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계와 언어가 관계를 맺는 방식 [문화전반]

글 입력 2016.09.2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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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우리는 언어로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에 대해 표현한다. 가령 그녀가 ‘이 붉은 장미는 정말 아름다워!’라고 말했다면 그녀는 언어를 통해 색채, 꽃의 종류,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나타낼 수 있다.

   한편, 언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언어에 의해 세계를 규정하고 제약하게 된다. 다시 한 번 그녀가 ‘이 붉은 장미는 정말 아름다워!’라고 말했다고 하자. 장미의 색은 언어에 의해 ‘붉은 색’으로 규정지어 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한 종류의 붉은 색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넓게는 분홍색과 자주색, 주황색으로부터 좁게는 명도와 채도의 미묘한 변화에 따른 다양한 빨간색이 모두 붉은 색 계열이다. 우리는 언어로 그 색상들을 세분화시켜 표현하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색상들을 언어로써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세계는 언어에 의해 표현되고 존재의 의미를 가지는 반면 언어라는 ‘창’에 의해 투과되고 제약된 세계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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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바라보는 ‘창’으로써의 언어는 각 나라의 문화와 환경마다 조금씩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색깔에 대한 표현이 굉장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영어에서는 노란색을 나타내는 단어가 ‘yellow’ 하나 정도인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노란색을 나타내는 단어로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샛노랗다, 누렇다’ 등 다양한 용어들이 존재한다. 이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들이 존재할 따름이지만 한국인이라면 이들의 차이에 대해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색상에 대한 감각어가 발달한 문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눈’을 표현하는 언어로는 ‘함박눈, 진눈깨비, 가루눈, 싸라기눈’ 정도가 있다. 그러나 눈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에스키모인들은 눈의 종류와 상태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구분하기 위한 약 24종류의 언어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언어는 생활하는 환경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발달하기도 한다.

   앞서 확인했듯 언어는 각 문화와 환경을 반영한다. 문화와 환경은 언어에 영향을 미치고, 언어는 그 문화와 환경을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언어와 문화의 관계를 분석한 벤자민 워프(Benjamin Whorf)는 언어는 단지 우리의 생각을 주고받는 기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생각의 형성틀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언어’라는 틀 안에서 사고하고 그에 맞는 인식체계를 갖추어 나간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언어 이전의 세계는 지금에 비해 구분이 없는 세계였을 것이다. 어떤 경우 언어로써 무언가를 구분하는 행위는 의미있고 꼭 필요한 일이다. 예컨대 에스키모인들이 눈의 종류와 상태를 구별하는 것, 열대 지역의 민족들이 그들에게 중요한 천연자원인 대나무를 7가지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그러하다.

   그러나 언어로써 무언가를 구분한다는 것은 단지 언어에서의 구분일 뿐 아니라 그것이 사고와 인지의 방식이 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가 사회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이른바 ‘수저계급론’이 유행이다. 개인의 노력보다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부모의 재산이 계급을 결정한다는 자조적이고 비판적인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수저계급론에 의하면 계층은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으로 구분된다.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에서부터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까지 그들의 계급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저계급론은 물론 부의 세습에 의한 불평등이 강화되고, 기회가 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단어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언어로 규정지음으로써 그러한 인식을 사회전반에 공고히 하게 된다. 기회가 없는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아닌 자조적 계급론으로 불평등한 사회를 구분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비판이 되는 동시에 우리를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를 통한 세계의 구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할 필요가 있으며, 사고와 인식 체계가 언어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노혜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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