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8월의 크리스마스, 죽음에서 삶 감각하기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9.2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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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적인 카메라가 담아내는 것은 정원과 다림의 거리감이다. 초원사진관은 정원과 다림이 가까워지는 장소지만, 정적인 카메라가 가져다주는 깊은 심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거리감을 극대화 시켜준다. 다림은 정원과 대화하며 사진관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정원은 뒤따라오지 않은 상태로 카메라에 잡힌다. 이 때 두 사람 사이에 놓여진 거리감은, 소파에서 정답게 이야기 나누던 장면과 대비되어 더욱 깊게 다가온다. 다림이 사진관 안쪽에 놓여있는 거울을 바라볼 때, 정원 또한 그 거울 안에 포커스가 나간 채로 함께 비춰진다. 이때 카메라의 깊은 심도는 그 좁디좁은 거울 안에서조차 다림과 정원의 거리감을 고요하면서도 분명하게 담아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이처럼 죽음을 비참하게 담아내지도 삶을 찬란하게 그려내지도 않지만, 그 둘의 미묘한 거리감을 통해 평범한 죽음과 삶의 생동감을 함께 감각하게 만든다. 죽음과 삶은 정원과 다림의 모습처럼 붙어있는 듯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다.


운동장.jpg


영화 중간 계속해서 등장하는 텅 빈 운동장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하는 정원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물리적으로 빈 운동장일지라도 정원에게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그와 어머니의 시간이 담겨있는 운동장인 것이다. 서사가 진행되며 나타나는 빈 운동장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여름이었던 운동장은 어느새 바람 부는 가을을 지나 눈 내리는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서사적으로 어떠한 역할도 하고 있지 않은 이 빈 운동장에 우리가 감정을 잠시 둘 수 있는 것은 빈 운동장에 쌓여있는 눈처럼 정원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정사진.jpg
 

정원과 다림의 거리감이 시각화되는 것은 그들의 사진을 마주할 때다. 정원이 스스로 찍은 영정사진과 정원이 찍어준 다림의 사진은 같은 배경에 같은 방식을 통해 찍어 낸 사진들이다. 하지만 정원의 사진은 즉각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다림의 사진은 삶의 생동감을 향해 나아간다. 둘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극단적인 차이가 그저 공허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텅 빈 운동장처럼 정원과 다림 사이의 빈 공간이 그들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림사진.jpg
 

정원의 스쿠터는 항상 무덤덤하게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과거의 시간(지원)과 현재의 시간(다림)은 자꾸만 그의 스쿠터를 불러 세운다. 그의 스쿠터를 불러 세운 것이 다림 뿐만이 아니라는 지점은, 그의 아쉬움이 다림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시간에 걸쳐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놀이공원에서 정원과 다림이 함께 벤치에 앉아있을 때, 뒤로 지나가는 화목한 가족들과 웨딩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은 단순히 정원이 다림과의 결혼을 꿈꾸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도달할 수 없는 미래의 시간에 대한 정원의 아쉬움이 투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토바이.jpg
 

우리는 서사의 빈 곳에도(우리는 정원의 병명, 다림이 저녁에 오지 않는 이유 등을 듣지 못했다)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가 정원의 죽음을 혹은 그들의 사랑을 설명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원의 시간들을 감각하게 해주는 이야기여서 일 것이다. 그 시간들은 앞서 말한 두 사람의 사진 속에, 초원사진관에서 느껴지는 두 사람의 거리감 속에, 혹은 텅 빈 운동장에 놓여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아름다움은 죽음을 숭고하게 그려내서도 삶을 예찬해서도 아닌, 죽음을 통해 삶을 감각하도록 하는 방식에서부터 다가온다.





#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8817 (네이버 영화)


조선호.jpg


[조선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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