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에 대한 작은 생각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8.0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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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도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고속도로는 극심한 정체가 일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국내로, 또는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온전히 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기도 하고 친구와 우정 여행을 가기도 한다. 우리가 며칠 안 되는 휴가를 이용하여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은 ‘비일상적’인 풍경과 일들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비슷한 하루들을 살아간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업무를 보고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한다. 심지어는 출퇴근길에 스쳐지나가는 풍경들마저도 변함이 없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안정감을 담보 받는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일상을 벗어나는 ‘일탈’을 꿈꾸곤 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탈은 바로 ‘여행’이다. 반복되는 업무와 일상 속에서 발현되는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일탈은 여행인 것이다. 여행은 완벽하게 ‘비일상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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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일상의 업무 환경에서 ‘완벽할 것’을 강요받는다. 상사가 지시한 부분에 대해 완벽하지 못할 경우 그에 응당하는 패널티를 받게 된다. 혹은 성과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며 자신에게 완벽할 것을 강요한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이러한 것에 익숙해져 있고, 항상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노력한다. 그러나 여행은 그렇지 않다. 여행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짜야만 성사될 수 있는 것이다. 또 계획했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완벽하지 못했다는 점이 누군가의 비난을 사지 않는다. 개인 역시 완벽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착취하지도 않는다. 여행은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여행도, 즉흥적이었던 여행도, 계획했지만 조금은 틀어져버린 여행도 모두 의미가 있다. 그것은 여행이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한 회사의 ‘대리’로, 한 가정의 ‘아빠’로 자신이 완벽하게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라며 스스로를 착취하고, 착취당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자신을 규정하는 역할들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여행은 ‘비일상적’으로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서울을 여행하다보면 더 와닿는 풍경이 있고 그렇지 않은 풍경이 있다. 나의 경우 대단한 것들은 없더라도 한가로운 골목길이나 조용한 숲 속 풍경이 와닿았고 오래오래 생각이 났다. 치열하지 않은 서울 어귀의 한갓진 골목길이, 시끄럽지 않은 어느 산자락이 나에겐 ‘비일상적’인 풍경처럼 느껴졌고 그것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해외여행을 떠나면 그때는 모든 순간들이 ‘비일상적인 것’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비행기를 타는 일, 버스표를 끊는 일, 물건을 사는 일, 시내를 둘러보는 일, 모든 일들이 서울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장소가 바뀐다면 완벽하게 비일상적인 일들이 되는 것이다. 해외여행을 할 때면 간판이 복잡하고 상점들이 즐비한, 나에게는 ‘와닿는 풍경’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거리가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혹자는 이것의 이유가 우리가 외국에 나가면 간판의 글씨들을 읽지 못해 문자가 아닌 풍경의 일부로 인식하며 주변의 대화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그곳에서 완벽하게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문자는 있되 문자로 인식되지 않는, 대화는 있되 대화로 인식되지 않는 그 공간에서 더더욱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곳에서만큼은 재거나 따지지 않고 모든 것들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나의 감정에 더욱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여행에서의 모든 사소한 순간들은 다시금 일상을 힘차게 살아가게 하는 영양분이 된다. 가끔씩 여행 사진을 꺼내어 보거나, 여행에서 썼던 일기를 읽어보거나 하는 것은 기분 좋은 추억을 상기시켜 준다. 여행이 끝난 시점에서 다시 돌아본 여행은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신기한 것은 힘들었던 여행도 지나고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길을 잃어 햇빛 아래서 한참을 헤매던 기억도,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고생하던 기억도 모두 행복했던 여행의 일부로 기억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기억들은 미화되는 기억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여행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는 시도이고 용기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완전히 몰랐던 사람과 새롭게 알아가기도 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장소를 지도를 들고 찾아가기도 한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은 무엇’, 그리하여 새로운 기분 혹은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여행에서 마주한 어려움들은 오히려 그것이 더욱 ‘여행’임을 인지하게 한다. 모든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에게 유쾌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떠난 여행에서 마주하는 ‘비일상’의 경험은 여행을 더욱 여행답게 만들고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여행을 떠날 때 나는 ‘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길 위에서 길을 헤매더라도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비가 쏟아지더라도, 다 괜찮다. 여행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나는 나에게 완벽하기를 바라지 않아도 된다. 조금 미숙한 나의 모습이 오히려 좋기도 하다. 나는 항상 완벽할 수는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기억들이 여행이 끝나면 더없이 소중했던 시간들로 기억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은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집 근처의 가보지 않았던 산책길, 국내 여행지들, 여권을 들고 떠나는 해외여행 모두 특별한 경험이고, 그것은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 여유를 가져다주며 소소한 행복을 준다. 그래서 나는 어떤 여행이든지 여행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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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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