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회 속 미술, 함경아 작 '오데사의 계단'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6.3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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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사회 속 미술 - 행복의 나라’전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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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1980년대 정치사회 변혁기에 일어난 정치적 아방가르드 미술인 ‘민중미술’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들을 주고 다루고 있었다. 독재정권, 분단현실, 자본주의의 병폐, 개발 중심의 급속한 근대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등 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만나 보았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었던 
<오데사의 계단>(함경아, 2007, 나무, 폐기물 오브제, 경기도미술관 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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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의 계단>은 함경아 작가의 2007년 작품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위에는 다양한 오브제들이 설치되어있다. 계단 뒤 쪽으로는 집 내부를 형상화한 공간이 있으며 오른쪽 측면에는 문과 창문들이 구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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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의 계단>은 전시장 내 대부분의 민중미술 작품처럼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간접적이고 비유적인 방식을 쓰고 있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관람자들은 처음부터 '군부독재정권과 사회적 모순 비판'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곧바로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차용한 ‘오데사의 계단’이라는 배경을 알고, 작품에 사용된 소재가 전 군부독재정권의 대통령 사저에서 나온 폐기물임을 알고 나면 작품의 메시지가 더욱 와 닿는다. 소재의 출처에 따른 모순과 함께,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소재의 대비와 공간적 대비를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우선, 이 작품은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 속 ‘오데사의 계단’ 장면을 차용해 한국 군부독재정권을 비유하고 있다. 오데사의 계단은 1905년 제정 러시아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반란과 이에 대한 차르 군대의 양민학살이 일어났던 장소이다. 그리고 에이젠슈타인이 영화 속에서 연출한 오데사의 계단 장면은 몽타주 기법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함경아의 <오데사의 계단>은 다른 역사적 상황에 우리사회 현실을 비유하고, 영화 속 장면을 미술에 차용하여 효과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오데사의 계단>은 소재의 대비를 통해 모순을 드러내어,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원목, 코팅된 나무, 나무 기둥과 창문 등 다양한 나무를 소재로 하고 있다. 나무는 그 소재의 특성 때문에 따뜻함과 친밀함을 느끼게 하며, 따뜻한 색감으로 시각적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특히, 작품을 가까이서 보다 보면 오래된 나무의 냄새가 은은하게 나기 때문에 후각적으로도 그러한 특성은 더욱 부각된다. 
그러나 이 모든 나무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저를 수리하면서 버려진 폐기물이다. 이를 알게 되면 관람자들은 충격을 받게 될 것이고 따뜻함에 대비되는 서늘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즉,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인상과 소재의 출처를 알게 된 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이 모순되어 군부독재정권 역사를 비판하는 주제의식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곳곳에 나무라는 소재와 대비되는, 차갑고 강하며 폭력성이 드러나는 오브제들이 설치되어 이러한 모순이 더욱 부각된다. 계단 맨 위 양쪽으로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삼엄한 감시를 받는 느낌을 주며, 앞쪽에 비상구 표시등을 나열해 일종의 위기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중간에 액자 속에 있는 권총이나 쇠파이프 등이 군사 무기를 연상케 해 폭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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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특징적인 것은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트와 그 속에 포처럼 설치된 쇠 파이프이다. 이는 군사독재정권 때 시민들을 탄압하는데 쓰였던 장갑차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군인에 의해 한 여자가 살해되고, 그녀가 놓친 유모차가 위태롭게 굴러 내려오는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대형 마트의 카트를 소재로 이용함으로써 역사 속 군사독재 뿐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성장 중심주의의 부작용까지도 비판하고자 하는 것 같다.


다음으로, 이 작품은 공간의 대비에 따른 반전으로 관객에게 충격을 전달한다. 
작품의 앞면에서 양민학살의 장소인 오데사의 계단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후면에는 평범한 사람의 집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오른편에 여러 개의 문이 설치되어 있어 집 내부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며, 그 속에는 텔레비전과 죽어있는 화분, 의자와 그 앞에 놓인 슬리퍼, 축구공, 멈춰있는 시계 등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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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매우 평범한 오브제들로, 한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앞 공간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과 달리 뒤쪽 공간은 그러한 감시에서 벗어난 개인적이고 편안한 공간으로 보인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는 점과 슬리퍼가 의자 앞에 나란히 놓여있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거나 조금 전까지 존재했던 흔적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전직 대통령의 집에서 버려진 물건들이라는 점에서 또다시 반전된다. 앞면에서 드러나는 독재정권 지도자의 모습과 후면에서 드러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 모순되기 때문에 관람자들은 혼란스러움과 불편함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간을 전체와 부분으로 나누어 대비시켰을 때도 모순이 드러난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장갑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작품 위쪽에 다리가 드러나지 않게 설치된 의자 두 개와 앞 쪽에 포를 형상화 한 쇠 파이프들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면에 구성된 집 내부의 모습은 장갑차의 내부가 될 것이다. 탄압과 폭력성의 상징인 군사 무기와 그 속에 안전하게 숨어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 대비되어 분노나 불편함을 유발한다. 

작품의 맨 아래쪽에는 ‘공간 속 공간’ 형식으로 작은 문을 설치하고 비디오테이프들을 나열해 놓았다. 이 비디오테이프들은 ‘붓다’, ‘열반의 세계’, ‘새벽예불’, ‘불자예절’ 등 불교 사상을 상징하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다른 오브제들과 마찬가지로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나왔을 이것들은 독재의 폭력성과는 완전히 대비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한 사람의 내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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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함경아 작가의 <오데사의 계단>은 다른 역사적 상황과 영화 속 장면을 차용해 우리나라 군부독재정권 역사를 비판하고 있으며, 그 방식으로 소재의 대비와 공간적 대비를 통해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나무라는 따뜻한 느낌의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출처를 밝힘으로써 우리에게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고, 차갑고 강한 오브제들과의 대비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앞과 뒤, 전체와 부분이라는 공간적 대비를 통해 군사독재의 폭력성과 한 인간의 평범함을 모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름대로 작품에 대해 분석을 해보았는데, <오데사의 계단>은 정치적 메시지가 전면에 드러나 있지 않지만 오히려 깊은 여운을 남겨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민중미술’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게 되어 정말 좋았다. 이들은 예술 그 자체의 실험보다 사회를 비판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는데, 예술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현실을 폭로하고 고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많은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민중미술과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들을 나에게 재조명해준 의미있는 전시였기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다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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