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게 가장 의미있는 속도, 멈춤- 서울 루나포토 페스티벌 시시 관광

글 입력 2016.09.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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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의미있는 속도,
멈춤
시시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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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매일 매일 수많은 길들을 걷고 있습니다. 의식을 하고 있든 하지 않고있든 ‘길’ 혹은 ‘거리’는 항상 주변에 있죠. 하지만 그 ‘거리’들 하나하나가 매일 의미 있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걷는 그 길거리는 목적지를 위해 거쳐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니 말입니다. 그저 얼른 건너야만 할 그 거리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항상 옆에 있기에 오히려 더 의미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이러니하다는 것 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의 당연함. 그 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바로 2016 서울 루나포토 페스티벌의 한 프로그램이었던 ‘시시관광’입니다.

  저는 처음에 시시관광을 듣고는, 그저 각자 일상적인 공간을 걷는 것이기에 관광치곤 시시하다, 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요. 여쭤보니 물론 그런 뜻도 있지만 관광이란 말 자체가 빛을 본다는 뜻이기에 시간(時)을 보고(示) 빛을(光) 본다(觀)는 의미 또한 있다고 하셨습니다.
 시시관광의 장소는 서촌이었는데요. 만약 버스를 타고 지나갔다면 15분쯤 걸릴 거리를 2시간에 걸쳐서각자의 시간과 속도로 걷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속도’인데요. 어딘가에 도착해야하기에 ‘내야만 하는’ 속도도 아니고, 아무 생각도 없기에 절로 ‘나는’ 속도도 아닙니다. 각자가 ‘원하는’ 속도. 타의에 의해서 내야만 하는 것이나 의지가 없이 나는 것과 원하는 것은 같은 듯 보여도 다릅니다.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의식하며 숨을 쉬지는 않듯, 길을 걷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하기에 좀처럼 원하는 속도로 걸을 기회는 없는데요. 시시 관광은 바로 그 점을 꼬집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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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하게, 각자의 속도로, 각자가 원하는 대로 서촌을 즐기기 위한 관광. 저는 약간 참가가 늦었기에 조금은 혼자 서촌을 관광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본래라면 목적지를 위해 그저 스쳐지나갔을 거리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니 어느 한 구석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저 어느 집 대문일 문이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혹은 숲속 비밀정원으로 통하는 문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허름한 기와집과 벽돌집의 조화는 기묘한 감상에 빠져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서울 한 복판으로 느껴지는 ‘서촌’ 한 가운데 있는 계곡, 숲은 알게 모를 해방감을 주기까지도 했습니다.

 물론 서촌이란 장소 자체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곳이긴 하지만…그보다는 제 마음 가짐의 차이랄까요? 제가 매일 걷는 저희 동네 또한 이런 속도로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늦었기에 시시관광의 앞부분은 놓쳤지만. ‘시시관광’을 위해 서촌에 왔기에, 그리고 혼자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감각. 이를 통해서 ‘시시관광’이 아니라 단지 저 스스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가짐의 차이에 따라서 ‘길’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를 느낀 듯 했습니다. 시시관광이 제 안에 있던 ‘길’의 정의-즉 ‘목적지를 향해 통과해야할 곳’이란 정의를 바꿔놓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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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합류한 시시관광의 대열. 처음에 저는 벅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치는 트라이앵글 소리, 에그쉐이커 소리. 어디선가 불어오는 비눗방울. 덜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거북이란 이름의 끌차. 시시하다고 했지만, 전혀 시시하지 않았거든요. 처음에는 그것들이 마냥 신기해서 관광이란 목적도 잊고 비눗방울만 쫓거나, 끌차만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자, 그들의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는 의미는 평범한 특별함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그저 제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춰서 이곳 저곳을 바라보는 이 관광의 형식은 어찌보면 ‘평범’했습니다. 원하는 속도로 것는 것 자체가 일상적이진 않지만…그러면서도 기묘하게 일상적인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거기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것이 트라이앵글 등의 악기소리와 비눗방울이었습니다. 이곳 저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에선가 날아오는 비눗방울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트라이앵글 소리가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말입니다. 아주 특별하진 않지만, 너무 평범하기에 더욱 크게 다가오는 그런 특별함. 늘상 걸었을 평범한 공간을 특별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시시관광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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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시관광은 따라야할 속도도, 지켜야할 룰도 없었지만. 단 한 가지 ‘관광’같은 점이 있다면 주요 스팟에서 해주시는 설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요 스팟은 보통 관광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모두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곳’도 있었지만, 그보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곳’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윤동주 하숙집, 은 모두가 ‘윤동주’라는 시인을 떠올리는 등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시시관광의 스팟 중 하나였던 ‘큰 계단’은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느끼지 못할 곳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기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 더더욱 크게 다가오는 곳. 

 배민경 작가님은 이 계단이 ‘어디로도 통하지 않기에’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누군가는 그게 무슨 ‘길’이고 ‘계단’이냐 할 수 있겠지만…저 또한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다는 그 말에서 뭔지 모를 울림을 느꼈습니다. 어디로도 통하지 않기에, 외려 온전히 내 것인 듯한. 온전히 제 길인 듯한 알게 모를 기분. 

 스팟 중에 하나였던 우물집에서는 ‘시시관광’ 프리뷰의 사진이 짤방 형식으로 전시되고 있었는데요. 지금 저희를 찍은 사진도 이 장소에 이런 형식으로 전시 된다는 말을 듣고 묘해졌습니다. 정말 이곳에 저희 시간을 담아둘 것만 같은 느낌. 우리들의 시간 또한 전시 될 거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프리뷰때의 그 사진이 더욱 인상 깊게 느껴졌습니다. 그저 사진,이 아니라 그들의 시간을 엿본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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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이 얼추 끝난 후 다같이 둘러 앉아 이야기 할 시간이 있었는데요. 모두가 각자의 속도와 시간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관광을 시작하기 전에 약간의 요구 사항이 있었는데요. 바로 자신의 ‘시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을 하나 가져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시간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제 티켓북을 가져갔었습니다. 공연을 즐겼던, 전시를 향유했던, 어딘가를 여행했던 제 시간들이 티켓북엔 낱낱이 담겨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그저 제 소중한 시간들이 담겨있다, 는 것 빼고는 큰 의미가 없이 가져갔었습니다.

 그런데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어떤 분이 ‘멈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시시관광에서 어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각자가 ‘멈췄던’ 시간들일지도 모른다고. 걷다가 잠시 멈췄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가는 것이 생겼다는 것 아니겠냐고. 멈췄던 그 순간들이야 말로 의미 있는 것 아닐까 싶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티켓북은, 제가 멈췄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시간은 소중하고 각각의 의미를 갖지만. 그래도 일상적으로,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 그 순간들 속에서 ‘특별했던’ 순간들. 제가 제 시간을 할애하며 행복해했던 그 순간들. 제 인생에서 멈췄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시시관광으로 따지자면 티켓북의 한 장 한 장의 티켓은 제 인생에서의 어떠한 ‘스팟’들이었습니다.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순간들. 제 얘기를 하다보니 티켓북 내부를 보여달라 하셔서 쭉 훑어서 보여드렸었는데요. 저 또한 새삼스레 그 한 장 한 장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한 장 한 장이 더더욱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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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관광은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지만, 제 안에서의 시시관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집에 오는 길 하나하나가 제게는 다 ‘관광’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멈춤’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되었습니다. 멈춤, 누군가는 의미 없고 허비하는 시간이라 부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그 시간. 

 그리고 제 멈춤은 문화예술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취업준비를 위해서 달려야 할 그 시간에 뭘 하느냐고, 너 좋은 거에만 너무 치중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던 그 시간. 남들이 보기엔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제겐 너무도 소중했던 그 순간 순간들이 제 멈춤이었습니다. 바쁘게 달려가는 삶 속 제가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 제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시간, 제게 특별한 시간들.

이제 티켓북을 바라보면 ‘제가 멈췄던 순간들’이란 말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에 있어서 더더욱 주저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서 제가 굳이 시간을 내고 멈추면서까지 사랑하고 관심가지고 싶은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니까요. 스펙, 취업 등 ‘남들의 속도’에 맞춰서 제 ‘멈춤’을 뺏긴다면 그거야말로 불행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시관광이 제게 알려준 가치는 두 가지였습니다. 제 속도로 걷는 것과, 멈춤의 가치. 앞으로 제 인생을 걸어나감에 있어서도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두 가치였습니다. 시시한 관광, 빛과 시간을 보는 여정. 제게는 시시관광의 이 두 가지 의미 중 두 번째의 의미가 더 와닿았습니다. 남들의 속도에 휘말리지 않을 자신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제 시간을 ‘보고’ 제 속도와 제 멈춤의 순간을 알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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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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