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다운' 글을 쓰고 싶다 [문학]

글 입력 2016.06.2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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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작가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박범신의 <나마스테>를 읽었을 땐 그에 이어 <촐라체>, <비즈니스>, <은교>를,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나서는 <그 남자네 집>, <그 여자의 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다. 딱히 내가 박범신 작가나 박완서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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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책의 90%가 장편소설일 정도로 책에 있어서 편식이 심한 내가 유일하게 읽은 산문집이 있다. 바로 이병률의 여행산문집이다. 베스트셀러에 관심이 없는 탓에 서점을 배회하며 책들을 둘러보던 중 그저 하늘색 표지가 예쁘다는 이유로 선택한 책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였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이병률의 다른 책인 <끌림>과 <내 옆에 있는 사람>까지 자연스레 찾아 읽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것들의 나의 책장을 차곡차곡 채워갈 때 쯤, 내가 그토록 작가별로 책을 읽는데 끌렸던 이유를 알았다. 그건 책을 쓴 작가를 알아가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일상의 사소함에 예민한 사람


 여행산문집이라고 했을 때 처음엔 작가가 어딘가를 여행하고, 그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록한 마치 일기장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 실린 사진들은 어딘지 모를 이국땅이었고, 그렇기에 책장을 펼치는 순간 아름다운 이국땅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질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병률의 여행산문집에서 오히려 그런 내용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그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cool-living-room-ideas-for-the-wall-small-design-on-living-design-ideas.jpg▲ -구글 이미지 발췌
 


하루 한 번쯤

처음 영화관에 가본 것처럼 어두워져라.
곯아버린 연필심처럼 하루 한 번쯤 가벼워라.
하루 한 번쯤, 보냈다는데 오지 않은 그 사람의 편지처럼 울어라.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밖에는 없을 것처럼 좋아해라.

누구도 이기지 마라, 누구도 넘어뜨리지 마라.
하루 한 번 문신을 지워낼 듯이 힘을 들여 안 좋은 일을 지워라.
양팔이 넘칠 것처럼 하루 한 번 다 가져라, 세상 모두 내 것인 양 행동하라.

하루 한 번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으라, 내가 못하는 것들을 펼쳐놓아라.
먼지가 되어 바닥에 있어보라.
하루에 한 번 겨울 텐트에서 두 손으로 감싼 국물처럼 따듯하라.

어머니가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만큼 애틋하라.
하루 한 번 내 자신이 귀하다고 느껴라,
좋은 것을 바라지 말고 원하는 것을 바라라.
옆에 없는 것처럼 그 한 사람을 크게 사랑하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中 #48



 극장이라든지, 연필심이라든지, 하물며 먼지라든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가지고, 어느 순간 바라본 하늘이 너무 맑아서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마는 그런 감정을 이 책은 선물하고 있었다. 이병률 작가를 만나본 적도, 그에 대해 검색해본 적도 없었지만 참 일상의 사소함에 예민한 사람이겠구나, 지나온 길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겠구나, 그래서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 공부에 치여 학교 옆 둑방길의 벚꽃나무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에도 책에 코를 박고 공부를 했던 그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으로 책의 저자에 대해 궁금해졌다. 수많은 도시들을 여행하면서도 화려한 건축물과 이국적인 풍경이 아닌 일상의 사소함을 떠올리는 그 사람의 태도가, 일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다른 글에는 어떻게 녹아들어 있을지 만나보고 싶었다. 때문에 그의 다른 책으로 손이 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그렇게 다음으로 읽었던 책이 이병률의 또 다른 여행산문집 <끌림>이었다. 그 속에서 일상의 사소함에 주목하는 그의 모습과 더불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건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뭔가를 그곳에 두고 왔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딘가 먼 곳으로 여행을 갔다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한 걸 
그만, 두고 온 거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건데
과연 나는 찾으러 갈 성격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
.
.
결국은 물건일 경우, 가지 않을 것 같단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 사람 문제인 경우엔 조금 다를 거란 생각.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다를 거란 생각.
.
.
.
<끌림> 中

  
아무 날도 아닌 어떤 날에
.
.
.
전철에서 감을 나눠준 어르신도,
 밥도 못 먹고 다닐 것처럼 후줄근한 행색의 나에게 인사를 챙겨준 카페 주인도 
그냥 살면서 할 일을 한 것뿐이다. 
그냥 허구한 아무 날들 가운데 내키는 일을 한 것뿐인데 
나 같은 사람아, 이런 일들을 액자에 넣어두지 않고 살며 어때서, 괜히.

<내 옆에 있는 사람> 中



Streets_of_Sanaa,_Yemen_(10732822016).jpg▲ -구글 이미지 발췌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부터 시작해서 <내 옆에 있는 사람>까지 이병률의 여행산문집 3권을 읽고 나니, 그가 세상 곳곳을 여행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골목골목을 헤매고, 길가다 우연히 마주친 아버지와 아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하늘이 붉게 물드는 해질녘엔 아까 마주쳤던 부자를 떠올리는 그런.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의 글이 내게 일러주고 있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사람냄새때문에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사람한테 상처도 자주 받는 사람이라고. 
 누군가의 글을 통해 그 사람을 알아간다는데 재미를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계기가 이러했다. 





 지난 4개월간 나는 ART insight 서포터즈 7기로, 매주 오피니언을 기고했다. 일주일에 한 번 씩. 문화예술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30여 건의 글을 써내려갔다. 처음에 서포터즈를 하기로 했던 이유는 그저 글을 좋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달리 소박한 목표가 생겼다. 바로 나다운 글을 쓰는 것이다. 박범신의 책을, 박완서의 책을, 그리고 이병률의 책을 무언가에 홀린 듯이 읽어 내려갔던 이유가 ‘그들다움’에 있듯이, 나다움을 담아내는 그러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읽으면서 글을 쓴 이가 궁금해지는,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즐거운 그런 글. 이제 더 이상 ART insight 오피니언에 기고를 하진 않겠지만, 어느 작가에게 빠져드는 일은, 그리고 나다운 글을 쓰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반채은.jpg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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