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느린 여행, 대만 –1. 나의 사소한 시선들 편 [여헹]

글 입력 2016.07.02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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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여행, 대만
- 1. 나의 사소한 시선들 편 -





[한 템포 쉬어가는 느림]

대만으로 홀로 여행 갔다 온 것도 일주일이 지났다. 지난 6월 19일부터 4박 5일 꽉 채워서 다녀왔다. 사실, 출발했던 6월 19일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에 나 홀로 해외 여행이라..! 누군가는 왜 굳이 외롭게 혼자, 그것도 생일에 가느냐고 의아해했다. 십 수년 째 생일이 시험 기간이었던 나는, 휴학 생활을 하며 생일이 시험기간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설렜고 기대됐다. 그러나 그 날이 시험기간이 아닌 사람은 휴학생인 나뿐이었다. 시험 기간일 친구들이 내 생일을 챙기느라 시간 뺏길까봐 (그 누구도 챙겨준다고 한 적 없다. ㅋㅋ) 이번 생일은 나 혼자 보내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하게. 애매모호한 겉치레의 축하 속에서 허하게 하루를 보내느니, 온전히 나만을 위한 하루가 되었으면 했다. 사실 더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몇 년 간 간절히 바라던 휴학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 100% 만족스럽지 못했다. 항상 짜여진 시간표와 주어진 과제 속에서 (타의로) 타이트하게 움직였던 나였다. 그러나 휴학을 하면서 하루 24시간의 모든 순간들을 내가 계획해야 한다는 게 가장 벅차고 어려웠다. 나름 바쁘게 살아본다고 이것저것 많이 일을 벌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게을러지고 스스로 위축되었다. 2월 말에 휴학을 허락 받았던 내 마음을 다시 되새겨보고자, 그리고 앞으로 복학과 졸업, 취업의 시간을 버텨내고자 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동안 추-욱 쳐지고 게을렀고, 귀찮았던 ‘느림’이 아니라 한 템포 쉬어가는 ‘느림’으로 하루하루를 가득 채워 다녀오고 싶었다. 대만, 특히 타이페이는, 내가 원하는 ‘느림’이 존재하는 차분하고 여유로운 여행지로 제격이었다. 4박 5일동안 도로에서 크고 작은 경적 소리 한 번 들은 적 없고, 황급히 뛰어가는 사람조차 없는 이 곳은 정말 차분하고 여유로웠으니까.





[불안의 씨앗은 어느새 숲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훌쩍 떠났다. 말 그대로 ‘훌쩍’이었다. 오죽하면, 평소에 “여행은 즉흥이지!”라고 외치던 친구가 “넌 진짜 대책 없구나. 정말 ‘노답’이네…”라고 했을까. 비행기 왕복 티켓과 4박 5일 간 묵을 숙소. 출발 당일 새벽까지도 그게 전부였다. ‘나를 위한 날에 나 혼자 떠나는 나의 여행인데 내가 그날그날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먹지 뭐!’ 처음엔 이게 바로 그 “여유로운 느림”이라 생각했다. 지금 보니 사실은 “게으른 느림” 그대로였지만. 내일 해외 여행 가는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하고 느긋했는데 갑자기 미칠듯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정말 이렇게 떠나도 되나 싶었다. 대책 없이 “되는 대로” 지냈던(지낼 계획이었던) 나 스스로에 대한 불안이었다. 괜히, 지난주에 수리 맡기느라 대신 사용 중이던 임시 휴대폰을 해외에 가져가도 되는지 걱정되었고, 가서 길을 잃어 ‘국제 미아’가 되지 않을까 두려웠고, 난 정말 왜 이렇게 대책없이 막 살고 있는지 속상했다. 솔직히 가장 중요한 비행기 표, 여권, 돈, 숙박 예약을 해결했으니 문제될 건 없었다. 즉, 불안이라는 존재는 내 마음 속에서 시작됐고, 내가 더욱 더 크게 키워내고 있었다. 결국 어떤 일이든 해결된다. 계획이 있거나 없거나 비행기 표만 있다면 곧바로 날아갈 것이고, 가서 지내다보면 뭐라도 하고 어디라도 갈 것이다. 작은 씨앗으로 시작되었던 내 안의 “불안”에 나도 모르게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주었다. 마음 속에서 불안은 숲을 이룬 것이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그 끝이 있다. “결국은”, 그리고 “곧” 해결되리라 믿고 이 두려운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두려움이 곧장 사라지진 못해도 점차 사그라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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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

대만 타오위안 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하자 출발 전에 느꼈던 불안감은 어디로 가고 없었다. 다만, 착륙 후 바깥 모습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두시간 반에 걸쳐 제주도에 온 게 아닐까 싶었다. 맑은 하늘과 귀엽게 생긴 야자수들을 보니 익숙한 제주도의 분위기가 느껴졌으니까. 기내에서 내리는 순간, 엄청난 더위와 습도를 몸소 접하니 ‘아, 대만은 대만이다.’ 싶었다. 당시 우기였던 대만은 비가 한 번 내리면 죽을 듯이 내리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내가 있던 5일 간 비는 오지 않았다. 대신 오전 10시에 39도를 찍고 체감 온도는 40도를 넘나들었다. 미친 더위와 끈적끈적한 습도는 우리나라와 너무도 달랐다. 이 더위에 버텨 자라는 야자수들, 한자 까막눈인 나에게 중국어로만 크게 적힌 가게 간판들... 모두 다 달랐다. 아니, 다른 것 같았다. 낯설다는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다. 분명 처음 온 대만인데 언젠가 한 번 와본 것만 같았다. 참 익숙했다. 아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기 때문이겠지. 맞다. 우리나라에선 낯선 야자수 나무지만, 야자수가 산을 이루고 있으니 소나무 가득한 우리동네 뒷산 같았고, 한자로 적힌 간판 말고 찬찬히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소박한 국수집이었다.

숙소로 향하는 지하철 역 안에서 어느 쪽 지하철을 타야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지 헷갈렸다. 이렇게 ‘국제 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또 다시 내 안의 불안이 꿈틀댈 때였다.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엉엉 울었고 엄마는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뭐라뭐라 화내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분명 아이는 지하철 역으로 내려오기 전 뭔가를 사달라고 떼 쓰고 있었을 것이고 아이 엄마는 안된다며 떼 쓰는 아이를 혼내고 있었을 것이다. 만국 공통의 이 광경을 보고 있으니 깨달은 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길을 잃으면 어때, 한국에서처럼 다시 반대편 열차를 타고 가면 된다! 



* 대만의 지하철(MRT) *

전혀 급하지 않다.
지하철 배차 간격이 2분 내외로 아주 짧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열차 출발-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허겁지겁 뛰지도 않고,
‘빠른 환승’을 검색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열차 도착 시간이 초 단위로 전광판에 나타나
성질 급한 한국인인 나에게 안성맞춤. 

차분하고 질서정연하다.
지하철 승/하차 대기선이 사선으로 바닥에 표시되어있다.
하차하는 승객들과 부딪힐 일도 없고,
보기에 복잡하지도 않았다.






[여행자의 마음]

혼자 여행하면 심심하지 않냐고 많이들 묻는다. 전혀 심심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언젠가부터 혼자 사는 것을 꿈꿨었다. 시간이 날 때면 혼자 영화를 보러 가거나 전시회엘 다녀오기도 한다. 친구가 없다는 걸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을 어색해하거나 초라해 하지 않고 오히려 즐긴다는 말이다. 혼자 있으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따라 내 발걸음 속도에 맞춰 걸을 수 있고, “넌 어때? 넌 이거 괜찮아?” 묻지 않고 내가 진정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그래서 혼자 여행 온 것이다. (누군가와 같이 여행할 때 함께 감정을 나누고 같이 감탄하며 다니는 건 부럽다.) 심지어 혼자 숙소를 썼으니 혼자 사는 꿈을 5일은 이뤘다고! 

대만2-3.JPG▲ 문제의 그 2인분... 키키레스토랑
 
그러나 여행 이틀째 되는 날, 처음으로 혼자 있는 게 부끄러웠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아 유명한 현지 식당 ‘키키레스토랑’에서였다. 가게 내부에는 모두 다 한국인이었고 혼자 온 한국인은 나 밖에 없었다. 아무렴 어때?! 맛있게 먹자! 그 순간. “저기요, 혼자 밥 먹으면 안 심심하세요?” 뭐지, 혼자서 2인분을 시켜서 그런가? 같이 먹자는 건가? 놀리는 건가? 당황스러웠지만 차분하게 그 분을 처치(?)했다. 기분이 조금 가라앉은 채로 숙소에 들어왔다. 너무도 적막하고 낯설고 답답했다. 혼자 있음이 확- 실감났다. 조금은 억울했지만, 혼자 와도 안 심심하고 오히려 더 재밌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물론 그 분께 보여드릴 순 없지만… 그 분, 읽고 있나?!!) 이 상황을 내면에서 인정하자, 다음 여행지로 걷는 내 스스로가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느껴졌다. 길을 걸을 때 좋아하는 노래를 조금 크게 흥얼거리기도 하고, 풍경에 감탄하는 말도 “우와! 진짜 멋지다!” 내뱉어 보았다. 

누구랑 오건, 상황이 어떻건 상관없다. 여행 왔으니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된다. 혼자 왔으면 내 취향껏 다니면 되고, 더우면 땀 흘리면 되고, 힘들면 일정을 미뤄도 된다. 어찌 보면 이 대만 땅에서 ‘여행자’는 가장 낯선 존재이자 가장 자유로운 존재다. 있는 그대로. ‘이번에 모든 걸 다 보고 가야지.’ 보다는 ‘다음에 또 와서 또 보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이게 여행자의 마음이 아닐까?


여행자의마음.jpg▲ 샤오미 매장에서 보조배터리 구매 후, <여행자의 마음>을 새겼다!
 

[황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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