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흔들리는 톨레랑스, 관용에 대하여.

노자의 '도덕경'에서 만나는 관용에 대한 단상.
글 입력 2016.07.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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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 선생님에 대한 책을 미뤄두고 있다가, '담론'을 시작으로 다시금 거슬러 읽어올라갔다. 어릴 때 읽었던 책이기도 했고, 동양사상에 대해서 제대로 짚고 가려면 방학 아니고서는 안될것 같았다. 중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춘추전국시대의 7국을 들여다보며 그 당시 유행했던 사상과 사상가들의 주장과 같은 걸 들여다보니, 다시 고등학교 입시 시절로 돌아가는 공부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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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에 관련된 책들이 상당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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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 도덕경의 해설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정리를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의 사상과 버무러져 돌아가는 나라의 모습, 문화의 모습,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모습. 철기의 보급을 비롯해 왕권신수설이 성행하며 유가가 핵심 사상으로 받아들여진 그 때를 상상해본다. 기원전 600년 경의 이야기일진데, 지금의 현실에 비춰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사상은 '도가 사상'이었다. 시인이자 작가인 장석주를 통해 만났던 '장자' 거기에 더불어 도가라는 사상을 이끌어나갔던 '노자'를 공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노자의 핵심 사상이 집필되어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제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에 의해 집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더이상 톨레랑스가 문화 깊숙히 박혀 움직이는 나라가 아닐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몇 년 전 부터 웃돌던 이야기였지만, 테러와 종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여러가지 사건들이 겹치게 되면서 프랑스 내부에서도 대단한 이슈로 말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톨레랑스' 이전의 '관용', '관용' 이전에 '연대'에 대해서 깊히 의심해보게 되었다. 과연 어떤 선까지가 우리가 관용을 베풀어야 할 선인지. 그 선을 기준짓는 잣대를 만드는 것은 과연 완전히 관용적인 태도일 수 있는지. 민족주의와는 반대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민족주의 적이고 배타주의 적으로, 국수주의 적으로 바뀔수 있는 위험한 가능성이 있는 문화가 '톨레랑스', '관용' 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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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말한다. [도를 도라고 하면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
도(道) 라고 부르면 사람들은 도 라는 말에 얽매이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관용은, 상대적일 수 있다. 상대적이란 말은 한 몸의 양 끝과 같다는 말일것이다. 어둠이란 빛을 등진 것이며, 아름다움은 늘 추함을 등에 업듯이ㅡ 현상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더불어 과연 이것이 프랑스, 유럽만의 문제일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동양사상은 전반적으로 이분법적인 해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노자의 사상이 옳다 해서 유가사상을 적대시 하지 않으며, 그것은 관용보다는 연대에 더 가까운 의미일 것이다.
연대와 톨레랑스의 의미자체에 얽매여 있기 보다,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거나 사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어떤 고정된 신념이나 문화정책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無爲(무위)를 좀더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노자는 이야기한다. 과연 기원전 이야기의 허무맹랑한 맥락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말도 안되는 논리도 말이 되는 논리처럼 바꾸어버리는 요즘 시대에, 오히려 내 귀에는 이런 말들이 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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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無爲(무위)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 doing nothing. 자칫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방관하라는 것인가 오해하기 쉽다. 인위적인 수사보다 공교함에 더욱 집중하라는 말로 해석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노자는 제대로 된 사회에서는 인의(仁義)와 효자(孝慈), 충신(忠臣)이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노자의 말에 따르면,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라는 증거로, 인의가 중요하고 효자가 중요하고 충신이 대단히 가치있게 보이고 칭찬받아야 마땅한 사회라는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유토피아를 지향하거나 디스토피아를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상황 자체를 가슴으로 깊히 끌어들여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



도덕경 25장

나누어지지 않은 어떤 무엇이
하늘과 땅 보다 먼저 있었네
소리도 없고 정체도 없으니
무엇에 의존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두루 편만하게 움직이나
없어질 위험이 없다

가히 세상의 어머니라 하겠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다만 억지로 도라고 불러본다
구태여 형용하라면 크다고 하겠다






○참고기사
[서울신문] 니스 트럭테러로 또다시 흔들리는 프랑스의 톨레랑스
[서울경제] [佛 니스 트럭테러] 8개월만에 또 참사…흔들리는 佛 톨레랑스

○표지그림/ 폴 고갱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1897년, 캔버스에 유채, 139 × 375 cm. <소장 : 보스턴 미술관> ]
○사진/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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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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