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치있는 예술에 대한 탐구, 연극 '단편소설집'

글 입력 2016.08.22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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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있는 예술에 대한 탐구.'  
연극을 보기 전에 프리뷰에 적었던 표현이다. 
연극을 보고나서 나는, 내가 고작 한 문장으로 정의해버린 저 문장이 굉장히 안일한 표현이었음을 깨달았다. 프리뷰를 쓸 때 가장 주의해야한다면 바로 이 부분일거다. 이 연극은 비단 가치있는 예술을 논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연극<단편소설집>에는 소중한 것들이 아주 많이 담겨있다. 그래서 이것들을 깡그리 무시했다고 해도 무방한 표현들로 극을 설명했던 내 지난 글이 부끄러웠다. 두 여성은 무척이나 가치있는 이야기를 전달했고, 그것은 창작의 과정을 넘어 필연적으로 공생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현세상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지표가 되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순간이 짜릿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온몸으로 흡수하기 위해 곰곰이 씹고, 씹고, 또 곱씹었다. 성장한 기분이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극을 온전한 문장으로 설명하기엔 여전히 어렵지만 그 느낌을 비슷하게나마 전달하자면 그렇다. 연극은 꽤 위험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표절, 이성과 감정의 영역 다툼, 그리고 관계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예술과 그 안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 그리고 그 사이. 그 사이에서는 끊임없는 논란이 인다. 그 틈을 좁혀보려는, 발끈한 자들의 고함과 유리한 마지노선을 정하기 위해 양 옆을 당기는 팽팽한 줄다리기 속 악, 나몰라라 하는 방관자들이 내뱉는 알맹이 없는 한마디들이 한 데 섞여 그럴싸한 소음이 만들어지면 그 속에서 진실은 하릴없이 묻히고 마는 것이다. 침잠하던, 그래서 정작 우리가 보고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들려주기 위해 두 인물이 무대에 섰다. 그들 사이에 묶인 고단한 갈등의 매듭.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는 과정. 그리고 이성과 감정사이에서 혼란해하는 그들의 감정분출이 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만든다. 누가 옳은 것인가. 대체 이 꼬인 매듭의 시작은 어디인가.


***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존경받는 단편소설 작가 루스 스타이너 
그리고 루스를 숭배하는 작가지망생 리사 모리슨.
      
리사는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던 작가 루스에게 가르침을 받게된다. 그리고 6년 동안 그녀의 밑에서 소설을 배우며 인정받는 작가로 데뷔한다. 단편소설집 출간 후 호평받는 작가의 대열에 오른 리사는 스승 루스와 시인 델모어 슈왈츠의 사적인 관계를 담은 장편소설을 발표한다. 자신의 인생이 제자 리사의 소설 소재로 쓰이게 된 것에 대해 루스는 분노한다. 예술가가 해야만하는 선택을 한 것 뿐이라고 주장하는 리사와 그런 리사를 용서할 수 없는 루스. 두 사람의 감정은 격앙되어만 간다. 스승과 제자에서 동등한 동료 작가로, 그리고 어긋나버린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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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스의 개인 작업실에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과 설렘에 가득 차있었던 리사와 인정받는 작가로 성공하기까지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할 친구 한 명 없이 외롭게 글을 써왔던 루스는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창작의 영역에선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엄연히 말하면 도둑질인 일을 불가피하다고 하는것도 우습지만, 소유가 강한 영역인데다 그것을 미묘한 차이로 남의 것인지 내 것인지 구분해야하니 예민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유독 작년과 올해, 문단에 이어 미술계까지 떠들썩했던 표절시비. 예술가들의 도덕적 성찰이 요구되는 부끄러운 일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표절과 대작이 많은 예술인들에게 상처를 주고있다. 루스와 리사도 마찬가지였다. 리사는 루스의 개인적인 삶의 한 부분을 자신의 소설 소재로 썼고 루스는 이에 분노했다. 하지만 리사는 말한다. 나의 모든 시작은 스승님이셨다고. 극의 도입부에서 루스는 리사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준다. 리사가 루스에게 자신이 쓸 다음 소재에 대해서 재잘재잘 이야기하려 할 때 루스는 리사에게 단호하게 소리친다 
"말하지마. 글로 써! 말로 내뱉으면 써야 할 이유가 사라져!" 
리사는 끌리는 이야기를 글로서 풀어낼 줄 알아야한다는 루스의 가르침을 기억했다. 루스는 리사의 작가인생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주 소중한 사람이었고 그녀가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감동했다. 그래서 리사는 "그는 가만히 냅뒀어야지.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고 내가 소설로 쓰지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는거야!" 라고 내지르는 루스에게  
"저더러 무자비해지라고 가르치셨잖아요. 무언가 내 눈을 사로잡으면 들어가서 쓰라고. 감정따윈 신경쓰지 말라고 선생님이 가르쳐주셨잖아요." 
라고 말한다.
모두 잘못했지만 누구도 잘못한 이가 없어 안타깝다. 루스는 스스로의 진심을 잘 모르는 채로 진실인 양 리사를 가르쳤고, 리사는 매 순간 글에 진실했지만 윤리적으로 어긋나는 일을 한 것에는 부정할 수 없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고 사제관계에도 동료관계에도 충실했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
예술과 예의는 같은 선상에 있어야한다. 넘쳐나는 정보와 탐나는 타인의 것들을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영감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기 것을 펼쳐내는 과정에서 영향을 주면 곤란하다. 잣대를 제시할 수 없는 문제니 철저하게 본인의 판단하에 예의를 차릴 수 있는 범위에서 걸러내어져야만 한다. 이것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예술의 본질인 '창작'이 더욱 다채로워질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래야지만 자신의 것을 지켜낼 수 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 무한한 그 세계의 탄생. 멋지지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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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극은 '관계맺기'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탐구하는 극의 형식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입장이 부딪히고 섞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2인극은 탄탄한 스토리와 연기자의 열연이 필요하다. 그렇지않으면 자칫 보는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시간이 길수록 인물의 수는 늘어나는 것이 대다수. 본 연극은 장장 150분이라는 긴 시간을 루스와 리사, 두 사람이 온전히 채워나갔다. 연출, 연기, 스토리. 어느 것 하나 아쉬운 것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너무나도 추웠던 공연장의 온도 정도.(에어컨바람이 너무 셌다)
 
  
넓은 무대에 루스와 리사 두 사람 밖에 없었음에도 그 공간이 꽉 차게 느껴졌다. 동선을 최대한 크게 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곳곳에 드러났다. 예를들면 루스의 가르침에 리사가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한 걸음 물러설 때라던지, 언성이 높아지면서 격앙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걸어다닐 때가 그랬다. 연극 장르에서 벗어나지않고 적당히 과장한 몸짓이었다. 소품도 많지않았다. 분위기를 위해서만 사용되었다. 그래서 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루스 스타이너 역을 맡은 배우 전국향의 연기는 노련했다. 물론 연기 전공자도 아닐뿐더러 이론이나 기본 지식이 없어 전문적인 평가는 할 수 없다. 영화나 연극 등 배우들의 연기가 필요한 극작품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정의된 기준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해보자면 이렇다. 호흡이 긴 대사나 감정이 실린 연기는 연습으로 충분히 가능한 것 같다. 생각하건데 가장 어려운 대사는 일상적인 대사. "그래." "그러렴." 등의 일상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지만 그걸 표현하기위해 인위적으로 글로 써낸 대사가 그렇다. 인물의 상황에 푹 녹아들지 않으면 어색하고 불편하기 딱 좋은 대사들이다. 전국향의 연기에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심지어 외국어를 번역한 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사 모리슨 역의 배우 김소진의 연기도 인상깊었다. 군더더기 없는 연기에, 김소진의 다음 작품을 꼭 보러가겠노라 생각했다. 루스와 비교하자면 보다 더 개성있는 인물이었다. 인물만의 화법도 있고 특유의 몸짓도 있었다. 그녀는 150분 동안 흔들리지 않았다. 이 작품이 다른 극단에서 재탄생되더라도 김소진의 리사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연극에 집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였다. 두 사람의 대사로만 채운 공연들. 그 계산된 언어에 나는 무척 놀랐다. 극작가 도널드 마굴리스만의 자아찾기는 연극<단편소설집>
에 무척 잘 드러난다.

  
***
아주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생각할 점이, 배울 점이 많았다. 연극이라는 장르에 대해 배우기에도 좋지만 스토리 구성이나 노련한 대사들에서도 자극을 받았다. 2부에서 루스와 리사가 언쟁하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경멸과 실망으로 가득 찬 루스의 눈부터 쓰레기처럼 던져진 리사의 소설책까지. 
건강한 연극을 본 것 같아 개운하고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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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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