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덜 희망적이라서 더욱 희망적이었던 연극, 레알 솔루트

글 입력 2016.06.0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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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2병'이라는 신조어가 생긴걸 아시나요? 만사에 허세가 가득해졌던 중2병과 달리, 취업걱정에 만사에 자신이 없어지는 병이라고 합니다. 사회 현상에 '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단어가 생겨날 만큼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이 겪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바로 제 주변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꼭 끝은 '우리 좋은 얘기 하자.' 라는 말로 끝을 맺게 되는데요. 즉, 저희에게 '미래'의 이야기란 결코 '좋은 얘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금수저'가 아닌 많은 청년들에게 '미래'는 그렇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좋을 수 없는 얘기. 현대사회에서 청년들이 그리는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레알 솔루트를 보면서 두 가지 모순되는 것을 동시에 바랐던 것 같습니다. 이 암울한 현실에서, 현실에선 이룰 수 없는 이상적인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욕망과, 말도 안 되는 이상적인 이야기로 우리를 속이기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욕망.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욕망을 가진 채로 저는 <레알 솔루트>를 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두 욕망의 중간지점에 있었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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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솔루트는 '힘없는' 세 청춘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4명이나 키우고 있어, 분유 값을 대기 위해서만 하루에 8시간을 일해야 하는 세신사 달구, 엄청난 거대자본의 표상인 ‘주류 대형 창고’ 때문에 차압 딱지가 붙은 ‘주류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형석, 어플 개발을 위해서 사채까지 끌어 썼지만 어플이 망해버린 민준. 
 
이 셋은 수식만 들어도 정말이지 힘이 없습니다. 아니, 힘이 없는 것을 넘어서 답이 없습니다. 오늘은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이들. 달구는 아이를 하나 더 낳기 싫다고 절규하지만, 실제로는 더 낳지 않더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아이들이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 달구의 벌이로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 쉽지 않습니다. 전 재산이 차압딱지가 붙은 주류백화점이며, 3천만원의 빛이 있는 형석도 마찬가지이며 사채 때문에 콩팥이 떼일 위기에 놓여있는 민준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레알 솔루트>는 이 ‘답 없는’ 청춘들이 벌이는 ‘답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답 없는’ 이야기를 통해서 연극은 관객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데요. 일단 각 캐릭터의 캐릭터성입니다.
 
‘자분주의’를 큰 가치로 여기지 않지만 성실하게 일을 하는 달구, ‘자본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거대자본에 의해서 그것마저 저지당하는 형석, 달구의 아내가 준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자본주의’를 그렇게나 복창하면서도 적장 생산적인 일은 하고 있지 않은 민준. 이 세 캐릭터들이 뜻하는 바는 미묘합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중요시 하지 않는 인물인 달구가, 이 셋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일을 하는 등 착취를 당할지라도 ‘노동’을 하고있습니다. 반대로 가장 자본주의를 복창하는 민준은 아무런 일도 하고있지 않습니다. 비록 ‘자본’이 없어서 어플을 더 이상 광고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손 놓고 있는 것 말고 다른 방법 또한 있을 텐데 말이죠. 또한, 그 ‘자본주의’에 가장 호되게 당한 인물도 바로 민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자본주의’라고 말하며 성실한 노동을 부정하는 민준의 모습은 지금껏 우리가 ‘옳다’고 느껴왔던 가치와 전복됩니다. 그걸 보며 우리는 민준,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에 반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형석의 캐릭터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석은 민준만큼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자본주의를 따르려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따르고자하는 그의 움직임은, 아이러니하게도 ‘거대자본’에 의해서 저지됩니다. 사실 압구정에 가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형석은 ‘흙수저’로는 분류할 수 없는 위치임에도 더욱 큰 거대자본에 의해 그의 시도는 저지됩니다. 그래서 그가 하고있는 것은 단지 ‘가게에서 술을 마시는 것’ 뿐이죠.
 
기본적으로 이 셋은 ‘자본주의’에 의해서 버림받은 인물들입니다. 달구의 착취나, 민준의 자본 부족, 형석의 ‘대형주류창고’는 모두 자본주의의 의한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버림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가치 자체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 달구는 그래도 ‘가정’이 있으며 ‘일자리’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버림받았음에도 그 가치를 놓지 못하는 민준과 형석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 모습들을 통해서 관객들은 ‘자본주의’를 뛰어넘은 가치를 생각하게 되죠.
 
이들의 이러한 ‘답 없음’은, 이들이 더욱 극단적으로 답이 없는 행동을 하게끔 만듭니다. 바로 형석과 민준의 ‘레알 솔루트’라는 술을 훔치자는 말도 안 되는 모의 말입니다. 라디오를 타고 나온 한 마디로 시작 된 이 모의과정은 굉장히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저는 그 모습이 어쩐지 슬퍼졌다. 그들이 모의하고 있는 것은 ‘도덕적’으로, 혹은 ‘사회적 인식’으로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미 답이 없다면 답이 없는 그들의 인생을 더욱 시궁창으로 만들 수도 있는 모의. 하지만 그들은 모의를 할 때 별 죄책감 따위를 느끼지 않습니다. ‘죄책감’도 인간의 기본적인 요건이 충족되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에, 당장 하루하루가 답이 없는 그들은 본인들 사정에 급급해 그런 감정 따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가치에 의해 인간적인 가치가 저지 된 순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들의 모의는 달구가 가져온 술이 ‘레알 솔루트’가 아님을 알게 되며 저지됩니다. 기본적으로 ‘레알 솔루트’는 ‘맛있는’ 술입니다. 술을 마시고 나서 셋이 춤을 출 정도로 말이죠. 그 ‘맛있음’의 이유는 초반부, ‘비싸니까’로 귀결됩니다. 즉 가치가 높은 것=비싼 것입니다. 이 순간의 ‘레알 솔루트’는 천만원을 호가하는 ‘자본주의’의 표상과도 같은 술이죠. 형석과 민준이 그렇게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적 가치’의 최고봉. 하지만 그것의 실체는 달구의 아내가 담근 ‘하수오주’입니다. 민준이 ‘비싼 것’과 대비되게 가장 무시했던 ‘달구의 아내의 작품’인 것이죠. 그것도 달구가 ‘친구들이 화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져온. 이걸 알게 되는 순간, ‘맛있음’의 이유는 ‘정’이 됩니다. 가치가 높은 것= 인간적인 정이죠. 
 
 ‘레알 솔루트’가 가지고 있는 이 이중적인 의미는 세상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자본주의’일지 몰라도, ‘우정’등의 인간적인 가치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기에 ‘레알솔루트’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전복되는 순간, 형석과 민준의 전복되었던 가치 또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돈’에 미쳐있던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금 ‘우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 모습은 300만원짜리 술을 ‘우정’을 위해서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주는, 또 까는 형석과 민준의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짜냈던 ‘방문판매’에서 앞으로의 대안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민준이 그렇게도 무시했던 ‘아내 作’인 하수오주입니다. 100년산 하수오주가 매우 높은 가격을 호가한다는 것을 들은 그들의 눈은 희망으로 빛납니다. 같이 방문판매를 하자며 함께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밝게 그려집니다. 그래서 언뜻 연극은 그 세명이 인간적인 가치도, 자본주의적인 가치도 모두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이 느끼게 하죠. 하지만 라디오의 “하지만 함부로 직접 담근 하수오주를 판매할 경우에는…”이란 끝맺음은 ‘자본주의’적 가치로서는, 그들의 미래가 앞으로도 그리 밝을 수만을 없을 것을 예측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걱정되지만은 않습니다. 만약 또다시 망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자본주의적 가치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결말이, 정말 ‘레알 솔루트’ 다워 참 좋았습니다. 앞서 제가 레알 솔루트의 결말이 제 충돌하는 욕망의 중간지점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레알 솔루트의 결말은 이상과 현실 그 어느 중간에 있습니다. 희망적이고, 이상적으로 비춰지지만 결코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미래. 이러한 결말은 현실의 청년들에게 ‘허구’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이상’에 의한 박탈감을 주지도, 그렇다고 현실은 어차피 암울하다며 절망을 주지도 않습니다. 단지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실제 ‘현실’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줄 뿐입니다. 우리의 현실도 이들처럼 마냥 밝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절망적이지만도 않습니다. 어찌되었던 희극적이었던 저들처럼 우리도 ‘자본주의’가 아니더라도, ‘금수저’가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연극 <레알 솔루트>가 남긴 희망은 연극 상의 멸치 똥만큼 적습니다. 아무리 쓰지 않다고 하더라도 멸치 똥이 멸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면 그 멸치는 맛이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레알 솔루트>의 희망도 적기에 오히려 더 달았습니다. 

세상은 존나 커! 우린 그냥 존만이들! 
세상은 존나 커! 우린 그냥 존만이들!
세상이 존나 커도 우리 셋은 안 밟혀!
우리 셋이 뭉치면 웃을 수가 있으니까!
하하! 호호! 히히! 예!

웃을 수 있기에, 밟히지 않는 저를 포함한 우리 청년들이, 이 존나 큰 세상에서 부디 밟히지 않을 수 있게 웃을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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