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배고파 9탄 - 사랑하고 싶다

글 입력 2016.08.07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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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의 그늘 밑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자신마저 망각하는 상태에 이르러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없는 것처럼 보였다. 뜨거웠던 첫 사랑의 기억마저 망각의 계곡 안에 묻고 남자는 그 기억의 존재마저 모른 채 살아간다.
 
남자의 그늘을 걷어내고 싶어 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함께한 과거의 기억을 자신만 품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남자가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여주던 그 시절이 그리웠던 여자는 아직도 자신을 기억 못하는 남자를 찾아가 계속 말을 건넨다. 기억해달라고, 사랑해달라고.
 
남자의 그늘 옆에 함께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망각의 그늘 밑에서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잊어가는 그의 곁을 지켰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남자의 말도 안 되는 착각을 받아줬다. 남자에게 남은 것은 그 여자뿐 이었다. 그렇게 둘은 사랑하게 된다.


연극 배고파9탄 포스터-부제_사랑하고싶다.jpg
 

연극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총 세 명. 민서와 선배는 첫 사랑의 연인 관계였다. 의대를 졸업해 바쁘게 사는 선배를 기다리는 것에 지친 민서는 홧김에 이별을 얘기한다. 뜨거웠던 연애를 말 몇 마디로 정리한 둘. 선배는 그러던 중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와중에 환각 증세까지 겹친 선배는 자신을 군의관이라 착각한다. 그런 선배의 곁을 지키는 배간호사. 정신이 온전치 못한 선배의 옆에서 온갖 잡일을 다해주며 수발을 든 지 3년. 갑자기 나타난 민서가 선배의 기억을 되돌리기 노력하는 모습이 배간호사의 눈에는 마냥 곱지만은 않다. 불치병에 걸린 민서는 결국 선배의 기억을 되돌리는 데 실패하고, 3년 동안 곁을 지키던 배간호사는 선배와의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연극의 스토리는 흥미롭지 않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나, 불치병은 주위에는 흔치 않지만 여러 콘텐츠의 소재였기 때문이었다. 연극을 끌고 가는 힘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환각 증세에 빠진 선배와 그 곁을 꿋꿋이 지키는 배간호사, 선배의 기억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민서. 세 명의 연기호흡이 잘 맞았고, 발성, 발음 등 프로다운 모습의 배우들이 인상 깊었다.
 
 
사랑하고 싶다.jpg
 

 커튼콜에서 기획하신 분이 무대에 올라와 ‘사랑하고 싶다‘의 연극이 우리가 본 날이 마지막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작년 한 해 동안만 9군데의 소극장이 문을 닫았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도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소극장보다 대극장을 선호하는 게 요새 분위기인 것 같지만, 나는 소극장을 좋아한다. 옆 사람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뒷사람이 훌쩍거리는 소리, 나와 함께 간 친구가 크게 웃는 소리가 다 들리는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 그런 소리들을 다 뚫고 대사를 뱉는 배우들의 목소리, 입가의 떨림, 눈물이 약간 고인 눈 꼬리. 몇 명의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가 커다란 울림을 주면 순식간에 아무 소리 없이 무대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무대나 공연의 스케일이 그 질을 얘기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대의 크기는 얘기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할 수 있을 뿐. 곁에 있을 때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언젠가는 소극장 공연이 더 찾아보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얘기는 당연한 듯 들리지만 어쩌면 공연을 보는 순간 뿐 아니라, 커다란 틀에서 보면 공연 문화를 가꾸어가는 과정 안에 관객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꿈 많고, 열정 있는 배우들이 설 수 있는 무대, 기획자들이 다양하고 재밌는 공연을 꾸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김마루.jpg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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