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른척 하지 말기, 아는척 하지도 않기.

연극 모놀로그ㅡ아이(i)를 보고 나서.
글 입력 2016.07.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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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0160726_194146.jpg▲ ⓒyoumin-Park.2016


연극 모놀로그-아이(i) 배고파 시리즈 10번째 이야기


일시: 2016/05/17 ~
장소: 연진아트홀 (구 챔프 예술극장)
출연: 박혜선, 이영주, 조화영
관람등급: 만 12세이상
관람시간: 약 80분


20160726_192855.jpg▲ 오늘의 캐스트. 내가 갔던 날은 이영주 배우의 연기를 볼수 있었다.  ⓒyoumin-Park.2016


○평일의 대학로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연진아트홀을 찾으러 다니는 길목 사이 사이로 다른 연극들의 팜플렛과 광고가 널려있었다. 입구 앞에서 약 20분간 기다리면서 이것 저것, 생각을 좀 했다. 내 앞에 보이는 문 뒤로는 오늘 있을 연극의 리허설이 한창이다. 포스터에 붙어있는 배우들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계단의 벽 옆으로 주욱 늘여 걸려있는 배고파 시즌1부터의 포스터를 한칸 한칸 살펴보면서 작곡자와 작사자, 연출가의 이름을 낯익도록 익혀보기도 하고 있었다. 10번째 시리즈로서 막을 내린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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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이 오르기 전 무대의 모습.  ⓒyoumin-Park.2016


"여러분의 '그것'도 안녕, 하신가요?"

코 앞에서 관객이 움직이고, 배우가 숨을 쉰다. 서로의 눈동자 색과 점의 위치까지 보일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는 무대ㅡ라는 장치 하나로 경청하는 자와, 표현하는 자로 나뉜다. 혼자서 극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을 소화해내야 했을 배우의 내공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연극은 프리뷰에서 예상했던 분위기와 내용과는 많이 달라서 놀랐다.
왜 당황했는지 생각해보면, 독백 식으로 연기한다고 했던 걸 미처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최근에 봤던 연극 중 '레드'를 떠올려봤다. 두 명의 배우가 약 한 시간 반 가량 미친듯이 대사를 뱉어내는 것을 보고 대단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연극은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고, 대사의 양이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감정에 대한 묘사를 주인공 한명이서 오롯이 담당해야 하는 연극이었고,  또 그걸 감당해내는 배우에게 묘한 힘을 얻었던 것 같다. 
더불어
연극에 나오는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의 연결지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 일부러 극이 시작하기 전까지 그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보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거라는 생각에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 또한 아무런 예상없이 봤었고, 그랬기 때문에 극 후반으로 갈 수록 더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반의 가벼운 분위기에서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감정이 고조되고 주인공 '민서'가 자신이 만나왔던 감정들의 트라우마의 원인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극이 마무리 된다. 그녀가 스스로 트라우마에 대한 방어기제를 찾기 위해 만들어왔던 인물들, 그녀가 어릴 적 자신의 생일날 겪었던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상실감, 죄책감들을 모두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듯 하다. 그녀는 모른척 하고 있던 걸 끄집어 내게 되고, 결국엔 알고 있다고 자신 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도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그 상처들은 그녀에게 독이 되어 그녀를 더욱 외롭고 지치게 만들면서 결국엔 스스로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속으로 우스웠지만, 한편으로는 저 나이 또래에 생각하는 똥, 오줌, 방귀와 같은 생리현상들을
왜 즐거워하고 우스워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놀리기 쉬운 요소여서 일수도 있고, 누구나 가장 편할 때 나올 수 있는 프라이빗한 요소일 수도 일것 같다는 생각이다. 극 초반에는 민서의 감정에 이입되기가 쉽지 않았다가, 그녀가 가진 트라우마의 계기를 보면서 그녀가 자주 반복하는 대사인 "비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캡처1234.jpg▲ PlayDB제공


"다 비웠다는 것"
아는 척 하지도, 모르는 척 하지도 말았으면

어느날 갔던 저자강연회에서,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이신 분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세상에 자기 마음을 잘 비울줄 아는 사람, 나는 다 비웠다는 사람 치고 정상인 사람 없을 거라는 말. 대단히 공감했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 거짓말 같은 진실일 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지금 마음을 비우고 있다'는 생각에 편안함을 느낀다. 비우지는 못하더라도, 마음가짐을 조금은 가볍게 내려놓을 줄은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극에서 '민서'는 트라우마의 감정들을 '엄마'와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풀어내어 다시금 힘을 내는 계기를 찾게 된다. '잊으라고, 더 이상 엄마는 없고 남자친구 또한 없다'는 말이 너무나 야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트라우마를 더 가중시키는 말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완전히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민서의 기억이 훼손되고 왜곡되 있다가, 그 기억마저 소각되어버리는 형태는 완전한 트라우마의 극복으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비움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오는, '그것'을 해결할때 우리가 느끼는 희열감이나 편안함에 대해서 이야기 했더라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 트라우마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어, 마치 내 '그것'과 같이" 생각하는 것도 오류일 수 있고, "나는 아무것도 몰라, 마치 내 '그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자신에 대한 방관일 수 있다. 비웠다는 것의 해석이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하게 해석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트라우마는 계속해서 해석되어져야 하고, 풀어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설'일것이다.



라캉에 따르면 '그것'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의 대상입니다.
'그것'은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불완전함과 박탈감, 무력감, 부적절함이라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우리는 앞서 배웠습니다.
그것을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상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애도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언급은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이었습니다.

첫 번째 종류의 애도는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을 때 느끼는 정상적인 슬픔입니다.
우리는 서서히 슬픔에서 빠져나올 궁리를 하게 되죠.
두번째 종류의 애도는 이와는 반대로 끝이 나질 않습니다 .
우리는 영원히 상실에 집착합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종류의 끝모를 애도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슬픔을 '멜랑콜리아'라고 불렀죠.
'그것'은 멜랑콜리아, 즉 끝모를 애도와 상관이 있습니다.

- 마리 루티, 하버드 사랑학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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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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