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호안미로 특별전 : 단절의 끝에서 창조를 외친 화가

글 입력 2016.07.1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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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포스터(RGB)-01.jpg
 

이전 예술과의 단절이라는 시기의 끝에서
끝없이 창조 해냈던 화가,
호안미로 특별전.


호안 미로 포스터(RGB)-02.jpg

 
그는 과연 어떤 화가였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 게시물은 아트인사이트와 함께합니다.
호안 미로 로고-02.png
스크린샷 2016-07-19 오후 3.36.02.png

 
바르셀로나 출생.
보석상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에 입학하고,
1912년 이후 갈리 아카데미에서 공부하였다.
1918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때의 작품에는 야수파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이듬해인 1919년 파리로 나와 P.피카소와 알게 되었으며,
이때의 작품에는 H.루소의 작품을 닮은
정밀하고 엄격한 풍경화와 인물화가 많고,
1921년부터는 입체주의의 영향이 강한 일련의 정물화를 그렸다.
이 해에 파리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이때부터 입체파풍의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이나
역학적 구성 속에 에스파냐인 특유의
강렬한 꿈과 시정이 감도는 작풍으로 변하였다.

1922년 고향으로 돌아와 그 곳 농원에서 소재를 딴 역작을 발표하였는데,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급속히 초현실주의로 전환하였다.

1925년 M.에른스트와 협력하여
러시아 발레를 위해 의상과 무대장치를 담당하고 벽화도 창작하였다.
또 이 해에 개최한 초현실주의 제1회전에도 출품하였다.
이 시기에 P.클레에게 자극을 받아
더욱더 초현실주의적 환상에 장식성을 가미한,
유머감각이 넘친 곡선과 색채에 의한 독자적 화풍을 형성하였다.

그의 초현실주의는 아주 밝은 시정과
단순화되고 순수화된 형태와 색채의 조화에 의한 율동적인 구성에 의하여,
문학적인 회화에 빠지지 않고 조형성(造形性)의 긴밀감을 준다.

별 ·여자 ·새 등을 거의 상형문자와 같이 환상화(幻想化)하여,
그것들을 조화시킨 화면은 건강하고 명쾌한 유머마저 풍긴다.
그러나 1937년 개최된 파리의 만국박람회 에스파냐관(館)에
그가 그린 대벽화 《수확하는 사람》에는
카탈루냐 농민의 분노를 암시하는 듯한 격렬함이 엿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0년 가족과 함께 파리로부터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작품제작에 몰두하였으며,
1947년 미국으로 가서 미국의 전위운동(前衛運動)에 기여하였다.

1948년 귀국한 후는 주로 바르셀로나와 파리를 왕래하면서
회화 ·판화 ·조각 ·도자기 등 다방면에 재능을 발휘하여,
마침내 독자성을 충분히 원숙시켜
195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에서 판화대상을 받았다.

1956년 마요르카섬의 팔마에 아틀리에를 세워 옮기고
1958년 도공(陶工) L.아르티가스와 공동제작으로
파리의 유네스코본부에 도판벽화(陶板壁畵) 《낮》 《밤》을 완성하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에스파냐 동부의 원시동굴화, 아라비아 문학,
이슬람의 장식, 로코코의 우아한 단축법(短縮法) 등의 요소가 느껴지는데,
풍부한 공상, 강렬한 형상, 한없이 밝은 너털웃음 등의 인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감을 준다.

주요작품으로는
《꿈 그림 dream pictures》
《상상 속의 풍경 imaginary landscape》을 비롯하여
뉴욕 헤밍웨이 부인 소장의 《농장》(1921∼1922)
뉴욕근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네덜란드의 실내》(1928) 등이 있다.


Danseuse, 1969.jpg
Danseuse, 1969
ⓒ Successió Miró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2016년 6월 26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막될
<꿈을 그린 화가, "호안 미로” 특별展>은
국내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회화展으로

1981년 스페인의 호안미로 마요르카재단
(Fundació Pilar i Joan Miró aMallorca)‟(이하 미로 재단)의
출범 이래, 아시아 및 유럽을 통틀어
가장 큰규모의(총 264점) 소장품을 공개한다.

이는, 미로 재단이 보유한 작품들에
호안 미로 유족들이 경영하는
"석세션 미로(Successió Miró)‟의 소장작품이 더해진,
뜻 깊은 협력으로 탄생한 이례적인기회로,
좀처럼 보기힘든 호안미로의 원숙한 걸작들을,
한자리에서 볼수 있는 호사를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5개의 주제로 나누어진 공간에서는
유화, 드로잉, 콜라주, 일러스트, 테리스트리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 총264점,100호가 넘는 대형작도 전시된다.

또 한, 호안 미로의 창작공간(작업실)을재현해낸 섹션에서는
호안미로의 손때가 묻은 소품들과
작업도구 103여점을 비롯한
미완성 캔버스들이 함께공개될 예정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Femme dans la rue, 1973.jpg
 Femme dans la rue, 1973
ⓒ Successió Miró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꿈을 그린 화가, “호안 미로” 특별展>은
호안미로가 마요르카에 머물며, 끊임없는 개작으로
자신의 이전작품세계와의 단절을 열망하였던,
마지막 창작의 시기(1956-1981)에 탄생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마지막 창작시기에 이르러 전보다 더
규칙위반자, 반체제주의자적인 양상을 띠며,
공격적이고도 야생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인,
사려깊고 시정(詩情)이 풍부한 면모와 공생하게 되는데,

이로써 그는 자신만의 보편적이고 독창적인
조형의 언어를 만들어 내며,
결과적으로 그가 열망했던,
자기복제나 양식화된 것들에서 도망치기 위한 창조적 동기를 획득한다.

이 시기, 호안 미로는 자연, 꿈, 인체,문자, 시, 음악 등
우연히 마주친 사물들(objet-trouvé)을 그려내며,
수백 번에 걸친 개작을 거듭하는 변천을 기록 한다.

그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나 동양의 예술 등
1930년대의 회화에서 해답을 구하며
남들과 다른 표현의 언어를 찾길 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손놀림을 단순화 시키거나, 색을 간소화 하는등,
최소의 수단으로 최대의 강렬함을 끌어낼, 장식을 배제한 형태를 추구하게 된다.
이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추상적인 단색의 풍경화에서 잘 드러난다. 

 
Le lezard aux plumes d´or,1971.jpg
 Le lézard aux plumes d´or,1971
ⓒ Successió Miró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전시 구성>


section #1호안미로 작품의 근원 

미로에게 자연은 가장 중요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자연과의 깊은 유대감은미로의 작품 세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자연과 교감하고자 하는 그의 욕구는
이 예술가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다. 



section #2 시, 기호, 리듬, 절제와 명상

미로는 시인의 영혼을 가진 예술가였으며,
그에게 있어 가장 좋은 이야기 상대는시인들이었다.
미로는 그의 모든 작품에 있어 시적인 동기,
가슴과 머리를 하나로 잇는 감정적이고 공상적인
그 순간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고 단언한다.

단어와비문, 기호는
마음을 사로잡는 일종의 마법을 표현함으로써
그의 그림들을 복합적인 의미와 함께
연속된 연상을 이어주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untitled, 1978.jpg
 untitled, 1978
ⓒ Successió Miró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section #3 마요르카, 창조적 공간

우리는 세르트 작업실의 내부에서
수많은 미완성의 캔버스를 만나볼 수 있다.
미로라는 예술가는 특별한 색감과 형태의 느낌을 만들어내는
수백 점의 작품을 동시에 작업할 수 있었다.

벽과 유리 장식장은 미로가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소품과 골동품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 모든 것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독특한 인상을 심어준다.

세르트 작업실은 인간적인 방면에서나 예술적인 방면에서나
위대한 발전의 최고조에 이른 예술가의 마지막 창작 시기를 충실하게 증언한다. 



section #4 말년의 열정-독창적 색과 표현

미로의 말년에 이르러 그의 회화와 소묘를 향한 접근은
서정시적인 요소와 함께 물감 혹은 잉크 재료의
적극적인 응용 사이에 자리한다.

이러한 급진주의 혹은 격렬함은
미로가 회화에 만족하지 않은 채 안달이 나 있었으며,
모든 전통적인 예술적 표현의 방식을 어기면서
그가 즐겨 이야기하던 바와 같이,
항상 “회화를 넘어서 는 것”을 꿈꾸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Maquette for Gaudi Ⅷ, 1975.jpg
 Maquette for Gaudí Ⅷ, 1975 
ⓒ Successió Miró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section #5자연의 도식화 

미로는 점잖고 세련된 표현에서
더 도식적이고 정제된 표현으로 진화하는
회화 작품을 반복적인 형태로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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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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