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리뷰 - 어느 여름날/욘 포세 [공연예술]

극단 중앙연극 제 7회 정기연주회/ 중앙대학교 공연예술원 Space 1959
글 입력 2016.06.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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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2일 목요일부터 6월 5일 일요일까지 나흘간, 대학로에 있는 중앙대학교 공연예술원에서 연극대학원 학생들이 제작한 연극 '어느 여름날'이 무대에 올랐다. 기획부터 연출, 각색, 무대제작, 소품, 의상까지 모두 학생들의 손을 거친 소중한 작품이었다. 나는 4일 토요일 저녁에, 소품 제작을 맡은 언니의 초대로 함께 알고 지내는 동생들과 오빠와 함께 공연을 보고 왔다.

   원작자인 욘 포세는 노르웨이 사람으로, '어느 여름날'의 배경 또한 노르웨이의 피오르 해안가이다. 공연장 로비에서는 포스터 사진과 함께 피오르 해안을 담은 사진과 그림들이 빔프로젝터를 통해 벽에 비추어지고 있었다. 이 사진들은 잔잔하게 흐르는 배경음악에 더해, 노르웨이로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작품을 보고 나왔을 때는 그런 느낌이 더 강렬해졌다. 내용은 즐거운 여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왠지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어슬레처럼, 바다 한가운데에서 유유자적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다.

  욘 포세는 21세기의 베케트라고 불린다. 다음은 작가 욘 포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욘 포세는 1959년 노르웨이의 해안 도시 헤우게순(Haugesund)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1975년 베르겐(Bergen)으로 가 그곳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으며 호르달란(Hordaland) 문예 창작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1990년대 초부터 전어 작가로 자유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21세기의 베케트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포세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이며 그의 희곡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자주 공연되고 있다. (중략)

   포세 희곡의 가장 큰 특징은 생략, 침묵, 반복의 언어 구사와 가족, 연인, 친구, 이웃들로 이루어진 등장인물의 구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략) 포세의 작품은 독백이라는 형식을 통해 텍스트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단절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인물들은 이를 통해 고통과 불안이라는 요소를 직접적으로 느끼며 그것이 그들의 주된 정서이다. 이는 포세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포세의 희곡인 일견 일상의 회화체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실은 다양한 독백의 변형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어느 여름날' 극단 중앙연극 제7회 정기공연 학술 : 김진원, 박지혜, 김한솔



   프로그램북은 그 안에 설명된 포세의 희곡처럼 간결하다. 하지만 그 안에 이번 연극에 대한 설명이 전부 들어있다. 설명에서 읽어지는 분위기가 무대 위에 그대로 그려진다고 보면 된다. 명랑하거나 대단히 감동적이거나 슬프거나 하는 등의 감정이 풍부한 연극은 아니다. 그래서 배우들은 절절하게 감정을 이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에 이입하고 캐릭터를 표현하기가 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결한 대사와 담담한 태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면서 극을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가족, 연인, 친구, 이웃들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정말 문장 그대로의 뜻이다. '어느 여름날'의 등장인물은 중년 여자, 중년 여자의 친구, 그리고 젊은 여자(젊은시절), 젊은 여자의 친구, 남자(친구의 남편), 그리고 '어슬레-Asle', 총 여섯 명이다. 어슬레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름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 캐릭터들에게는 이름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젊은 여자가 있다. 남편과 함께 시골로 내려와 살고 있다. 남편은 매일같이 작은 나룻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여자는 이해할 수 없지만 말리지도 않는다. 젊은 여자의 친구가 방문했다. 남자는 또다시 바다로 나갔다. 여자는 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지고 비가 쏟아진다. 친구의 남편이 친구를 데리러 왔다. 여자의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은 슬슬 걱정한다. 실종 신고를 한다. 잠시후 사람들이 온다. 불을 켜고 사방을 찾는다. 아무도 없다. 둑을 따라 올라가본다. 사람은 없다. 나룻배 한척만이 물가에 떠밀려 와있다. 사람은 없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 젊은 여자는 중년 여자가 되었다. 남편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죽었는지, 아니면 떠난 건지 모른다.

   왜 어슬레에게만 이름이 있는지 궁금했다. 공연이 끝나고 소품을 담당했던 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제작팀도 처음 연극에 착수하면서 '어슬레'라는 이름에 특정한 의미가 있는지 여기저기 찾아보고 검색했다고 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구글에 노르웨이 이름 어슬레를 검색해봐도, 노르만계통 언어에서 쓰는 이름이라는 설명과, 남녀 모두 사용하던 이름이라는 것, 그리고 연관된 이름 몇 가지만 나올 뿐이다. 그냥 말그대로 일상적인 이름이다. 그렇다면 왜 어슬레에게만 이름을 주었을까? 이름은 정체성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평범한 이름을 주었다면, 그 인물의 정체성이 '평범함'이라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면,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은 정체성이 없는 인물들인 걸까? 아직은 답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한 번 보고 재미있었다며 웃어 넘길 만한 흥미위주의 연극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이해하겠다고 몇 번씩 파고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답은 각자가 다르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내 나름대로 정리해볼 수 있게 한 번쯤 더 보고 싶다.

   그리고 결국 어슬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한 결말도 나오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중년 여자에게 "오랜만이야"하며 돌아오는 설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체가 발견되거나 죽음이 확정되는 결말도 아니다. 이 역시 각자에게 답이 있다고 한다. 제작팀도 첫 대본 리딩 이후에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슬레는 죽었을까?"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저마다의 결말을 가져갈 수 있도록 그 부분은 열어두자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살아있을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거센 비바람과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면 배가 파손되거나 뒤집어졌을텐데, 멀쩡하게 물가에 대어져 있었다는 게 수상해! 같은 논리적인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그냥 기분상 그렇다. 매일같이 바다에 나가지만, 아내는 소박한 취미에 함께해주지 않는다. 같이 있지만 혼자다. 단조롭고 잔잔한 날들 속에서 유일한 낙은 바다에 나가 파도를 지켜보거나,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거나, 피오르의 짙푸른 물이 얼마나 깊을까 생각해보는 게 전부였던 일상. 왠지 탈출하고 싶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한 번쯤 그곳에 쉬러 가고 싶지만, 그건 말 그대로 '쉬러' 가는 것이지 '살러' 가는 게 아니다. 피오르 해안은 잔잔하고 예쁘지만, 활기와 역동적인 감정변화가 없는 삶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는 '삶'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간결함을 추구하는 포세의 희곡은 대사도 짤막하고 간결하다. -그래. 나는 늘 여기에 있었어. 넌 그랬지. 나도 알아. 그럴 거야. 예시를 들기가 애매하지만 항상 그렇게 간결하다. 처음에는 너무 번역투로 하는 것 같다고, 짧고 어색해서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찬찬히 대본을 읽어보니 그런 느낌-번역투의 문제-은 아니었다. 제대로 대본도 읽고 프로그램북도 읽고 공연을 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대본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제대로 읽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된다. 번역투라서 짧은 게 아니라 작가의 의도였던 것 같다. 차분하게 끊어져 있는 대본을 보니 그런 느낌이 든다. 감정이 절제된 느낌. 피오르 해안에 새로운 집을 얻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기쁨이 절제되어 있고, 남편이 실종된 날을 기억할 때에도 슬픔이 절제되어 있다. 유일하게 감정이 클라이막스로 올라가는 부분도 사건에 대한 슬픔이라거나 원망이라거나 하는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라, 상황이 클라이막스로 치달음에 대해 표현이 격해진 것뿐이었다. 그런 대사들을 그렇게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전문 배우가 아닌 사람도 있고, 연기전공이 아닌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다들 연기를 굉장히 잘한 것 같다.





   연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현재의 중년 여자와 과거 회상의 젊은 여자가 무대 위에 공존하는 것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고 말을 한다. 중년 여자는 과거의 그 날을 독백으로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젊은 여자는 독백을 하기도 하고, 주로 친구나 남자와 대화를 한다. 창문의 양쪽에 나란히 선채 관객들을 등지고 창밖을 내다보는 그 순간, 중년 여자는 현재에 존재하고 젊은 여자는 과거에 존재한다. 그 장면이 뇌리에 선명하도록 인상깊었다. 이 연출이 더더욱 특별한 점은, 서로 다른 시간에 살고 있지만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여자는 현재를 보고 있고, 중년 여자는 과거를 보고 있다. 그리고 무대를 가로지르는 조명과 중년 여자와 젊은 여자가 조명의 빛줄기를 따라 나란히 섰을 때, 관객의 시선(정면에 앉은 관객)에서는 두 사람이 마주보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이 장면에서 잠깐 시간이 멈추는데, 배경음악까지 어우러져 정말 쿵 하는 느낌을 준다.


(창가에 나란히 선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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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마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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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그림 : 류소현 기자)


   이 장면!! 정말 인상적이었다. 연출의 힘!





   무대는 전체적으로 예뻤다. 초반부의 대사에서 무대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전형적인 북유럽풍의 깔끔하고 하얀 집"이 바로 그것이다. 무대는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정말 묘사된 그대로다. 깔끔하고 단정하고 예쁜 느낌. 무작정 희기만 한 색이 아니라, 뽀얀 나뭇결이 살아있는 빈티지한 하얀색. 가기에 베이지색이나 갈색 가구를 배치해서 색이 전체적으로 조화롭다. 또한 작품의 분위기처럼 조금 덜 따뜻하고 언뜻보면 삭막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피오르 해안처럼 잔잔하게 예쁜 느낌도 난다. 무대에서는 피오르 해안을 떠올릴 요소가 없는 것 같은데도 극을 보는 내내 피오르 해안의 나무집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말 저 창문 밖으로 나가보면 자갈과 들풀이 어우러진 낮은 언덕 아래로 진한 색의 바다와, 나무로 된 선착장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 해변의 이미지가 머리속에 절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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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와 팀원분들의 정성이 돋보이는 무대 세팅이다. 간결! 예쁨! 저 소파의 시트도 한땀한땀 바느질해서 새로 갈았다고 한다. 노고에 박수를(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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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오르 해안 절벽 사진 앞에서 나도 한 번 사진을 찍어 봤다. 북유럽 여행이 가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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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짠! 이것은 극중 '남자(젊은 여자 친구의 남편)'로 열연해주신 성우 엄상현 님의 사인이다! 이날 3시 공연에는 엄상현 성우님의 팬카페 회원들이 단체로 관람하고 로비에서 팬사인회가 열렸었다고 한다. 나는 7시 공연에서 비교적 여유롭게 엄상현 성우님의 사인을 독차지하는 영광을 얻었다. 확실히 다른 분들도 연기를 잘하셨지만, 오랜 경력의 성우님만큼은 아니었다. '남자'가 무대에 올라오면 잔잔하던 분위기도 활기를 띤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잘 해주셔서 공연보는 내내 재미있었다.

   좋은 공연도 보고, 사인도 받고, 공연 후에 다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하루였다.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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