국으로 남겨두었다. 그래서 4박 5일 베를린 여행이 더욱 특별했고 나만의 낭만이 깃들어 있는 곳이 되었다. 공연장을 혼자 몰래 빠져나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숨이 막히게 좋고 걷잡을 수 없게 좋지만 나만 알 수 있는 낭만이라고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나만의 낭만적 순간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고 나의 낭만을 위해 런던에 살고 여행을 떠나고 일을 하고 맛있는 음식은 만들어 먹는 거리고 말이다. 문득 든 생각이었지만 왜 내가 여행을 하고 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와 좋은 대화를 하는지 이해가 갔다.


베를린 지하철에서 내려 그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어김없이 김수영의 시가 생각났다. 문학을 좋아하는 나의 일상은 순간, 문득, 갑자기, 불현듯 시 한 구절, 한 문장이 하루 종일 따라 다닐 때가있다. 매미소리 한창인 뜨거운 여름 광화문 쪽으로 가는 지하철 출구 계단 앞. 반쯤 잠긴 차가운 그림자와 반쯤 잠식해버릴 것 같은 햇살의 힘겨루기 앞에서 그때도 갑자기 김수영의 시가 떠올랐다.
 
 
모든 진리는 평범하다.
요는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라도
아름다움을 보아야 한다.
항상 외국에 온 사람 모양으로 내 나라를 살고
외국어를 하듯이 내 나랏말을 하고
여자들을 모두 외국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 사이에서도 자유를 잊지 말고
슬픔 속에서도 환희를 잊지 말고

 -1958 제목 없는 유고시 중-
 
 
그리고는 그 시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김수영 시인이 왜 항상 외국에 나온 모양으로 살아가라고 했는지 말이다. 모든 것이 풍경이 되어 낯선 생각으로 다가 와다. 
 

 




 



#5. Berlin Ensemble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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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했던 공연장 향기였다. 생각 못했던 건 베를린에서 연극을 보려면 독일어를 이해 할 수 알아야 했던 것이다. 독일어를 모르니 무조건 일단 저녁공연 티켓을 사들었다. 간신히 스토리에 대해서 영어를 할 줄 아는 공연장 직원에게 들었고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공연은 우연치 않게 내가 제일로 좋아했던 ‘대학살의 신’ 이라는 영화가 희곡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못 알아들어도 내용을 아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막 사온 와인을 꺼내들어 마시면서 여기 이 공연장에 온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평일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은 관객들로 꽉 차있었고 그 중에 내가 한명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독일 연극에 매료된 시점은 베를린 천개의 연극이라는 책을 보고난 후 부였다. 때론 절제되고 상징적이며 그 속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무대에서 과감히 펼쳐내는 것이 좋았다. 그때부터 베를린에 가서 연극을 보는 것이 내 꿈이었다. 티켓에 나온 좌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무대는 단순했다. 노란색 튤립이 담긴 화병, 노트북, 책들이 책상에 정형화되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모든 것이 놓여있었다. 영화에서 나온 세트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연극만이 할 수 있는 요소를 잘 보여주는 무대디자인이었다. 극이 진행되면서 바뀌는 책의 위치 의자의 위치 배우들의 위치가 무대를 내려 보는 나의 입장에서 계속 바뀌는 그림책같이 보였다. 배우들의 몸짓으로 감정을 읽어 내려갔고 변화되는 환경에 분위기의 변화를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집중해서 공연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신기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 것을 관객들의 자세였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큰 공연장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집중해서 공연을 관람했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마음속에서 울어 나온 존경심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식을 줄 모르는 관객의 찬사를 뒤로하고 공연장 로비로 나왔다. 보이는 것은 공연장만의 로고로 만든 가방과 기념품들이었다. 우리나라 경우에는 공연 관련된 상품만 만드는 것에 반해 공연장자체에 대한 상품을 만드는 것에서 공연장에 오래된 역사와 자부심을 그 속에서 볼 수 있었다. 한참 뒤에서 로비로 관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 행복해 보였다. 빈와인 잔을 들고 나오는 모습, 그리고 거기에 담긴 향기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나 또한 행복했다. 한참동안 공연장에 서성이다. 예약한 숙소로 돌아 왔다.
 
 
 
 

처음으로 떠난 혼자 한 베를린 여행 - 전채은
 
 
 

[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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