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재미있는 두 예술가의 인생 이야기『나의 사랑 백남준』

글 입력 2016.09.1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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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던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을 읽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빠르게 읽었다. 나는 분명 백남준이란 인물에 초점을 두고 읽을 줄 알았는데, 백남준만큼 구보타 시게코에게 큰 매력을 느꼈다.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마치 시게코가 되어 백남준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20090129000444_0.jpg▲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50818112&nidx=18113
(백남준은 워낙 물건을 잘 잃어버려서 큰 주머니가 달린 셔츠를 입었다고 한다) 


시게코가 말하길, 백남준은 고독한 예술가이며 외로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토록 빛나는 업적을 쌓았던 백남준은 이른 나이에 한국을 떠 세계를 돌아다녀야했다. 고향을 떠난 가난한 예술가가 성공했다는 것은 마치 드라마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백남준의 인생은 정말 한 편의 영화이자 드라마 같았다. 상상 속 인물이 아닌 현실 속 인물이지만 나에게는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비상한 기억력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건망증, 생각이 너무 빨라 말이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점, 원하는 게 생기면 상황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도전한 점 등 개성 있고 양면적인 모습을 지녔다. 

이런 백남준의 모습들은 왜 그가 비디오 아트를 탄생시키고 세계의 찬사를 받는 예술가가 되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해준다. 독서광인 것을 보면 지식과 생각의 수준이 꽤 높았겠지만, 사람들이 감당 못할 정도로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성격 또한 공존했다. 나는 백남준을 보며, 창의적인 사람에 대한 칙센트미하이의 글이 떠올랐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복합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명석하면서도 천진난만한 것, 장난기와 극기, 그리고 책임감과 무책임함이 혼합된 것(백남준은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를 날릴 정도로 유머감각이 있었다. 그리고 시게코가 애를 못 낳자 결혼을 결심한 특이한(?) 책임감은 정말 재미있었다.), 또 반항적이면서도 한국의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향까지 지닌 것 등 모두 백남준과 일치하는 성향이었다. 시게코가 설명한 백남준의 양면성은 꽤나 간극이 커보였고, 백남준 스스로도 그걸 제어하기보단 오히려 발산하려고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 창의성 있는 훌륭한 작품을 내놓은 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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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아트센터를 다녀왔지만 백남준이 이렇게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는지는 잘 몰랐다. 백남준이 세상을 떴을 당시 나는 어렸고, 그때 TV에서 백남준을 추모하며 <다다익선>이란 작품을 보여줬던 게 생각난다. 
그런데 이 책 리뷰에서까지 백남준의 업적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부분은 검색해도 잘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백남준과 그의 동반자 시게코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의 삶의 여정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백남준이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지, 백남준 팬이 아니더라도 읽다보면 매우 재미있다.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보면 좀 심오하기도 한데, 막상 그의 성격은 유쾌하고 매력적이었다. 정말 별 일을 다 겪는구나 싶고, 이런저런 역경에도 대단한 일을 해내는 구나 싶다. 어쩌면 나와 너무 먼 사람일지도 모르겠지만, 굴곡 있는 타인의 인생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한국에서 오래 떠나있었던 백남준은 외국에서 많이 성장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한국을 잊어버릴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한국의 정신이나 문화를 좋아했고, 아파서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그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 역시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뿌리는 무시할 수 없나보다. 난 한국인으로서 괜히 연민을 느꼈던 것 같다. 영락 없는 한국인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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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백남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람은 아마 시게코가 아닐까 했다. 백남준 스스로도 말했다. 시게코가 없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책을 읽으며, 구보타 시게코도 만만찮은 매력녀이며 훌륭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시게코가 신문에 난 백남준을 보고 연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단 부분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시게코는 백남준이 점점 성장하며 조명을 받고 있을 때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백남준이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고 작품 생활, 투병 생활에 큰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백남준을 지켜보았던 시게코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시게코의 백남준을 향한 마음, 애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구보타 시게코의 작품은 잘 모르지만, 그녀의 생애만 보면 분명 그녀도 훌륭한 예술가일 것 같다. 점잖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던 일본 사회에서 드물게 주관을 확고하게 표현했고, 백남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중국 여자 같다고 했다. 나는 시게코가 백남준의 간병 생활을 하며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그녀가 정말 현명하고 열정적인 여자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커리어나 명예보다 더 소중한 존재에 헌신할 줄 아는 여자였다. 하기야, 그녀에게는 백남준과의 사랑 자체가 예술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시게코와 백남준은 서로가 있었기에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369_42_01.jpg▲ ▲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50818112&nidx=18113


사실 둘의 사랑이 부럽기도 했다. 젊을 때 만나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둘은 마치 인연의 끈이 이어져있는 것 같았다. 둘 다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예술을 했기 때문인가, 서로에게 애착과 정을 느낀 것 같았고 신뢰감도 갖고 있는 것 같았다.(물론 내 생각이다) 둘 다 비디오 아트를 했지만 견제하기보단 서로를 발전시켜주는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헤어지기 쉽다는 같은 분야 예술가끼리 끈끈하게 붙어있을 수 있던 것 아닐까. 둘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떨어져있기도 했지만, 함께 힘든 일을 헤쳐가며 열정적으로 사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한 가지 책을 읽고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시게코의 입장에서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서인지, 둘만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예상보다 많진 않다는 것이었다. 둘만 있을 때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싸울 땐 또 어떤지 좀 궁금했는데, 그런 상세한 일상 얘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다. 그들의 굵직굵직한 인생 이야기들을 설명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기대해서인지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감동적인데다 배울 점도 많아서 두고두고 다시 읽을 책이 될 것 같다.


[이해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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