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즈니 속 ‘티아나’는 온전한 인물인가? [영화]

미국 애니메이션에 숨겨진 정치성 비판
글 입력 2016.06.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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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The Princess And The Frog, 2009)>

 
세계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사 ‘디즈니’의 행보는 많은 이들이 주목한다.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사로잡은 그들의 작품 활동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교훈을 깨우치기도 한다. <톰과 제리>속 톰을 놀려먹는 제리를 보며 통쾌해하고 <백설공주>나 <인어공주>를 보면서 동경한 적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성장기의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가는 데 있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애니메이션은 우리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어렵지 않게 대중들에게 접해지고 있으며, ‘동심’이라는 낱말 아래 유희의 수단으로서 자연스럽게 수용되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 단순하고 일차적으로 보이는 텍스트 안에, 관객들이 무심코 지나친 정치성이 숨겨져 있다.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대중미디어가 전달하는 ‘언어’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유쾌한 방식으로, 그러나 아주 은밀하게 조작돼 지금까지 다양한 인종, 세대의 대중들에게 주입되고 있었던, ‘우리가 벗어내야만 하는’ 무의식적인 담론에 주목해보자.

하여 나는 <공주와 개구리>라는 디즈니사의 텍스트를 선정하였다. 해당 텍스트는 본 레포트의 작의를 위한 사례로 적절하다. 디즈니사에서 내놓은 공주시리즈 중 9번째에 속하는 <공주와 개구리>는 처음으로 ‘흑인 공주’가 등장하였다. 디즈니의 공식 첫째공주 ‘백설공주’를 시작으로 신데렐라, 오로라(잠자는 숲 속의 공주), 에리얼(인어공주), 벨(미녀와 야수)까지 디즈니의 공주시리즈에는 지금껏 백인 공주만 출연해왔다. 디즈니는 6번째 공주시리즈에서 아랍공주 ‘자스민’을 만들면서 다양한 피부색과 문화를 가진 공주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그 이후로 인디언공주 ‘포카혼타스’, 중국 공주 ‘뮬란’이 나란히 나오게 된다. 하지만 앞선 인물들은 실제 인물을 본 땄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9번째 공주가 바로 디즈니사의 의미 있는 시도일 수 있었던, 아프리카 공주 ‘티아나’이다.

하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디즈니사의 노력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 리포트에서는 해당 작품의 의도에 대한 내 생각을 소개하고 애니메이션 내면에 숨겨진 위험한 정치적 이념을 고발하고자한다.



1. 자연스럽게 녹아든 제국주의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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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사는 흑인공주를 앞세워 오래 전부터 디즈니에게 꽂히는 인종차별 논점을 없애려하였지만 아쉽게도, 영화 도입부부터 백인이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해당 장면은 극의 시작에 자신의 친구와 함께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를 듣는 장면인데, 백인친구 샬롯과 대비되는 티아나의 의상과 자세를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티아나의 엄마는 샬롯의 집에서 일하는 설정이다. 자연스럽게 흑인은 백인의 밑에, 즉 열등한 위치에 있음을 전하고 있다. 본래 태어날 때부터 공주였던 앞선 인물들과는 달리 티아나는 계급이 낮고 평범하지만 후천적으로 공주의 위치가 된 것으로 설정되고 있다.
오른쪽 장면을 보자. 백인인 샬롯과 샬롯의 아버지와 티아나의 어머니가 차지하는 화면 속 비중이 어떠한가? 풍채와 크기의 차이가 여실하게 드러난다. ‘샬롯의 방’이라는 배경의 색과 샬롯의 옷 색, 샬롯의 아버지의 옷 색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데 티아나의 어머니는 유독 도드라진다. 어우러질 수 없음이, 유색인종에 대한 거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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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나와 사랑하는 상대인 ‘왕자’역시 백인이 아니다. 그에게 주어진 남미 유색인종의 설정이 나는 무척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지금껏 공주들과 사랑했던 왕자는 모두 백인이었는데 왜 티아나의 왕자는 유색인종인가? 누군가는 발끈한 나의 주장에 ‘좋은 왕자는 백인왕자인가?’ 라며 나의 편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앞선 시리즈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둘의 설정이라는 점에서 ‘흑인은 절대 백인과 어울릴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백인의 시선에서는 유색인종과의 사랑을 허락하지 못하는 것이다.
 
백인과 ‘다른 인종’이라는 이유로 그려진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2. 인종주의가 낳은 평등하지 않은 인물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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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인 <개구리 왕자>가 바탕으로 깔려있는 해당 텍스트에서 사람이 ‘개구리’가 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 된다. 디즈니에서는 이를 아주 교묘하게 이용하였다. 흑인공주 티아나는 ‘공주’, 아니 ‘사람’일 때보다 ‘개구리’로서 극에서 더 많이 나온다. 유색인종인 왕자도 마찬가지다. 왕자와 티아나는 사람이 아니라 개구리로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오는데, 나는 이것이 외적으로는 동화의 특성을 잘 살린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그 이면에는 유색인종에 대한 비하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인종차별을 타파해야하는 디즈니에게 있어, 유색인종 등장을 위해 동화<개구리 왕자>는 안성맞춤인 작품이었을 것이다.

또한 극중에서 직접적으로 많은 고난과 수모를 겪는데, 이 역시 이례적이다. 수동적인 태도로 왕자를 기다리던 지난 공주들과는 달리 티아나는 역동적인 인물이다. 혹자는 이것이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태도의 공주가 탄생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에 관련된 건 다음 문단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개구리라는 설정, 고생의 연속, 디즈니사는 해당 원작을 백인 주인공으로 재구성하려 했을까?

    

3. 페미니스트를 부정하는 플롯,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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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문단에서 이야기했듯이 티아나는 다른 공주들에 비해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인다. 강한 어조나 대사 속에서 드러나는 신념들도 그러하지만 대표적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다는 자신만의 확고한 꿈이 있는 것이 그렇다. 때문에 극의 도입부부터 꿈에 관한 티아나의 소망과 레스토랑 자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부자인 백인친구 샬롯에게 도움을 받는 모습, 계약 실패 후 절망하는 모습까지 하고자하는 것이 분명한 커리어우먼 여성상이 드러난다. 하지만 극은 한번 더 꼬아서, ‘역설적으로’ 페미니즘을 희롱하고 있다. 해당 텍스트는 여성주의를 내세우고 신여성을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티아나의 레스토랑 운영을 이루게 하는 것은 개구리(왕자)와의 키스다. 남성의 도움이 있어야만 여성은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고군분투했던 티아나의 행동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최종적으로 개구리와의 키스가 티아나의 꿈을 이루게 만든 것이다. 절대 키스를 하지 않으려는 티아나에게 개구리는, “나와 키스하면 레스토랑 운영을 하게해줄게.”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농락적인 대사란 말인가? 여성의 성적인 휘둘림이 당연시되는 모습들을 귀여운 그림과 캐릭터들로 아무런 저항 없이 관객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해당 애니메이션을 보는 어린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를 수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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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뛰어난 작품인 듯 보였던 애니메이션에는 불편한 진실이 많이 숨겨져 있다. 개구리가 된 왕자가 다시 사람이 되기 위한 ‘해결책’이 백인인종 샬롯과 키스를 해야 한다는 점은 극의 후반부까지 보는 이들을 괴롭게 만든다. 모든 일들의 해결책은 백인에게 있다? 마지막까지 괘씸했던 장면과 플롯이다.
애니메이션의 마지막에는 개구리의 모습을 한 티아나와 왕자, 그리고 사람으로 돌아온 티아나와 왕자. 이 두 장면을 꽤 오랜 시간동안 나란히 놓고 보여준다. 이 역시 둘을 극적으로 동일화하려는 숨은 속셈이다.
 
그저 단순하고 유쾌하게만 보였던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에는 이렇게 많은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주의하고 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정치적 이념들은 근본적으로 제국주의를 묘사하고, 여성주의를 비판하고, 인종주의를 극대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이것이 동심 속에서 자아를 찾기 시작하는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지는 대중미디어라는 점이 더 끔찍하다. 바르게 잡지 않으면 나의 세대가 그러했듯, 다음 세대들도 자연스럽게 이 평등하지 않은 생각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순수한 영역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 이 지독한 생각들이 바로잡혔으면 좋겠다. 교묘해서 놀라웠고, 의미가 내포된 장면이 많아서 경악했다.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김지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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