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구보타 시게코의 이야기, 나의사랑 백남준. [문학]

글 입력 2016.09.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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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표지입체(고해상).jpg


[나의 사랑 백남준]
구보타 시게코/ 남정호
아르테/ 인쇄:2016.07.21/ 발행:2016.08.01


1. '비디오 아티스트'의 거장 백남준. 나는 비디오 아트가 어떤 장르인지, 백남준이 어떤 삶을 살았던 예술가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2. 백남준에 대해 몰랐던 만큼, 그의 아내이자 예술 파트너였던 구보타 시게코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3. 이 책이 자서전 형태를 띤 백남준 전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닌데다 다양하게 읽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어떤 틀 안에서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모르고 있었다. 다만 막연한 상상 속에서는 몇달 전 보았던 모노드라마 '그리워 그리워'에서 나에게 묘하게 사무치는 느낌을 주었던 정영숙 배우의 독백같은 절절하면서도 담담한 독백이 떠올랐다.


1-1) 백남준이라는 예술가는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등의 예술가들의 다음세대를 살았고, 비틀즈가 활동하던 시기에 뉴욕에서 활동하던, 자유분방하고 천재적이었던 사람이다. 부유하던 어린시절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확신으로, 도전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사람이고, 가진것이 하나 없어 방세도 제때 내지 못하는 가난한 예술가이던 시절에도 그 확신 하나만은 변함이 없던 사람이다. 당장 이달 방세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돈이 생기면 작품을 위한 재료(비디오 아트를 위한 TV 등)를 구매할 정도로 마이웨이를 달렸던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부러워했지만 이제는 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진부하지만 당연한 이야기는, 자기계발서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멋진 사람들'을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 새로운 길을 개척해내는 것,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한다.

  구보타 시게코 여사는 처음부터 말했듯, 백남준을 연인으로서 사랑하는 만큼 예술가로서 흠모한다. 책 전체에 걸쳐 그의 천재성에 대해 꾸준히 감탄하고 있다. 그녀의 말을 듣다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실제 본인과는 많이 다를지라도. 총명한 사람들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순발력이 뛰어나고, 입담이 좋고 재치있다. 백남준의 주위사람들은 그의 농담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린이같이 천진하면서도, 기발하고 독창적이며, 때로는 총명하고 심오하고 날카로운 사람. 고집이 있고, 확신에 차 있으며, 무모하기도 하고 때로 의기소침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천진하고 유쾌한 사람. 이 내가 이 책을 읽고 얻은 그에 대한 첫인상이다.


2-1) 구보타 시게코 여사는 백남준 선생님만큼이나 열정적이고 천재적인,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이든 작품이든, 어떤 대상을 좋아할 때 열정적으로 좋아해본 적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가 백남준을 처음 신문에서 접하고, 차차 실제로 알아가면서 그에 대해 느꼈던 흠모의 감정을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다. 방향도 정도도 각자 다르니 전부 이해한다고는 말 못하지만. 굉장히 보수적이고 무거웠던 1950~60년대 일본에서 자라며 그토록 개방적일 수 있었던 것도, 꿈을 쫓아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고 혈혈단신으로 외국땅을 찾아갈만큼 용감했던 것도, 꿈이자 사랑이었던 사람의 옆에 서기 위해 적극적이었던 것도, 그  사람과 계속 함께 있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스스로를 갈고 닦았던 그 모든 과정이 아름다운 것 같다.

  백남준이 샬롯 무어맨과 했던 퍼포먼스에 속앓이했던 일이나, 백남준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적은 급여를 견디며 일하고 내조하는 모습에서 '희생과 모성애를 가진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스스로가 선택하고, 밀어붙이고, 아니다 싶은 길에서는 과감히 돌아나오기도 하며, 자신의 예술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에서 진취적이고 아름다운 면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책에서 내내 그녀는 백남준의 천재성과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야기를 읽을수록 그녀의 인생도 빛나는 느낌이다.


3-1) 나는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들려주는 백남준의 삶과 사랑, 예술'이라는 문구를 보고 이 책을 시게코 여사가 직접 썼다고 생각했다. 책장이 늘어서 있는 방 책상에서, 혹은 작품 몇 점이 두서없이 놓여있는 작업실 한켠의 책상에서, 사별한 남편을 회고하며 한자한자 글을 쓰고 있는 시게코 여사의 모습을 상상했었다. 물론 일본어로. 그런데 공동 저자로 되어 있는 '남정호'라는 분은 이 책에 어떤 기여를 한 것일까? 번역가일까?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을 직접 '쓴' 분이었다.

"2006년 뉴욕 특파원으로 백남준의 장례식을 취재하면서 미망인 구보타 시게코를 처음 만났고, 이후 수년에 걸쳐 뉴욕을 오가며 그를 인터뷰했다. 이를 바탕으로 집필한 [나의 사랑 백남준]에서..."
-[나의사랑 백남준] 저자소개/ 남정호

  허허. 그러니까 이 책은 기자이자 논설위원인 남정호 선생님이 시게코 여사와의 인터뷰를 한 편의 소설처럼 재구성해낸 글이다. 왜 소설처럼이라고 묘사했냐면 글이 정말 한 편의 소설처럼 와닿았기 때문이다. 원래 전기나 수기도 크게보면 문학의 테두리 안에 있으니 소설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게다가 사건 당사자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 제삼자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입장을 상상해 쓴 글이니 어느정도 작가의 상상력도 가미되었으리라.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어떤 사명의식을 가지고 하는 일인 것 같다. 이 사실을, 이 이야기를 세월에 묻히게 두지 않고 모두가 알게 하겠다는 진지한 사명감. 요즘에는 그보다는 특종거리나 자극적인 이야기에 취해 문제를 일으키는 기자들이 많아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과 본래 기자라는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가는 별개니까.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집착(?)이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기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성가신 참견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헤집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서론에서 저자 남정호 선생님이 말하길, 시게코 여사와 친분을 쌓고 나서 들은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는 "혼자만 듣기에는 너무나 귀중한 이야기"였기에, 백남준에 대한 이 생생한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자며 시게코 여사를 오랜시간 설득했다고 한다. 그게 굉장히 묘한 느낌을 준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그냥 마음속에 품고 가려고 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내가 잘 모르던 두 사람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으니 감사하지만, 시게코 여사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스스럼없이 백남준 선생님과의 일화를 이야기해주신 걸 보면 싫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예상만 해본다.

  나는 이 책이 구보타 시게코가 쓴 '백남준전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 읽고나니 이 책은 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백남준과 함께한 구보타 시게코의 인생'이라는 느낌이 든다. 백남준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진 글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삶 그 자체가 주인공인 이야기. 실제로 읽어보면 백남준이라는 사람의 인생과 예술, 사랑 못지않게 구보타 시게코의 인생과 예술활동도 가득 들어있다. 특히 '사랑'에 대해서라면, 백남준의 사랑보다 시게코의 '백남준을 향한 사랑'이 철철 흘러넘친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예술에서 영향을 받고, 서로의 인생에서 영향을 받고, 함께 동고동락하며 서로를 빛내준 부부의 모습. 흰 종이 위에 쓰인 검은 글씨 속에 흘러갔을 무수히 많은 시간과 감정들과 노력들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타인의 인생이 이랬다 저랬다 왈가왈부할 것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지만, 책에서 표현된 두 사람의 인생은 멋있었다. 나도 생의 끝자락에서 되돌아봤을 때 지나온 길이 이렇게 가슴뛰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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