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랭 드 보통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문학]

글 입력 2016.08.2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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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그의 책을 처음 읽었던 날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쉽사리 이해가지 않았던 사랑에 관한 그의 이야기가 지금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문득 궁금해져 다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스토리를 살펴보자면 아주 흔한 사랑 이야기다. 너무나 흔해서 연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만한 경험들을 알랭 드 보통은 철학적인 접근으로 풀어내어 그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클로이를 만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딱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낭만적 운명론을 예로 들며 그녀의 연인인 클로이를 만난 것은 운명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경우에도 드디어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낭만적 운명론을 신봉했었다. 주인공이 클로이와 만난 확률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신비스러운 일인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그와 내가 만난 이 놀라운 사건은 절대 우연일 수 없다고.  
우리가 만났던 장소부터 서로 남매가 아닐지 농담 삼아 이야기할 만큼 비슷한 취향, 성격까지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엔 염세주의적인 시선으로 사랑을 바라보았다. 티비 속 드라마와 영화, 음악 그리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랑이 뭐길래 저렇게 눈물 콧물을 짜며 사람에 집착하는 걸까.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신에게 의지하는 것만큼 나약하고 한심한 인간의 행동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뒤 깨달았다. 나야말로 누구보다 운명을 기다렸던 사람이었다고. 이 지독한 염세주의에서 해방시켜 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사랑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해 살아 있는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 줄 누군가. 내가 생각해왔던 이상형에 가까운 성격과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느끼고 나 또한 그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운명이란 말 외에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수많은 다른 점 보다 잘 맞는 몇 가지가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사랑이 보답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혐오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랑 안에서 자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게 되니 '난 절대 저렇게 굴지 않을거야!' 라며 자신만만해했던 나도 자기 우위와 자기혐오를 시시때때로 번갈아 가며 느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나의 얕은 식견과 이기적임, 상대방이 바라보는 내가 진짜 ‘나’와는 다른 것을 알게 되면 어떡하지, 내가 감춰왔던 수많은 단점들을 발견하고 나를 싫어한다면? 나를 왜 좋아하는 걸까. 나는 사랑 받을만한 존재일까. 그 사랑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의 고리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기쁨과 불안이라는 극과 극의 감정을 함께 느꼈다.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궁금해하며 스스로도 놀랄 만큼 감정적인 ‘나’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빠져들어 친밀감과 유대감, 신뢰감을 느끼는 ‘나’, 표현에 서툰 ‘나’, 무심한 ‘나’의 모습까지도. 

이런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때문에 운명이라 믿었던 상대를 잃고 난 뒤 나에게 다가온 상실감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단 한 명이고 나 또한 그를 위해 존재하는 단 한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모두 깨져버린 것이다. 이 관계를 망친 것은 모두 내 탓이라 자책하기도 했고, 도리어 상대를 원망하고 비난하기도 했었다. 영화 500일의 썸머 속 남자 주인공인 ‘톰’만큼 찌질하고 이기적인 소설 속 주인공 ‘나’의 모습이 바로 였다. 자기 방어와 비겁함으로 무장한 모습.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짓눌렀던 상실감에서 조금씩 벗어나 그와 함께 걷던 길이나 장소를 지날 때에도 더 이상 그의 생각이 나지 않게 된 뒤, 지난 사랑을 되돌아보며 생각했다. 그는 나의 운명이었는지 그 반대인지. 

우리는 어떤 상대를 운명의 상대라고 이야기할까. 보통 결혼 상대를 두고 운명의 상대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에 이르지 못한 관계는 미성숙하고 실패한 관계, 상대방은 진정한 나의 짝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고 죽는 날까지 함께해야만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운명의 상대가 하나뿐일 이유도 없지 않은가. 어떤 이에게는 평생에 한 명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여러 명일 수도 있다. 비록 사랑이 끝났을지라도, 그 기간이 길고 짧던 사랑했던 순간의 감정이 진실하고 그 관계를 통해 인격적인 성숙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은 그가 25살이라는 나이에 쓴 이야기답게 치기 어리고 굉장히 찌질한 모습과 더불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변명과 자기 위로로 점철되어 있다. 게다가 사랑을 해 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진부하고 식상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며, 그가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을 통해 한 번쯤 사랑이 무엇일까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보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구글


[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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