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홍상수의 영화 들여다보기 (3)죽음의 단상들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8.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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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는 종종 ‘죽음’의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그 죽음의 그림자는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인물들의 두려움으로부터 온다. 앞서 이야기한 <북촌방향(2011)>에서 느껴진 죽음의 이미지 또한 갇혀있는 시간 속에서 점차 사라져만 가는 과거를 감각할 때 느껴진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은 해원(정은채)이 써내려가는 일기를 따라간다. 그녀는 지속적으로 일기를 쓰다 잠이 든다. 우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해원이 도서관에 누워있는 것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데, 마지막 날의 이야기가 해원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녀의 마지막 일기 내용이 그녀의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꿈에 그녀의 욕망이 서려있음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꿈이 서글픈 이유는, 우리가 이것이 꿈이라고 의심하지 못했던 이유는, 욕망이 서려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깝고 처연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욕망은 ‘몇 년째 불륜을 지속하고 있는 아는 언니 커플처럼 되는 것’ 이나 ‘처음 만난 대학교수(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를 따라 도피하는 것’ 이나 ‘자신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남자가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것’ 마지막으로 ‘자신과 교수의 불륜 사실을 속 시원하게 동기에게 털어놓는 것’ 정도다. 영화는 그녀가 깨어나기 직전 읊조리는 나레이션 “깨어날 생각을 하니, 꿈에 본 아저씨는 전에 봤던 착한 아저씨 인 것 같았다” 으로 끝이 난다. 그녀의 독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저씨의 정체가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는 해원의 처연한 감정이다.


해원 잠.jpg
 

홍상수의 영화에서 꿈은 자주 등장하지만 해원의 꿈이 특별한 것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가장 희미한 꿈이기 때문이다. 이 꿈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에서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영정사진으로 시작된 꿈이나, <밤과 낮(2007)>에서 마지막 성남(김영호)이 돼지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 기괴한 꿈, <자유의 언덕(2014)>에서 영선(서영희)의 스산한 목소리가 들리는 모리(카세 료)의 꿈에서 나타나는 비현실성이 없다. 해원의 꿈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감정이나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으로 점철된 꿈이 아니라, 남다은이 “외로운 현실을 그렇게 꿈으로 구부리고 압축해서 재감각”한다고 지적 한 것과 같이 욕망이 반영된 ‘또 다른 현실’ 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그녀의 꿈(혹은 욕망)은 ‘외로운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현실과의 경계가 거의 없는, 현실이 사라진다면 함께 사라질 꿈인 것이다. 그녀는 현실과 맞닿아있는 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 꿈은 이제 사라질 순간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유의언덕.jpg

 
<하하하(2009)>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죽음의 이미지를 드리운다. <하하하>는 조문경(김상경)과 방중식(유준상)이 막걸리를 마시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며, 홍상수의 영화 중에서 밝고 활발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영화들 중 하나다. 이 밝은 분위기 속에서 죽음의 기운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를 나타내는 흑백의 스틸사진들(막걸리를 마시는 조문경과 방중식)과 그들이 회상하는 컬러영상의 생동감이 주는 극간 때문이다. 남다은은 이 두 시간의 차이를 두고 “과거의 기억을 받아 풍성해지는 현재는 여기 없다”고 말한다. 과거 인물들의 시간이 홍상수의 어느 영화보다 행복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수록 이를 받아내는 흑백사진과 그들의 나레이션으로만 이루어진 현재의 생명력은 그만큼 얇아진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 꿈과 현실이 경계가 없을 정도로 붙어 있기에 사라져가는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면, <하하하>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과거와 핏기 없는 현재의 경계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기에, 옅어져만 가는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하하 흑백.jpg

 
정성일은 “비평은 홍상수 앞에서 발을 헛디뎌왔다” 라고 말한다. 의미화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홍상수를 두고 비평이 벌여야 하는 작업은 반대로 그의 영화를 의미화 하는 과정이다. 정성일의 말처럼 홍상수의 영화를 비평하는 것은, 실패라는 결말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과정과 다름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비평계가 여전히 홍상수에게서 관심을 끄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나 대상을 새롭게 감각하려는 그의 시도 때문이 아닐까. 홍상수의 시도가 지속된다면, 나 또한 그의 사생활 보다는 그의 신작에 목마를 것 같다.


# 이미지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bi/pi/photoView.nhn?code=2040 (네이버 영화)


조선호.jpg
 

[조선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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