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프레드 히치콕의 서스펜스 , < 싸이코 >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7.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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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는 ‘공포’와 구분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공포)의 개념을 언급하며 탁자 밑의 폭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등장인물들이 탁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폭탄이 터진다면 관객도 등장인물들과 동일하게 놀랄 것이다. 반면에 폭탄이 탁자 밑에 설치되는 것을 등장인물들이 탁자에 앉기 전에 관객들이 미리 보게 된다면, 전자의 상황과는 다르게 관객들은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몰라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앞의 상황은 공포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서프라이즈’ 이고, 뒤의 상황은 ‘서스펜스’다. 즉, 서스펜스 영화의 묘미는 얼마나 관객들을 놀라게 하느냐가 아니라 상황(폭탄이 터지는)을 지연시키며 얼마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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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는 알프레드 히치콕을 거장의 반열로 올려놓은 영화 중 하나이며, 서스펜스의 묘미를 보여준 영화다. 영화는 릴라 크레인과 샘이 싸구려 모텔에서 사랑을 나눈 이후로부터 시작된다. 모텔에서의 첫 장면은 둘의 관계와 이 둘이 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샘은 이 경제적 문제에 대해 다소 격양되어 보이고 불안해 보이지만 릴라는 보다 침착하고 차분해 보인다. 의외로 사건(4만달러를 훔치는 일)에 휘말리는 것은 일을 저지를 것만 같던 샘이 아닌 릴라다. <싸이코>의 서스펜스는 이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충동적으로 보이는 샘이 돈을 훔쳤겠지만 <싸이코>는 침착하던 릴라가 충동적으로 돈을 훔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사건의 진행과는 별개로 릴라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 부가적으로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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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달러라는 거금을 훔친 릴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진다. 히치콕은 사건들로 서사를 진행시키기 보다 릴라의 ‘불안감’을 이용해서 서사를 진행시킨다. 서사를 전개 시키고 사건을 키우는 것은 우연적인 사건들에 대한 릴라의 반응들이다. 경찰관이 릴라에게 다가온 것은 우연이지만 경찰관이 계속해서 따라오게 되는 것은 릴라가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점이 릴라의 인지범위로 한정된다는 것도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작용을 한다. 우리는 극도로 불안해 하는 릴라와 동일한 것들을 본다. 릴라의 시점쇼트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보고 인지하는 것들은 릴라가 보고 느끼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릴라가 폭우 속을 운전하는 장면(위 장면)에서 인지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릴라는 자신이 도망친 이후의 여러 상황들을 상상하는데 히치콕은 이를 스크린에 보여주지 않고 보이스오버를 통해 목소리로만 관객에서 전달한다. 릴라가 상상하는 장면들 대신에 화면에 가득 차는 것은 릴라의 기괴한 표정들이다. 강렬한 음향과 그녀의 기괴한 표정, 보이스오버로 깔리는 일련의 상상들은 그녀가 불안감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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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을 헤매던 릴라는 베이츠 모텔로 들어오게 된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관리자 노먼 덕분에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맴돌던 불안감은 잠시 주춤한다. 릴라와 노먼은 응접실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응접실에서의 노먼은 릴라가 가지고 있던 불안감을 덮어버릴 정도로 무언가 뒤틀려있다. 어머니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노먼의 뒤에는 박제된 새들이 노먼과 릴라를 내려다 보고 있다. 노먼은 위압감을 주는 새와 함께 프레임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가 소파뒤쪽으로 깊숙이 앉으며 프레임 오른쪽으로 치우쳐 진다. 중앙에 겹쳐있어 조형적 불협화음을 내던 장면(위 장면)은 노먼이 뒤로 빠지며 조형적 균형을 이루었음에도 그 공포스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박제된 새가 주는 공포스러움인지 노먼이 주는 공포스러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이 시퀀스의 공포감은 릴라도 동일하게 느끼고 있으며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온다. 노먼의 정체모를 광기는 정교하게 쌓아올렸던 릴라의 불안감을 순식간에 뒤덮는데서 더욱 파괴적이다. 릴라는 노먼과 대화를 나눈 후 돈을 가지고 다시 피닉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돈에 대한 릴라의 불안감으로 진행되던 서사와 서스펜스는 급작스럽게 끝이 나는 듯한 모양새다. 그녀가 욕망을 중단하고 불안감도 해소되기 무섭게 그녀는 살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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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릴라의 불안감으로 진행되던 서사와 서스펜스는 자연스럽게 노먼이 주는 기괴스러움으로 전이된다. 중심인물 뿐만 아니라 영화전체적으로 체중이동을 하게된다. 전형적인 스릴러 형식을 띠고 있던 영화는 미스테리 형식이 점차 강화된다. 릴라가 살해 당하던 당시 그림자와 뒷모습을 통해 살인자가 노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제시한다. 히치콕이 영화 중반부에 미스테리 형식을 취하는 것은 그가 능숙하게 다루는 서스펜스의 특성상 적절한 모험이다. 릴라가 쌓아올렸던 불안감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노먼의 기괴함이라는 형태로 전환되어 영화의 결말부로 유보된다. 그리고 노먼이라는 인물에 대한 수수께기를 풀어나가는 것에는 미스테리장르 형식으로 전환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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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이 어머니를 지하실로 옮기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릴라, 아보게스트(릴라가 실종되고 탐문을 온 탐정) 모두 진입 실패한 어머니의 방은 영화의 종착지이자 노먼의 기괴함의 근원이다. 그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카메라 움직임은, 첫 장면에서 샘과 릴라가 있던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의 움직임과 유사하다. 첫 장면의 샘과 릴라의 욕망의 중심으로 한 번에 들어가는 장면이었듯 이 장면 또한 노먼의 욕망의 중심인 것이다. 카메라는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에 가장 전지적인 시점(숨어서 볼 수 있는 시선에 한해서)을 우리에게 쥐어준다. 위에서 노먼의 움직임을 빼놓지 않고 우리는 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히치콕은 한 번 더 유려하게 미스테리의 진실을 유보한다.
 
마지막 장면은 릴라가 불안감에 휩쌓여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상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릴라의 상상은 보이스 오버로만 전달되며 그녀의 뒤틀린 표정만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되지만 카메라는 서서히 줌인 되며 노먼의 뒤틀린 표정만을 잡아준다. 노먼과 릴라의 차이가 노먼을 기괴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노먼과 릴라의 동질성은 우리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 이미지 출처


[조선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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