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도 찬란히 빛나는 그 사다리 위로 오르리라, 나의 사랑 백남준.

글 입력 2016.09.18 23:0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IMG_20160918_212248.jpg
 

이 책을 처음 서점에서 접하고 나서는, 부디 구보타 시게코의 희생이야기로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해소감은 책을 마무리짓는 시점에서 어느정도 해소된 부분이 있다. 책의 구성중에서 가장 잘 된 부분을 꼽으라면, 백남준의 작업 일대기를 중심으로 작품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갈 즈음에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가 나래이션을 해주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TV부처' 작업에서는 어떠했는지, 무어만과의 작업에서의 감정이야기나 존 케이지에게 하는 백남준의 편지 이야기 또한 좋았다. 전화번호부가 필요없을 정도로 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좋았지만, 막상 실생활에 정말 필요한 메모장과 같은 물건들은 종종 잃어버리곤 해서 큰 주머니를 달고 다녔다는 익살스러움과, 같은 예술가로서 아내에게 집중이 쏠리자 묘하게 기분나빠했었다는 아내의 시점에서 보는 백남준의 모습에서는 애정 그 이상의 사랑이 들어있어 읽는 내내 '애처로움'의 감정이 가득했다.

게다가 동양사상 중에서도 공자, 맹자와 같은 사람들의 사상을 좋아했고 한국적 샤머니즘을 잔치라고 여기는 그의 모습을 보고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무당과 같은 모습으로 예술적 영감을 얻는 형태로서의 무속신앙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늘 생각하건데, 예술적영감과 접신(신을 받아들임)의 형태는 풀어내는 마지막 부분이 다를것 같고 그 근본적성질은 같은 곳에 있음을 백남준을 보면서 느끼곤 한다. 언제부터 백남준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나 조차 알 수 없지만, 큰 텔레비전을 가지고 설치미술을 하는 전위적인 예술가로서 알고 있던게 전부였었다가 음악을 진지하게 접하고, 예술을 진지하게 공부하고자 마음먹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남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여다보게 되었던것 같다.  나로서는 당연히 흥미로운 사람일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직접 겪었던 그의 작품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 시대에 플럭서스,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을 한다는 예술가들의 나열에서부터 그러하듯이ㅡ존 케이지, 샬롯 무어만, 오노 요코와 같은 작가들의 이름과 그 이름이 나란히 쓰여질수 있는 사람이라는것에서부터 천재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의 전시를 쫓아다니면서 그가 클래식작곡,현대음악작곡을 전공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아놀드 쇤베르크, 힌데미트와 같은 작곡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알수 있었다. 음악으로부터 미술을 시작한 사람은 어떻게 자기자신을 녹여냈을까 당연히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그에게 빠져드는 시간이 잦아들었다.


tumblr_mvdzopwaS31syufapo2_500.jpg
 

백남준에 대한 이미지와 그의 성격에 대한 묘사, 말이나 평상시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나갈때에ㅡ사람(백남준의 경우에는 스티븐)에 대한 신뢰, 믿음을 잃어버린 후 예술가들이 가장 큰 상실감과 허탈함으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거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후유증 혹은 전과 같은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버리곤 하게 되는데, 그가 가장 의지했던 예술가 존 케이지 또한 그랬었고 백남준과 아내 또한 그 충격을 수습하고 스스로 위로했어야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세상 물정에 밝지 않은 예술가들을 이용하여서 그의 작품이나 천재성을 돈으로 사고 팔아오는 사람들은 늘 그들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유복하게 살아왔던 환경을 버리고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예술을 하기 위해, 자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내놓고 표현하기 위해서 안정적인 삶을 기꺼이 내던지는 그들의 삶은, 멀리서 보는 그림처럼 낭만적이거나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화가 이중섭의 작업 이야기가 생각이 나곤 했는데, 유복했던 배경을 다 내버리고 혼자 내려와서 작업을 해야 했을 시절, 돈이라는 건 스스로 벌어본 적 없었던 이들이 당장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길거리의 사생아마냥 버려졌을때에 과연 그들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가늠해본다. 애처롭고, 배고프고, 애닳프며, 안쓰러울 날들 속에서 그들에게 의지가 되어준 것은 그들의 아내들과 가족들이었다.

백남준의 언어습관에는 시인 이상이 떠오르곤 했다고 하는데, 부득이 이것은 나 또한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 중 하나였기 때문에 많은 공감이 갔다. 이상의 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주어가 빠져있거나 혹은 목적어가 빠져있거나 하여 문장을 이해하거나 그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ㅡ사람들은 그것을 그의 예술성이라고 받아들인다. 책에서의 묘사로는 '생각이 말보다 빨리 스쳐가기 때문에 미쳐 표현하지 못하여서 그렇다'고 쓰여있는데, 어떤 느낌일지 예상되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Portrait_of_Nam_June_Paik-by_Lim_Young-kyun-1981.jpg
 

흔히 말하기를 천재는 장르를 개척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는 천재들 덕분에 개념들의 프레임을 잡고서, 서로의 생각들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데 편리해졌을지 모르겠다. 백남준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천재라고 칭해도 과히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이 책에서 묘사하는 그의 작품과 주변예술가들, 그리고 그의 삶에서는, 그를 사랑하는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을 사랑하는게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는가 싶을 정도인 것이다. 요즘 하는 말로, '성공한 덕후' 이상으로 성공한 예술가가 바로 구보타 시게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녀의 든든하고도 믿음직한, 꾸준하고도 영원을 약속하는듯 사랑했고 헌신했던 삶이 바탕이 되어 백남준이라는 하나의 천재를 만들어내는데 큰 작용을 한 것 같다.
그의 작품이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에 더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지금 DDP(동대문디지털프라자)에서 또한 [백남준쇼]가 열리고 있다고 하고,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백남준아트센터를 방문해보는 시간 또한 가질 계획을 갖고 있다.


세상이 참 악해서 그리고 사람이 참 악해서 여기 눈 뜨고 있는 이 곳에 사랑이 있기나 한 건지, 믿을 수 있는 것들이 있기나 한건지 늘 의심하고 불안하지만ㅡ뒤샹의 묘비에 적인 말과 같이 어쨌든 죽는 건 늘 타인이다. 그의 옆에 늘 존재했던 한 사람이 세상에 불완전하지만 완전함을 닮은 사랑이 무엇인지 살아냄으로 꽃피워낸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람을 믿는 믿음, 신뢰, 사랑이 어떤 의미일지 계속해서 음미해본다. 사실은 백남준이 죽은것이지만, 우리가 보아야할것은 타인인 우리의 죽음이다. 죽음에 대한 의미는 또 무엇인가. 그가 타고 올라갔던 야곱에게 빌린 사다리인가.


[박유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