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WELL-DYING [예술철학]

죽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엔 결코 스스로를 기만 할수 없다.
글 입력 2016.06.2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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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다잉 전문서적들


     몇년 전만 해도 한국에 well-being(웰빙)열풍이 한창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웰빙 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는 동시에 상업적 키워드도 같이 떠오른다. '웰빙음식' '웰빙화장품' 부터 시작해서 '웰빙가구' '웰빙기구'등을 간판으로 내걸어 음이온, 원적외선과 같은 성분들이 나와 건강을 지켜준다는, 이른바 '웰빙'이면 다 통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그렇게 외치던 웰빙(well-being)이 웰빙(well-living)으로 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걸 깨달은건지ㅡ혹은 유행따라 한물간 키워드가 되버린 건지ㅡ2016년 지금와서도 웰빙을 외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웰빙 이라는 키워드가 시대에 맞게 다른 키워드로 탈바꿈 했을지도 모를일이다. 잘 살아내기 위해서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해서, 필요를 충족하며 살길 원해왔던 예전시절과는 다르게,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웰빙 키워드는 #미니멀리즘 을 추구하며 심플하고 단순함을 찾는 삶을 웰빙의 다른 말로 부르고 있는 듯 하다. 많이 가진다고, 많이 먹는다고 잘 살아지는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버릴것을 버리고, 버리지 못하는 것도 버릴 수 있도록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임을 눈치챈것과 같다.서점에 가도 웰-다잉에 대한 책들이 제법 눈에 띈다. 그 단순하고도 절제된, 상실에 대한 허기짐과 허무함에 대한 관심은 well-dying(잘 죽는법)으로 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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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 검색창에 웰다잉을 쳐보았다


       서양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우리의 장례 풍습과 같이 죽음을 어둡고 가까이해서는 안될 존재로 보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 있을 내세에 대한 제사는 서양과 동양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웰다잉이라는 단어 또한 서양에서부터 시작된 용어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 혹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처신들을 어떻게하면 지혜롭게 할 수 있을 것인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어떤 식으로 장례되길 원하는 가' 같은 죽음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챙기며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써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택하는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카밀라 틸링 (소프라노) 페터 마테이 (바리톤) /덴마크 방송 교향악단 /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예술가들이 표현해냈던 죽음에 대한 여러가지 묘사중, 레퀴엠 이야기를 웰 다잉과 빗대어 이야기하고 싶다. 많은 레퀴엠중에 유독 내가 좋아하는 레퀴엠이기도 한 브람스의 독일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 Op. 45, J.Brahms-을 살펴보면, 이 작품은 그의 은사 슈만의 죽음 그리고 가장 의지하고 사랑해왔던 그의 어머니의 죽음을 함께하며 10년에 걸쳐 작곡한 그의 삶이 담긴 장송곡이다. 
제 2악장, 3/4박자의 두번째 박에 강박을 주어 관을 들고 입관할 때의 사람들이 밟는 발자욱을 떠올리게 되며 제 5악장에서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나의 위로가 어디서 옵니까 외쳐되던 그에게 합창단원들의 멜로디는 메아리처럼 어머니께서 너를 위로해 줄 거라고, 지켜보고 있을 거라며 그를 다독인다. 제 1악장과 7악장은 서막을 여는 부분과 마무리를 짓는 악장으로 둘 사이는 닮아있지만, 무겁고 어두운, 짙은 느낌의 1악장에 비해서 7악장은 좀 더 밝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7악장 또한 어둡고 무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7악장의 악상기호는 'Feierlich'시작한다. 엄숙하게, 장엄하게 라는 뜻 이 있는 동시에 축제의 분위기로 라는 뜻으로 해석될수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분위기의 축제를 떠올리면 곤란하고, 오히려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 과 같다. '축제'와 '장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수 있지만, 축제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죽음 이후에 있을 내세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 같다. 독일레퀴엠 뿐만 아니라, 브람스는 평생에 걸쳐서 '죽음'에 대해 깊히 생각하며 숙고해왔던 작곡가이다. 그가 독일레퀴엠이라는 '웰 다잉'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이전에, 따뜻하고 감성적인 성품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잘 사랑해왔던, 또한 작곡가로서 잘 늙어왔던 그가 있었다. 

     잘 죽는 것 또한 이런 것 같다. 더이상 죽음을 몰아세울 필요도 없이 우리는 조금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늘 우리곁에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의식하고 사는 삶이길 바란다.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게다가 슬프지 않아야 할 죽음또한 없다. 웰 다잉이라는 것은, 잘 죽기 위해 하는 모든 준비까지의 과정 그 자체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해 자초하고 살아가는데, 니체가 말했던 '영원회귀'와 같은 삶을 오해하여 매일 반복한다면 그 처럼 허무하고 공허한 삶이 없을것이다. 자신의 사건을 삶 그 자체로 살아내는 것에 우리의 웰빙과 웰 다잉이 공존한다. 웰빙 이전에 웰 다잉에 눈을 두기 시작하는 것이 그 과정중 하나 일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는 잘 늙어가야 한다. 그 과정없이는 웰빙도, 웰 다잉도 결코 완성되지 않을것이다. 사람들이 좀 더 웰 다잉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사람 사는 곳에 늘 그렇듯이 죽음마저 과시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잘 죽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엔 결코 스스로를 기만 할수 없다. 죽음과 나 자신 그 둘 뿐이니까.





*사진출저



[박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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