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맨부커상 스타, '살만 루슈디'의 파란만장한 13년 생존기 (문학상 에피소드 1)

글 입력 2016.09.0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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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책 한권이 있다. 그래, 문학계, 예술계를 넘어 정말 ‘세상’이 떠들썩했다. 살만 루슈디의 < 악마의 시 >. < 한밤의 아이들 >이라는 작품으로 맨부커상을 3번이나 수상해 그 이름만으로 이 시대 최고의 영예를 자랑하는 작가이지만 당시에 써낸 < 악마의 시 >로 인해 종교계가 야단나고 여러 나라가 얽힌 정치, 외교적 대치 상황까지 발생했으니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얘기해보자면, 영화 한편은 거뜬히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언론 매체에서도 당시 < 악마의 시 >가 일으킨 분란을 보도하기도 했는데, 영상은 아래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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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 다시보기 링크(1989):


  < 악마의 시 >는 1988년 9월 26일 영국에서 출판된 소설이다. 이슬람의 예언자이자 성사인 무함마드의 생애를 다룬 것으로, 이것이 극렬한 논란을 야기했던 것은 이슬람교에 대한 야유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장면들로 작품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었던 내용은 아마 소설 속에서 나오는 두 명의 창녀 이름이 무함마드의 열두 명의 부인 중 두 명과 이름이 같다는 점으로 보인다. (신의 외형을 희화화한 부분도 있고.) 때문에 당시 원리주의 이슬람계로부터 < 악마의 시 >는 그저 불경스러운 것 이상의 종교에 대한 반란이자 모독이었고, 결국 당시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였던 호메이니가 살만 루슈디를 처형하라는 ‘파트와(fatwa)’를 내걸게 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파트와’란, 이슬람의 종교적 의견인 것으로 법적인 판결이 아니지만 법 이상의 권위를 갖는 경우가 있다.) 그 시를 번역한 자들에게도 불똥은 튀었다. 일본 번역자는 살해당하고 이탈리아와 노르웨이의 출판인들이 중상을 입었다. 그렇게 루슈디는 십여 년간의 긴 세월을 영국의 보호 아래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밌는 부분은 13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살지도 못하고 가명(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조합하여 만든 ‘조지프 앤턴’)을 쓰며 전전긍긍 살면서도 루슈디는 어떻게든 기어이 이어지곤 하는 부단한 일상과 살만 루슈디, 즉,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자서전으로 말이다. 그 자서전의 제목은 < 조지프 앤턴 >.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각박한 시기를 보내며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쓰는 자서전이라, 그의 삶을 처연하고 가련하게 묘사할 수도 있고 그렇게 겨우겨우 살면서도 자신은 기어코 어떤 문학적 가치를 지켜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식의 영웅성을 부각해 전기를 쓸 법도 한데, 이 작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숨 막히는 살해 위협 속에서도 연쇄적으로 불륜을 일삼고 그 결과로 네 번이나 이혼을 하게 되는 전력, 돈과 명성, 자유를 향한 욕망, 쾌락에 매번 속수무책 지고 마는 철없음 등 자기 자신을 조롱과 희화화까지 동원해 극구 펼쳐보인다. 영국 경찰의 철통 경호와 빈번한 이사로 그 소동을 벌이며 지내는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의 이름이 아닌 가명으로 지내면서도 그는 이 책을 통해 살만 루슈디라는 인간이 지닌 그 자체로서의 존엄성과 미악(美惡)을 거침없이 까발린다. 이런 작가의 태도가 우스꽝스럽고 대책 없이 여겨지다가도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니, 바로 그 지점이 보는 이로 하여금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으로 귀결시킨다고 본다. 어쨌든 그 문학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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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용에서 문화예술계, 학계, 정계 유명 인사들을 실명 그대로 등장시켜, < 악마의 시 > 사태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왈가왈부를 활짝 펼쳐 보이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찬반논란부터, 문단의 저명한 이들이 비판과 옹호로 갈려 서로 맞서게 되기까지의, 인간사의 여러 군상들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에 못지않게 훈훈하고 감동적인 일들도 적지 않다. 미국출판협회와 미국서점협회, 미국도서관협회는 파트와 선고 일주일여 뒤 < 악마의 시 > 미국판 출간에 맞추어 < 뉴욕 타임스 >에 전면광고를 실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유인은 책을 씁니다. 자유인은 책을 펴냅니다. 자유인은 책을 팝니다. 자유인은 책을 삽니다. 자유인은 책을 읽습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국민정신에 입각하여 독자 여러분이 전국 방방곡곡의 서점과 도서관에서 언제든지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수전 손택, 노먼 메일러, 존 어빙,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저명 작가들은 물론 록밴드 유투(U2)의 보노 같은 연예계 스타들이 루슈디에 대한 위협에 발 벗고 나서는 모습도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영국 경찰이 루슈디에 대한 경호를 완전히 해체한 것은 2002년이 되어서다. 그제야 그는 마음껏(?) 살만 루슈디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13년이나 지속된 위협 속에서 그가 증명해 보인 것은 무엇일까. 그가 지켜낸 가치가 ‘자기 자신’이었을 수도 있고 ‘문학’ 그 자체였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렇다 하고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사상의 자유, 낭만, 사랑을 꿈꾸는 예술가들은 모두, 그들의 본능으로부터 발산되는 지긋한 예술적 추구로 인간 세계의 한정적 시야와 경직된 사고를 건드리고, 긴장시키고, 끝내 확장시키는 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다분히 ‘정치적’인 모습을 띄고 있어 비난받는다 해도, 루슈디처럼 평안한 삶을 훼손당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을 맞이한다 해도, 그들은 그저 자신의 역할을, 욕망을 수행함으로써 인간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더 열어보인다. 





<참고자료>
김연수, 「 소설가의 자서전이 스릴러물일 수밖에 없는 까닭 - 살만 루슈디, < 조지프 앤턴 > 」, Vol.22 No.2, 문학동네, 2015년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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