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연극 '왕과 나' 리뷰.
글 입력 2016.08.0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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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극장에서 왕과 나, 해 지기 전과 해 지고 난 후의 모습 ⓒyou-min Park 2016.


시작시간까지 몇분 남지 않아 잠시 기다리는 와중에, 비틀즈의 yesterday와 across the universe가 들려온다. 관객석에 불이 켜진 상태로 기타리스트 겸 연주자가 들어와 기타를 만진다. E,A,D,G,B,E.. 줄을 여러 번 두들이며 튜닝을 하는 소리는 사람들의 집중력 또한 무대로 모으는 듯 하다. 이윽고 암전이 된다. 한복의 결들이 부대끼는 소리가 사박사박 난다. 조명이 켜지며 배우들에 집중하게 된다. 그들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한 발 앞서면 한 발 물러선다. 마치 서양의 장례절차의 모습이 연상된다.


IMG_20160808_175831.jpg▲ ⓒyou-min Park 2016.
 

인트로(intro) 이후 배우들은 쉴새없이 대사를 주거나 받는다. 조선19대 왕이었던 숙종임금시절의 배경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는 와중에, 장옥정이 장희빈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 연극의 핵심되는 줄거리였다. 극 중에서 장옥정은 세 명의 배우를 거쳐 연기되며, 다른 조연들 마저 여러 배우를 걸쳐 바뀌게 되는데, 줄거리를 이끌어나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그렇게 연출한 의도가 조금 궁금해진다. 장옥정이 장희빈이 되기까지의 서사 과정에 있어서 서인과 남인의 당파싸움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숙종은 장옥정이 왕후에 오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남인세력들을 등용하게 되고 서인세력들을 숙청하기에 이르르는데, 왕권보다 신권의 세력이 더 강해진다 싶어지면 궁궐을 피 바다로 물들여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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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 같던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은, 인견왕후와 인현왕후의 운명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왕후들에 비해 조금 오래 갔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이유일 것이다. 장희빈이 사약을 받기 전까지, 그녀가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보며 한탄해하는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하얀 소복을 입은 채 맨발로 빛을 따라 뭔가를 잡으려고 애쓰며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뮤지컬 캣츠(cats)의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Memory'가 생각났다. 세상이 다 나의 것만 같았던 지나간 세월을 다시 잡아보려 애쓰지만, 허무함과 공허함만이 마음 속 가득한 현실이 되버린 그녀들의 말년을 보면서 안타깝지만 과연 누가 그녀를 안타까워 해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어떤 여자가 장희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장옥정은 희빈장씨가 될 만한 여자였으니, 조선후기의 여자의 몸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며 임금의 옆구리를 차지 할 수 있었던 여자 였을 것이다. 왕은 왕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신하들은 신하들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밥그릇 싸움을 하며 서로를 죽이려고 애쓰다, 다 같이 죽어나가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사랑싸움은 어쩐지 로맨틱하기보다는 살벌해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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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이 정도 했다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타리스트를 중심으로 북을 사용하거나, 스네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라이브음악을 듣는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배우들이 무대 사이드로 빠져 한명씩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화음을 쌓기도 하고, 효과음을 입으로 만들기도 하고, 멜로디언과 하모니카를 부르는 등 무대에서 직접 일어나는 모든 사운드가 연극을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인트로(intro)에서 배우들이 관객들과 처음 만나는 순간에 등장하는 모습이 나에겐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조선후기의 연극 인줄로만 알았는데, 인트로에서 부터 낯선 발음과 멜로디의 '쿠쿠루쿠쿠 팔로마(cucurrucucu paloma)' 멕시코음악이 흘러나온다.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잘 어우러져 흘러간다. 인트로와 아웃트로(outtro)는 같은 연출로서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며 연극은 끝을 맺는다.
배우들이 불렀던 노래는 대게 1900년대 한국의 가곡과 같은 올드하고 마이너한 느낌의 곡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최근에 곽진언 앨범에서 리메이크 되었던 '봄날은 간다'가 극 중에 나와서 기억에 남는다.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를 가수 주현미 버전으로 올려본다. 극 중에서도 궁궐의 여자들 대사중에 봄날에 대한 묘사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이 노래가 이 연극을 아우르는 노래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전반적으로 대단히 인상깊었던 연극이었다.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찾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한번, 음악과 사운드 사용에 한번, 와이셔츠와 정장구두를 착용했음에도 밸트에 두른 띠 하나만으로 한국적인 느낌을 연출한 의상에 한번 더 놀라면서, 볼 거리와 들을거리ㅡ생각할 거리를 두루두루 갖추고 있는 연극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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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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