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 아가씨 > 관람 후기: 히데코와 숙희의 만남, 사랑, 해방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6.1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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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The Handmaiden, 2016


개요/ 스릴러, 드라마
러닝타임/ 144분
감독/ 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나의 숙희"


  며칠 전 화제작인 아가씨를 보고 왔다. 최고 수준의 노출이 있다는 점과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감독이 박찬욱이라 더 큰 주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다운 미쟝센으로 가득했다. 음울하지만 감각적인 색채와 아름다운 구도, 주 배경이 되는 건물의 독특한 양식이나 가구들, 시선을 사로잡는 고풍스러운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 카메라가 담아내는 그 어떤 것도 평범하게 두지 않겠다는 듯 세심하게 감독하고 주의를 기울인 흔적들이 보였다. 간략하게 영화 <아가씨>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영화 줄거리>

  부모를 잃고, 후견인인 이모부(조진웅)의 아래서 살아가는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거대한 대저택에서 이모부의 엄격한 교육과 감시 아래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던 중, 백작(하정우)이 추천한 새로운 하녀가 찾아오게 되는데, 사실 하녀는 유명한 도둑의 딸로, 장물아비의 손에서 자란 소매치기, 숙희(김태리)라는 소녀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히데코를 노리는 사기꾼 백작과 한편이 되어 아가씨가 백작을 사랑하도록 꾀어내는 하녀로 가장한 것. 매일 이모부의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책을 낭독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히테코는 어딘가 모르게 영악하면서도 순박하고 솔직한 하녀에게 조금씩 마음이 끌린다. 역시 점점 아가씨에게 연민과 애틋함을 느끼게 되는 하녀 숙희.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를 속고 속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의 구성은 3부작 내러티브 구조로 되어 있다. 1장은 이야기의 시작과 숙희의 관점, 2장은 히데코의 관점, 3장은 해석과 결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일련의 형식도 흥미롭지만 사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영화 속 인물들이다. 4명의 인물 모두 욕망과 결핍으로 점철된 이들이다. 이모부 코우즈키는 온전한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하는 조선인, 무당 자식 출신 사기꾼 백작은 식당에서 가격을 묻지 않고 주문을 해도 어색하지 않는, 품위와 여유를 갖춘 귀족이 되고 싶어 한다. 남성 캐릭터 모두 자신의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를 안고 있으며 그들은 그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여성 캐릭터들을 이용했다. 코우즈키는 어린 히데코에게 꾸준히 성적 학대를 하며 자신의 말이면 무조건 순종하도록 길러내었고 많은 일본 신사들 앞에서 매번 변태적인 낭독회를 갖도록 억압한다. 백작도 마찬가지. 자신의 야망을 위해 히데코의 지위를 이용하고 숙희를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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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히데코와 숙희의 욕망은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자유와 해방’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 처음에는 서로를 속이고 이용하는 관계였지만 그들을 끝내 서로를 알아보고 이끌린다. 철저히 남성화된 곳에서, 내쳐진 존재로, 소외된 존재로, 핍박 받는 존재로, 도구적인 존재로 살아왔던 이들이었기에 서로가 서로를 버릴 수 없던 것이다. 결국 진심으로 대하는 관계는 그녀 둘 뿐이었다. 때문에 논란이 되었던 다소 격정적인 베드신은 매우 필요한 신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여자의 행위는 후반부에 백작이 아가씨를 강간하듯 몰아붙이며 억압하는 것과 달리 굉장히 순수하고 자유로웠다. 다양하고 파격적인 체위가 이어진 것도 그들의 정사가 어떠한 남성적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즐겁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의 몸에 경탄하며 몸을 유희하지만 상대의 몸이나 마음을 속박하고 소유하려 들지 않았다. 


  방울신도 마찬가지였다. 과했지 않나, 하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장면이었다. ‘방울’은 히데코의 어린 시절, 이모부로부터 재갈이 물리고 손등을 맞을 때 사용된 물건이다. 그러나 그 억압에서 벗어나서 상하이로 건너가 해방을 맞이한 그녀들이 보낸 첫날 밤, 남녀관계처럼 위아래가 정해지지 않고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여성들만의 놀이에 그 ‘방울’이 사용된다. 이 얼마나 통쾌한 반항이고, 얼마나 눈물겹게 얻은 자유인가. 이 외에도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정말 많았다. 욕조신, 첩첩산중처럼 닫혀 있던 문들이 열리고 담을 넘고 별이 빛나는 초원으로 달리던 신, 문을 사이에 두고 벌이던 격렬한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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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대해 감독이 여성이 아니고, 동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남성적인 성적 판타지의 한계가 드러난다는 비판도 있지만 난 그 말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비판 자체에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한 철저한 배격과 타자화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의 감정과 사랑은 이성애자와 다른가? 여성의 감수성과 성적 판타지는 남성과 달리 반드시 ‘여성적’이고 색달라야하는가? 관람자가 동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에 두 여자의 감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닌 것처럼, 더 조심스럽게 ‘사랑’과 ‘성애’, ‘자유’에 관한 관념에 접근하게 되는 것처럼, 감독도 작품 속 두 여자를 다루는 데에 있어 마찬가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내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감독의 그 지나친 조심스러움과 과한 애정이었다. 영화가 내내 너무 친절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나치게 설명적이라 영화의 메시지가 다소 흐려지고 힘 빠지게 느껴진다. 진행이 루즈해져 지루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유머코드도 그랬다.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신경 쓴 결과로 보이지만 유머가 다소 억지스럽고 작위적으로 다가오는 게 많았다. 이미 설정 자체가 온갖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하고 우스꽝스러운데 속내를 다 드러내 보여주는 식의 농담이나 유머는 오히려 진부하고 질척거려 보인다. (특히 하정우의 마지막 대사.) 


  하정우의 역할도 조금 아쉬웠다. 그가 그 캐릭터를 소화하지 못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기꾼 백작 역할에 더 잘 어울리는 다른 배우가 있을 것 같다. 마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배우보다 오히려 창백하고 선이 덜 굵은 중성적인 마스크의 남성이 그 역할을 했을 때, 보다 신선하고 자극적인 느낌을 전달하지 않을까. 여성 캐릭터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시종일관 남성 권위적인,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졌기 때문에 사기꾼 백작이라도 외형적으로는 중성적이고 부드러운 남성으로 묘사하여 그 내면의 이중성과 폭력성, 잔인성을 부각시킨다면 훨씬 입체적인 캐릭터로 다가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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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영화’가 될 정도로 감탄하며 보진 않았지만 충분히 좋은 영화였다. 베드신의 경우엔, 외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일지라도 내겐 의도 있는 연출들로 보여 괜찮았다. 동성애라는 코드가 취향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에겐 힘든 영화일 수 있겠으나, 동성 간의 사랑이라는 의미를 넘어, 불에 덴 듯한 열정적인 사랑에 빨려들며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고 새롭게 거듭나려는 인간의 이야기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하고 힘들지 않게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영화 < 아가씨 >는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을 아름답고 감각적으로 그리며 남성들의 세계 속에서 억압된 여성의 해방과 자아 발견의 과정을 담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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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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