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고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6.2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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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불리는 53세 여성의 의문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고모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조카인 카와지리 쇼가 그녀의 죽음 이후 어질러진 방을 치우는 사건을 발단으로 하여 영화는 마츠코의 삶을 함께 되짚어본다.
 
 
"인생의 가치는 말이야. 다른사람에게 뭘 받았는지가 아닌, 다른사람에게 뭘 주었는가로 정해지는거야."
 
 
평범하고 예쁜 음악 선생님이었던 마츠코에게는 어릴 적부터 아픈 동생 만을 챙기는 아빠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콤플렉스가 있다. 영화는 이 작고 사소해보이는 '결핍'이라는 첫 단추가 이후 마츠코의 인생을 어떻게 조금씩 비틀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나비효과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마츠코가 자초한 일 같아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도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마츠코의 방식은 어리숙하기만 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결국 이 모든 일들이 하나의 필연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일생 동안 사랑을 주기만 하고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스스로를 사랑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신'과 같은 사람인 마츠코는 결국 허무하고 초라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필연적이라고 하면 사랑 받지 못한 여자의 초라한 최후라고 오인할 수도 있지만, 영화는 결코 그녀의 삶을 초라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녀의 삶을 "무엇을 주는가"에 따라 평가되기에 '신'과 가까운 존재가 되며 그녀는 웃으며 노래하고 천국으로 한 계단씩 다가간다.
 
 
과도한 해석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마츠코의 인생을 조금씩 무너지게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이다. 첫 단추를 잘못 잠그도록 한 것은 아빠이며, 이 후 직장에서 쫓겨나도록 한 것은 마츠코 반의 남학생이며, 그는 성장해서 야쿠자가 되어 또 한번 마츠코의 삶을 망치게 된다. 그 사이에 만났던 남자들도 마츠코를 이용하고 가차없이 버리거나, 혹은 자살을 하는 등으로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다. 집을 나와 가족이 없는 마츠코는 혼자가 되는 것 보다 맞거나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흔히 여자는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 가치가 결정되는 양 이야기된다. 그러한 시각에서 마츠코의 인생은 남자 잘못 만나서 꼬여버린 인생으로 치부될 수 있다. 사실 삐뚤게 보아서 나도 그러한 해석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반대로 마츠코의 사랑이 그 남자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결코 그녀의 인생을 불행한 인생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마츠코에 대한 동정, 존경, 그리고 이 영화를 영화로서만 볼 수 있는 나의 삶에 대한 감사함과 불편함 등의 감정이 교차했다. 동정은 불행이 교차하는 그녀의 삶에 대한 것이며, 존경은 그러함에도 포기하지 않던 변함없는 사랑에 대한 것이며 감사함은 나의 일생이 마츠코와 닮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것이며 동시에 불편함도 같은 이유로 온다. 사랑을 받지 못했던(이후에 아빠가 마츠코를 사랑했음이 밝혀지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마츠코에게서 사랑을 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세상의 사랑이 변하지 않는 총량으로 존재한다면 누군가는 마츠코와 반대로 사랑을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한다는 뜻이 아닐까.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왔는지 성찰해보게 된다.
 
 
영화의 연출은 뜬금없는 노래나 기괴한 장면들, 과장스러운 연기 톤 등으로 인위적인 느낌을 준다. 일본스러운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일본 영화 중에 가장 신선하고 특색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특히 그녀에게 유일하게 힘이 되어주는 '노래'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고난이 닥칠 때 마다 "난 내 인생이 끝난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라고 말하며 마지막에 천국의 계단을 오를 때에도 어릴 적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어느덧 나도 흥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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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영화의 제목이 수정될 필요가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마츠코를 혐오스러운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마츠코는 다만 자신을 돌보지 못했을 뿐 누구보다도 타인을 향한 사랑과 감정에 솔직한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혐오스러운 것은 그녀에게 가혹했던 일생이다. 따라서 '마츠코의 혐오스런 일생'이 적절할 것이다.


[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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