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루나포토페스티벌 - 사진 한 장에 담긴 의미들

글 입력 2016.09.2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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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3일, 루나포토페스티벌 전시 관람을 위해 서촌으로 향했다. 혼잡한 점심시간을 지나서일까, 평일이어서일까. 첫 관람 장소로 정한 류가헌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복작거리는 환경을 싫어하는 나에게 이보다 더 좋은 행운이 어디 있으랴. 마치 아무도 모르는 아지트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 곳에서는 두 개의 전시가 열렸다. 하나는 성남훈 작가의 <불완한 직선>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재갑 작가의 <그림자가 일어섰다>였다. 나는 먼저 성남훈 작가의 전시부터 살펴보았다.





성남훈 - 불완한 직선(류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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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기존에 봤던 사진전과는 약간 다른점이 있었다. 액자에 사진을 넣어 걸어둔 것이 아니라 가로로 긴 종이에 사진들을 프린트해 색다른 형태였다. 그리고 어떤 사진들에는 작가가 직접 쓴 손글씨도 함께 있었다. 작가는 <불완한 직선>이라는 주제답게 난민들의 불안한 여정을 담백하면서도 인상 깊은 사진으로 담아냈다. 작은 보트를 타고 이주하는 난민들의 모습, 기차를 탄 어린아이들의 텅 빈 눈빛과 피곤으로 물든 부모의 모습, 어딘가로 계속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 사진 속 난민들이 향하는 곳은 세르비아와 레스보스섬이다. 내전으로 인해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들. 그들은 주로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등 발칸 반도를 지나 서유럽으로 유입된다. 

특히 이 레스보스섬은 유럽행 난민들의 첫 기착지이다. 그리고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를 지닌 섬이기도 하다. 여성 동성애자를 뜻하는 레즈비언의 유래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원전 6세기경 이 섬에서 태어난 사포라는 여류 시인이 존재한다. 여성을 차별하여 교육을 받기 어렵던 때, 사포는 소녀들과 함께 이 섬에서 생활하며 여성들을 교육시킨다. 그 과정에서 사포는 여성 동성애의 상징처럼 알려진다. 그리고 레스보스 섬의 여자를 뜻하는 레즈비언은 여성 동성애를 상징하는 뜻으로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레즈비언의 어원이 된 레스보스. 이제는 난민 문제의 상징이 된 섬이다. 사포처럼 포용의 마음으로 난민들을 받아들이던 레스보스 섬. 하지만 한 편에서는 불어나는 난민들을 감당하지 못해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벌어진 난민들의 테러, 집단 성폭행 등으로 더욱 차가운 시선을 받는 그들. 잘못된 범죄와 테러를 벌이는 난민들도 분명 존재한다. 나 또한 난민 문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주장에 일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여전히 내전으로 인해 사망하는 민간인들,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는 난민들, 인신매매범들에게 붙잡혀 성매매로 팔려 나가는 난민 여성들의 숫자가 범죄자들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 결국 그들이 결국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난민들을 양상 시킨 중동 내전의 책임에 과연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조건적인 배척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테러범들과 난민들을 동일시해 그들을 배척하며 국수주의, 인종차별로 흘러가고 있는 국제사회. 성남훈 작가의 사진은 이런 현실 속에서 난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좀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재갑 - 그림자가 일어섰다(류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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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향한 곳은 이재갑 작가의 사진전 <그림자가 일어섰다>였다. 바로 맞은편에서 전시되던 이재갑 작가의 사진들 역시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혼혈인 1,2,3세대들, 일본 내 조선인 강제 연행 지역과 관련된 유산, 베트남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로 인해 세워진 증오비 등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혼혈인들의 얼굴과 함께 찍힌 주민등록증은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방인 취급을 당하던 혼혈인들. 지금도 쓰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과거에 그들을 가리키던 단어들은 차별과 편견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는다. ‘튀기’, ‘잡종’, ‘깜둥이’, ‘흰둥이’ 등등. 

그렇게 침략을 많이 당했건만 ‘우리는 하나다!’ 라며 단일 민족을 부르짖던 우리의 유구한 역사. 야만적인 사고를 벗고 보니 창피한 줄은 아는지 이제 ‘우리는 이제 다문화 민족입니다. 모두 서로 사랑 합시다’ 를 외친다. 말처럼 되면 좋으련만. 혼혈을 혐오하던 문화가 이제는 이주민들에게 넘어가 명맥을 유지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예로 이자스민을 들고 싶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숱한 오해와 편견의 시선을 온 몸으로 맞던 여성. 그녀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 2012년도이니 작가가 혼혈인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던 20년전에 비하면 훨씬 최근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그녀의 기사에 달리던 다문화 혐오의 댓글들과 그리 호의적이지 않던 기사들. 예전보다 혼혈인들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들이 많이 나아졌지만 포용의 문화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하다. 

그리고 그가 쓴 책을 훑어 보다 베트남 전쟁에 관한 사진들을 발견했다. 한 쪽에선 한국군을 증오하는 증오비를 세우고 다른 한 쪽에선 베트남 참전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니 말 그대로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다. 그의 책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증언도 담겨 있었다. 한국군이 얼마나 잔인하게 민간인들을 학살했는지에 관한. 그리고 저절로 드는 생각은 일본이 우리에게 저질렀던 만행과 소름끼치도록 닮았다는 점이었다. 일본에게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우리가 저지른 만행은 축소하고 은폐시키는 모습은 씁쓸하다 못해 분노할 감정조차 사그라들게 만든다. 





통의통 보안여관 - 추적자;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다(서평주, 이우성, 홍진원, 신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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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진 마음으로 다음 장소를 향해 갔다. 내가 이 날 방문했던 장소는 총 3곳이다. 첫 번째는 류가헌, 두 번째는 통의동 보안여관, 세 번째는 길담서원이었다. 리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두 번째와 세 번째 전시는 짧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통의동 보안여관은 무려 80년의 세월을 간직한 장소답게 낡고 오래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 관람한 전시는 오래된 책이 주는 향기처럼 짙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임채욱 - 인왕산(길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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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인 탓에 오랫동안 헤매다 겨우 길담서원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와인과 함께 빙 둘러 앉아 한 명씩 돌아가며 책을 읽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실내에서 와인을 마시며 독서 모임을 하다니. 몰래 훔쳐보던 나도 같이 끼어들고 싶을 만큼 평화로워 보였다. 길담서원에서 열린 전시는 임채욱 작가의 <인왕산>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해서일까. 인왕산을 찍은 사진은 자세히 보아도 사진인지 작가가 그린 수묵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회화적인 느낌을 풍겼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덮인 인왕산의 모습. 이런 절경이 또 어디에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물은 자연이 아닌가 싶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수많은 의미들을 내가 온전히 담아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길담서원을 마지막으로 나의 루나포토페스티벌의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 다른 곳도 둘러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엇보다 단돈 3000원으로 이런 퀄리티를 가진 사진전을 관람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인 서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재미에 날씨마저 완벽했다. 평일이어서 그랬는지 사람들 또한 거의 없어 햇빛 쬐는 고양이마냥 만족스런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나만 아는 페스티벌로 남았으면 좋겠다.(소곤소곤)
하지만 그렇게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전시들이 많았다. 내년엔 부디 홍보가 잘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http://www.artinsight.co.kr)와 함께 합니다.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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