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러분은 안녕하십니까? - 모놀로그 아이[공연]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그것은 정말 안녕하십니까
글 입력 2016.07.2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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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강이 하늘로 흐를 때,
 명절 떡쌀에 햇살이 부서질 때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흐르는 안개가 아마포처럼 몸에 감길 때,
 짐 실은 말 뒷다리가 사람 다리보다 아름다울 때
 삶이 가엾다면 우린 거기
 묶일 수밖에 없다
이성복, 세월의 습곡이여, 기억의 단층이여
 

 인간이 삶의 순간들을 인지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이것은 마치 삶이라는 나무에 시간이라는 나이테를 기억이라는 끌로 새기는 듯 하다. 시간 속에는 즐거움이나 환희 등의 긍정적인 감정들도 있지만, 슬픔, 아픔, 고통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도 섞여 있다. 인간의 기억은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당시에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선택하여 시간에 새겨 넣는다. 여기서 무엇이 진심이었는지는 모호하다. 다만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면, 시간에 꾹꾹 눌러 새긴 묵은 감정과 기억이 한번에 터져나올 수 있다. 이 연극은 이러한 트라우마들을 묵은 똥으로 빗대어 ‘변비’로 표현했다.
 
 연극 ‘모놀로그 아이’는 아픈 과거를 가진 주인공 ‘민서’가 과거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독백으로 풀어간다. 주인공과 담당 전문의와의 상담 형식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내밀한 심리를 들여다보는 식으로 극은 진행됐다. 물론, 일인극이기 때문에 담당 전문의는 직접 나오지 않는다. 일인극을 처음 접하는 터라, 처음에는 한 명의 배우만 나와서 독백하는 모습이 어색했지만 점차 익숙해질 수 있었다. ‘독백’이라는 형식이 배우의 연기력에 좌우되어 염려했지만, 배우 김고은씨가 극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극의 후반부에서 온갖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일인 다역에 열중하는 모습은 관객의 몰입감을 더욱 자극했다. 
 
 웅장한 규모의 오페라나 뮤지컬, 영화에 비해 대학로 연극이 지니는 강점 중 하나는 배우와 관객 간의 호흡일 것이다. 소극장에서, 배우와 불과 한, 두 걸음 밖에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연기하는 사람의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의 밀접함은 배우의 감정과 동작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끔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극장에서 접하는 일인극은 더욱 배우와 연기 자체에 젖어 들게끔 만들어 주었다. 적절하게 배합되는 조명과 사운드는 배우가 연기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연극을 많이 접하지 못해 원래 연극들이 다 이러는지 모르겠다) 일인극을 짊어진 배우에 대한 연출자의 배려가 돋보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극의 마지막 서사가 신파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민정이라는 인물의 트라우마가 결국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는 것’이라는 식으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인물의 아픔과 고통, 기억의 실마리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편리하게 풀어버린 것은 아니었나 생각됐다. 이성복 시인이 시에서 언급하듯, 삶이 가여워 거기에 묶일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이 기억과 트라우마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그것이 지닌 어려움과 복잡성에 대해 좀 더 천착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변비’라는 소재에 빗대어 삶의 묵은 기억들을 헤집어보려는 시도는 이 연극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할 만하다. 아울러 모놀로그라는 도전 역시 신선했다. 이 연극을 통해 그간 묵혀놓았던 똥들에게 안부 인사를 던질 수 있겠다. 연극 초반부에 배우가 직접 관객에게 물었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그것은 정말 안녕하십니까?” 


상세페이지 800-화영,혜선,영주.jpg
 

[최연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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