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필경사 바틀비 -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문학]

글 입력 2016.09.14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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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필경사 바틀비가 가장 많이 한 대답이다. 그는 뭘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하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인 책으로 변호사인 ‘나’가 주인공 필경사 바틀비를 관찰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850년대 뉴욕 맨하튼 남부에 위치한 월 스트리트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답게 빽빽하고 높이 솟아 있는 건물들, 회색빛 건조한 배경이 소설 속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회색빛 건물들 속에 변호사인 ‘나’의 사무실도 있다. 아직 기계화가 되지 않아 사람이 직접 손으로 글씨를 하나하나 써야했던 시대라 그는 필경사를 두고 일을 하는 변호사이자 고용주로 등장한다.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두 명의 필경사과 한 명의 잔심부름꾼. 첫 번째 사람은 터키라 불리는 환갑에 가까운 영국인, 두 번째는 25살 가량의 청년 니퍼즈, 세 번째는 12살의 어린 소년 진저 넛이다. 변호사는 업무가 늘어나 한 명의 필경사를 더 고용하는데 그가 바로 바틀비다. 그를 고용하고 며칠 뒤, 변호사는 바쁘다는 이유로 본인이 처리해야할 일을 바틀비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였다. 

그 후로도 변호사는 우체국에 가서 자신에게 온 편지가 있는지 없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바틀비의 업무가 아닌 다른 일처리를 요구하는 등 사적인 방식으로 바틀비를 대한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였다. 변호사와 다른 직원들이 당연하게 생각한 일들을 거절하던 바틀비는 그들에게 미친 사람, 별종 취급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변호사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문득 내 주목을 끈 것은 자물쇠에 보란 듯이 열쇠가 꽂혀 있는 바틀비의 닫힌 책상이었다. 
내가 무슨 나쁜 생각을 품은 것도 비정하게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도 아니야. 
게다가 그 책상은 내 것이고 내용물 또한 내 것이니 난 과감하게 안을 들여다볼 거야."


이렇게 그는 바틀비의 책상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엿본다. 그리고 그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멋대로 짐작하고 그를 해고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곁을 '안' 떠나고 싶다던 바틀비, 어떤 변화도 '안' 겪고 싶다던 바틀비는 결국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죽고 난 후 변호사는 바틀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본래 직업은 필경사가 아니라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에서 일하던 말단 직원이었는데 어느 날 행정부의 물갈이로 갑자기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가엾은 바틀비. 왜 하필 그가 물갈이의 대상이 되어 쫓겨났던 것일까? 그의 전 직장에서도 변호사에게 했던 것과 같이 부당한 요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에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해 왔던 건 아닐까. "싶다" 라고 이야기하던 그의 수동적 저항의 결과가 해고와 함께 죽음이라는 점이 씁쓸하게 다가온 소설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회사에서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에게 사적인 업무 지시를 하고 그것이 거절당하자 쉽게 화를 내는 변호사의 모습과 바틀비가 당한 해고의 모습이 한국의 상명하복적인 조직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소설보다 더욱 군대 문화가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닐까. 

OCE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평균 근로 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긴 근무 시간을 가진 나라이다. OECD 회원국 34개국의 평균 시간 1,766시간보다 무려 347시간 많은 일을 하지만 휴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연차 휴가는 8.6일로 전 세계 주요 22개국 중 22위의 최하위 수준이며 여름휴가 갈 때 눈치를 본 경험이 있다는 직장인은 79.3%나 된다고 한다. 회식과 야근을 강요하는 문화 때문에 퇴근 시간은 늦어지고 회식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불이익이나 상사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일은 아직도 허다하다. 직장 내에 성희롱이 발생해도 가해자보다 도리어 그것을 밝힌 피해자가 직장을 떠나게 되거나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근로자의 사생활 보장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밤늦게 업무 관련 카톡을 보내고 답장을 재촉하는 상사 또한 있다고 하니 소설보다 현실이 더 첩첩산중이다. 이런 한국식 수직 문화에 순응하지 않고 바틀비처럼 조금이라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외치는 이는 유난스러운 사람,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상사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평가 당하기 십상이다. 

이것이 비단 기업만의 문제일까. 사실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일 것이다. 정해진 틀 속에서 벗어나면 틀렸다 잘못됐다 이야기하며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살도록 자신도 모르게 강요하는 것.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를 외치기 너무나 어려운 사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죽삐죽 돋아나와 바틀비와 같이 자신의 결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함께 외치고 싶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아시아 경제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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