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원령공주 - 자연파괴에 대한 경각심 [문화전반]

글 입력 2016.06.2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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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령공주 - 자연파괴에 대한 경각심


모노노케히메 포스터.png
 

‘자연에 대항하는 인간’과 ‘그 자연을 지키려는 원령’들의 대항
 그리고 원령공주의 주인공인 ‘산’과 ‘아시타카’의 이야기


작품의배경



무로마치시대.png


원령공주의 시대적 배경은 중세 무로마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역사적으로 현대 일본을 형성시킨 시작의 시기이면서 근대화의 과정 중에 있는 시대이다. 혼란스러운 역사의 시점으로 숲을 파괴하며 발전을 이룩하려는 인간들과 필사적으로 숲을 지키려는 신들과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야자키는 무로마치 시대가 인간들이 자연에 경외함을 잃기 시작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이 시기가 인간 종말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무로마치 시대가 ‘세기말적 영화의 가장 의미 있는 배경이 될 것이라’는 미야자키의 말처럼 이 영화의 배경은 종말론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작품의 줄거리



줄거리.png
 

평화로운 마을 부근의 숲에서 어느 날 갑자기 재앙신이 나타나 마을을 습격하려 한다. 이때 마을의 차기 족장인 아시타카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재앙 신에게 활을 쏘아 그를 죽인다. 그 대가로 오른팔에 저주를 받아 점차 죽어가게 된다. 저주를 풀기 위해 무녀를 찾아간 아시타카는 무녀로부터 서쪽에서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서쪽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하던 중 서쪽의 시시가미(사슴 신)에서 저주를 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슴 신의 숲으로 향한다. 사슴 신의 숲 근처 철의 마을인 타타라바에 도착한 아시타카는 우두머리인 에보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역을 넓히기 위해 사슴 신의 숲을 벌목하여 동물 신들이 재앙 신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마을을 습격한 재앙 신이 이곳 때문에 나타난 것을 알게 된다.
  한편 그것을 막기 위해 늑대 신에게 길러져 자신이 동물 인줄 아는 산(모노노케히메)이 늑대 신들과 함께 싸우는 것을 알고 그들의 편에 서게 되고 인간들을 막으려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슴 신은 아시타카의 저주를 풀어주게 된다. 하지만 인간들의 계략으로 사슴 신의 목이 잘리게 되어 재앙 신으로 변한 사슴 신은 숲의 모든 생명을 빼앗자 잘못된 것을 느낀 에보시가 사슴 신의 목을 돌려주어 숲이 다시 살아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감독의 연출



연출.png
 

자연과 인간의 싸움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노력한 아시타카의 노력에 의해서 모노노케 히메는 인간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되고, 에보시도 숲의 최고신을 죽여 자신의 마을이 파괴되고 많은 생명이 사라진 것을 보고 자연의 파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더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 밝힌다.
  이와 같이 모노노케히메는 보다 현실적인 화법으로 극적인 해결이 아닌 보다 나은 세상으로의 한 걸음을 강조한다. 하루 아침에 세상이 모두에게 좋은 유토피아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작은 노력과 변화들이 쌓이며 변해가는 것으로 그런 노력과 변화에 대한 인식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이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에서 대자연에 종속된 인간과 자연은 이제 공존을 넘어서 공생관계로 자리잡게 된다.


평론.



위와 같이 이 영화는 자연파괴와 인간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인간들에게 자연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도록 현실적인 화법을 사용하면서 이야기 하고있다. 영화의 배경은 무로마치 시대 이지만 현 시대에서도 자연파괴에 대한 사례들을 볼 수 있으며 사대강사업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강을 이용한 관광지 유치가 목적이였지만, 집단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어 무분별한 자연 파괴로 강을 죽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부근 생태계는 파괴되고 이로 인해 그 주변 인가 즉, 인간에게 피해가 오게 되고 그 피해는 더욱더 심화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생태계의 변화, 인간의 종말 과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현 시간에도 인간은 이익을 위한 발전으로 무분별한 자연파괴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인간에게 어떠한 피해가 닥칠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계속된 자연파괴로 자연은 망가지고 회복되지 않으며 점차 죽어가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처럼 필자는 인간의 변화의 한걸음을 바란다. 무분별한 자연파괴가 아닌 자연스러운 발전 극적인 파괴가 아닌 자연스러운 변화를 원하는 것이다. 사대강사업이 강을 알고 보존하면서 이루어 졌다면 강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시간에도 자연은 죽어가고 있고 인간들은 경각심을 느끼며 자연과의 공존을 물색해야 할 때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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