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캐롤 그리고 아가씨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6.0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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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연달아 세편의 퀴어 영화를 봤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 편의 레즈비언 로맨스를 다루는 영화를 봤다. 퀴어 영화가 하나의 장르가 되면서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는 퀴어 영화라는, 소수자의 이야기라는 사회적인 가치로 인해 작품성이 부족한 영화를 관대하게 인정해주는 시선, 또 하나는 로맨스 영화일 뿐인 퀴어 영화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기대하고 그 메시지 전달의 부재에 대해 비판하는 시선이다. 유난히 퀴어 영화에 대해서만 관대하거나 혹은 반대로 유난히 까다롭거나, 그 두 가지 각기 다른 편견이 담긴 시선을 최대한 배제하고 세 영화의 '영화로서의' 매력을 최대한 파헤쳐 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순위를 매기는 것은 불필요할 정도로 각자 다른 나름의 매력이 있는 영화였다. 아우르는 공통점이 있다면 세 편 모두 '아름다운 영화'였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블루.jpg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무려 3시간의 긴 러닝 타임에 비해 기승전결이 매우 간단하다. 두 사람이 만나고, 사랑에 빠졌다가, 사랑을 하고, 사랑이 식고, 헤어지고, 각자의 길을 간다. 아델의 시선에서 그려진 영화는 평범하면서도 강렬한 첫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적나라하고 파격적인, 그리고 매우 매우 긴 정사 장면에도 불구하고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름답고, 꼭 필요한 장면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 관객들의 평이 갈린다.) 대사 하나 없는 이 장면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두 배우의 열연이 반짝인다. 두 번째로 영화의 색감이 좋았다. 제목처럼 영화에는 집요할 정도로 파란색이 많이 등장한다. 아델이 처음 만났을 때 새파랗던 엠마는 점점 노란색으로 붉은색으로 물들어가지만, 아델은 여전히 파랗기만 하다. 그래도 마지막에 붉은 매니큐어를 발톱에 칠하고 전시회에서 나오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관객은 모두 첫사랑의 아픔과 이후의 내디뎠던 새로운 발걸음을 추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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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의 경우 블루보다 훨씬 세련되고 정제된 느낌의 사랑이다. 영화는 케이트 블란쳇의 마지막 눈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하다. 나머지 영화와의 구분되는 점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해서 동성애를 둘러싼 법적인 문제들이 등장한다는 것이 있다. 세 영화 중 가장 세련된 영상미와 배우들의 연기가 있지만 동시에 내용적으로 가장 심심한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를 본다면 서툴지만 확신에 찬 눈빛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테레즈와, 그녀를 바라보는 캐롤의 불꽃 같은 눈빛을 보며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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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화제작인 아가씨다. 아가씨는 간단히 말하자면 남성들의 성욕의 철저한 대상으로 살아가던 아가씨가 하녀로 들어온 숙희와 사랑에 빠져 자신들의 사랑과 욕망을 쫓아 달아나는 스토리다. 이 영화를 레즈비언 로맨스라는 장르의 틀 안에 가두어서 보려는 시선은 자연스럽게 블루나 캐롤과 이 영화를 비교하며 남성적이고 변태적인 성적 판타지의 한계가 드러난다고 비판하였다. 특히 마지막 방울씬을 꼭 넣었어야 하는 비판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에서 영화가 마무리되는 깔끔한 통쾌함을 느꼈다. 마지막 장면은 자신들만의 판타지에 갇혀 아가씨를 소비하던 변태적인 이들을 향해 던지는 통쾌한 비웃음 같았기 때문이다. 아픔을 가슴 속에 묻어두지 않고, 적나라하게 다 꺼내고 하나하나 지우고, 비틀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영화가 노출의 장면들로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실제로 여배우들이 수위 높은 노출을 감행하는 것 자체에 대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메시지의 측면에서 아가씨는 성욕으로 가득 찬 남성을 향한 조소와 여성의 해방과 전복을 표현하는데 충분히 유쾌하고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 퀴어 영화를 취향이라고 말해도 되는 지 모르겠다. 취향이라는 판단 자체에 구분과 분류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근에 본 세 편의 퀴어 영화가 모두 가슴아팠지만 아름다웠다는 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평범하지 않은 사랑이 더 아름답기 때문일까. 이러한 생각이 굳어지면 끊임없는 타자화가 일어날 것 같다. 우선은 우연의 일치인 것으로 생각해 두어야 겠다.






[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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