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민서의 그것, 우리들의 그것이 안녕하기를 바라며_모놀로그 아이(i)

글 입력 2016.07.2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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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


 여러분의 ‘그것’은 안녕하신가요? 프리뷰를 쓸 때부터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다. 도대체 관객들에게 무엇이 안녕하냐고 묻는 것일까. 한 사람의 배우가 1시간 30분 동안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그런데 웬걸, 연극이 시작되고, 주인공 민서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었다.


 “여러분의 똥은 안녕하신가요?”


 평일이어서 그랬는지 객석엔 나를 포함해 10명 남짓한 사람들뿐이었고 침묵은 말이 없었지만, 분명 그 침묵 속에는 당황함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민서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똥’에 대해 이야기했다. 똥은 우리에게 늘 부끄러운 것이라고. 하지만 똥이라는 건 어떤 방법으로도 속일 수 없는 무엇보다도 진솔한 것이라고. 똥은 우리의 과거라고. 

 민서는 6살 때부터 변비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어도 그 때 생긴 변비는 여전히 그녀를 괴롭힌다. 하지만 민서를 괴롭히는 건 똥뿐만이 아니다. 6살 민서의 생일날 벌어졌던 일, 믿는 것이 현실이고 믿지 않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 날의 일은 이제껏 꿈이었다.

 똥. 어떤 면에선 적나라하고 때로는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이것은 극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트라우마이자 과거로 모습을 드러낸다. 6살 때 벌어졌던 그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내기만 하는 민서에게 변비는 곧 마음의 것이었고 상처를 어찌할 줄 모르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결국 민서는 변비에서 탈출한다. 몸이 20살이 넘도록 자라는 동안 6살에서 멈추어버린 내면의 자아와 민서는 정면으로 대면한다. 그러면서 관객들을 향해 끊임없이 외친다. 


비워내라. 과거를 풀어내라. 그래야만 한다.  

 
 서포터즈 활동을 할 때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시킨 쿠사마 야요이와 신경숙에 관한 오피니언을 기고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트라우마가 스스로를 집어삼키지 않게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고 썼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타인의 아픔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섣불리, 쉽게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트라우마와 싸워 이겨내라, 상처를 치유해라, 끊임없이 노력해라 같은 뜬구름 잡는 조언이나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모놀로그 아이(i)>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똥이라는 모두에게 친숙한 존재에 마음의 상처를 비유하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차분히 녹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똥으로 생각하니 내 몸속에서, 마음속에서 비워내는 것이 어떻게 생각해도 옳았다. 똥이든 트라우마든 담고 있어봐야 좋을 게 없으니 말이다. 
 
  또한 ‘모놀로그’라는 극의 형태는 <모놀로그 아이(i)>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보다 돋보이게 해주었다. 여러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경우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관계를 바탕으로, 보다 공감이 가는 인물에 스스로를 투영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모놀로그 방식으로 한 명의 배우만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상황과 일련의 사건들,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오로지 그 사람의 관점에서 풀어내다보니 자연스럽게 민서라는 인물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맺어주는데 큰 역할을 하는 감정이 공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공감이라는 감정이 마음속에 일렁이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상대와 가까워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모놀로그 아이(i)>은 내게 바로 이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연극이었다. 이 연극을 만든 사람도, 배우가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하지만 괜시리 정이 들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민서의 그것이, 그리고 우리들의 그것이 항상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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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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