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미술에 대하여 [시각예술]

영화 ‘아가씨’로 본 영화 미술
글 입력 2016.06.2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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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를 몰며 개봉한 ‘아가씨’를 보았다.
배우들의 연기, 파격적인 노출신, 영화의 반전들을 모두 뒤로하고,
나를 사로잡은 것은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한 미장센이었다.

배경, 건물, 가구, 벽지, 소품, 실내장식, 의상 등 ‘아가씨’만의 색이 담긴 볼거리들은 압도적이며, 묘하고,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고 동시에 정돈된 느낌이었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는 아쉽게도 수상 목록에 이름을 올리진 못했지만, 류성희 미술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벌칸상(The Vulcan Award of the Technical Artist)을 수상하였다.
벌칸상은 미술, 음향, 촬영 등 칸영화제 초청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의 아티스트를 선정해 주는 상이라고 한다.
류성희 미술감독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함께, 
영화 미술과 미술감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영화 미술이란 무엇인가?
: 프로덕션 디자인?


“주제를 영화 전반에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모든 공간과 사물에 대한 스타일과 룩을 색상·형태·질감 등을 통제하고 조절하여 계획하고,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특수효과 등의 작업과 적절한 협업으로 전개되도록 실현하는 영화 미술이다. 동시에 영화 제작 전반에서 주제 표현이 시각적으로 명확하고 일관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미술이다”
 
영화에는 내러티브(영화의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인물’과 ‘공간’이 존재한다.

영화의 주제에 따라 인물과 공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특정한 시각화 단계가 필요한데, 
이를 구성하는 작업이 바로 ‘영화 미술’이다.
이러한 영화미술은 최근에는 ‘프로덕션 디자인’이라고 불리고 있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대중들에게 아직까지는 약간 생소한 개념이다.
적절한 용어가 없기에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미술감독'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미술감독은 '아트 디렉터'에 더 가깝다고 본다.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보다 더 큰 범위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영화 전체의 ‘룩’(look:외양), 미술 시스템을 총괄하는 것이다.
세트, 의상, 소도구, 대도구, 분장 등을 모두 아우르며,
한 편의 영화가 드러내는 세계를 순수하게 '시각적 언어'만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바로 프로덕션 디자이너이다.
 


영화 미술의 역사


요즘에는 한국영화도 영화의 '비주얼'에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고, 
미술 스태프의 중요성도 강하게 인식되지만, 이렇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327954.jpg▲ 그대안의 블루(1992)


이현승 감독의 [그대 안의 블루](1992)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의 안상수 교수가 처음으로 '아트 디렉터'라는 이름으로 참여했고, 김성홍 감독의 [신장개업](1999)에 최병근 교수(현재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가 최초로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달세계여행7.jpg▲ 달나라 여행(1902)
 

영화에 최초로 미술의 개념을 부여한 사람은 [달나라 여행](1902)으로 유명한 조르주 멜리어스였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 미술을 총괄하는 모든 법칙들을 발견하고, 현대 영화 미술의 근원을 이루는 프로덕션 디자인 방법론을 개척했다. 
프로덕션 스케치와 스토리보드를 최초로 선보였으며, 마술사 경험을 이용한 특수한 무대장치와 기발한 촬영과 편집 기법으로 관객들에게 현실감 있는 환상적 시각 체험을 제공했다.
 
영화가 점점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잡한 내러티브가 등장하고, 미술이 더 이상 시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데 머무르지 않게 된다.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에서 영화 전반의 스타일을 다루는 아트 디렉터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944054_69cabinet-du-dr-caligari-08-g.jpg▲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작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는 '영화 미술'에 있어서 결정적 영화로 알려져있다.
 
이후 시각적 스타일인 룩(look)은 영화 제작에서 가장 먼저 논의하고 결정되는 사항이 되었다.
‘영화의 룩’은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제작 초기 콘셉트 회의의 주제이기도 하다.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의 영화에 대한 개념은 글로 되어 있어 시각적 매체인 영화에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의 시각적 콘셉트를 위한 회의는 이런 모호한 커뮤니케이션이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시각적 자료와 그의 디자인 철학으로 명확해지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아가씨’의 비주얼을 완성한 류성희 미술감독의 주요 공간 코멘터리를 살펴보며 영화미술,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자.
 


'아가씨' 속 영화 미술


#히데코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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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코와 숙희가 조금씩 가까워지게 되는 공간. 미술감독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건 이 영화가 애너모픽렌즈로 촬영된 까닭에 히데코 방을 포함해 모든 공간을 실제 크기보다 크게 지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공간이 커지면 그곳에 채워넣어야 할 물건도 많아진다. 그러면서 지저분한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소품들을 이베이에서 구매해 채워 배치하기도 했다. 공간이 크다보니 침대가 은밀한 느낌이 없었다. 침대 머리맡에 커튼을 쳐 은밀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쿠션과 작은 소파 같은 가구를 히데코와 숙희의 베드신에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침대 발쪽에 두었다. 시트는 차가운 색 계열로 설정했다.
 

#코우즈키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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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이 코우즈키에게 접근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참관하는 낭독 무대.
시대를 재현하는 데 충실했던 영화‘암살’과 달리, ‘아가씨’는 공간을 캐릭터로 만들어야 했기에 더욱 작업하기 어려웠다. 특히 코우즈키의 서재는 가장 고심해 만들었다. 코우즈키가 물질과 향락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공간이기에 단순히 멋지고 고풍스럽게 꾸미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서재라는 공간에 코우즈키의 도착적인 성(性)적 욕망과 사대주의적 허영이 묻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로케이션 헌팅을 위해 지난해 일본을 방문 중 문득 서재 내부에 일본식 인공 정원을 들인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일본의 정원은 산과 강 같은 자연 세계를 축소해 제한된 공간에 재현한 것이다. 코우즈키의 서재는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DIMA 종합촬영소 실내 스튜디오에 지었다. 바닥의 다다미 장판을 들어내면 실내 연못과 수석(水石), 분재가 있는 정원으로 탈바꿈한다. 평소엔 코우즈키의 집무실이지만, 그가 귀족을 초대해 변태적 욕망을 공유하는 사교 공간, 히데코가 서책을 낭독하는 공연장이 되기도 한다. 


#동서양의 결합 코우즈키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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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의 주요 무대. 네 남녀, 히데코와 숙희 그리고 백작과 코우즈키의 욕망과 음모가 교차하는 무대이자 각 캐릭터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된 곳. 대부분의 사건이 아가씨의 저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시대적으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리얼함을 가져가되, 저택 안에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판타지적 요소를 살리고자 했다. 일반적인 시대극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결합한 독특한 건축 양식, 후견인의 욕망이 담긴 서재, 화려하면서도 차가운 분위기를 지닌 아가씨의 방까지 캐릭터와 어우러지는 생명력 있는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작품을 작업할 때보다 조금 더 많은 고민과 시간이 수반되니 힘들어지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각각의 신안에서 비어있는 공간마저 살아 있는 주인공처럼 극에 스며드는 모습들을 보며, 미술감독으로서 굉장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초반, 사사키 부인은 새로운 하녀로 들어온 숙희를 안내하며 “일본과 영국을 존경한 주인 코우즈키가 양쪽의 건축법을 본따 지었다”고 설명한다. 저택은 일본식 기와집과 서양식 건축물 등 서로 다른 양식의 건물 두 채가 한 건물처럼 기이하게 붙어 있는 구조다.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혼재하는 건물을 찾았고, 마침내 일본 미에현 구와나시에 위치한 저택을 외관 촬영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이 건물은 두 가지 양식이 서로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후반 작업에서 CG(컴퓨터 그래픽)로 완전히 새로운 서양식 저택 구조를 덧입혔다.
 
 
이렇듯, 영화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역할은 감독 못지 않게 굉장히 중요하다.
엔딩 크레딧에서 감독, 작가, 배우 뿐 아니라 
프로덕션 디자이너 혹은 아트 디렉터가 누구인지도 잘 살펴보고, 
이 사람이 이 영화의 ‘비주얼’을 만들었구나.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참고자료: 
프로덕션디자이너, 2014. 2. 28., 커뮤니케이션북스
네이버 영화 매거진 [영화 아가씨 제작 비밀]
   

[반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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