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또 오해영' 속 찌질함과 쪽팔림의 판타지 [문화전반]

글 입력 2016.06.0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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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해영' 속 찌질함과 쪽팔림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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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 같은 이름 그러나 너무나도 다른 둘. 두 명의 오해영은 전혀 다른 서로의 삶을 살아왔다. 똑똑한 머리에 시선을 한 몸에 끄는 외모까지 완벽한 일명 ‘이쁜 오해영(전혜빈)’과 그냥 그저 그런 무색 무취의 대명사와 같은 또 다른 오해영(서현진). 이렇게나 다른 두 사람인데 이름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끝없는 비교 속 너무도 상이한 학창시절을 보낸다. 시간이 흐르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낸 해영(서현진)이었으나 그녀에게 여전히 시련은 존재했다. 결혼식 전 날 신랑이 되어야할 남자친구 ‘한태진’이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 “네가 밥먹는게 꼴보기 싫어졌어.” 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런 상황을 마주한 해영이 했던 말은 오직 하나뿐. “결혼은 내가 깬 걸로 해줘.” 라는 비참한 한 마디였다. 직장에선 상사에게 이리 까여 저리 까여 만신창이인데다가 집에서는 결혼을 깬 무개념 딸로 낙인찍혀 쫓겨나는 신세까지 그녀의 인생은 너무도 시련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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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오해영의 속을 누가 알아주리. 그저 할 수 있는 건 당당한 현대 여성 코스프레뿐. 그 코스프레의 끝은 언제나 술로 만신창이가 되어 뻗어버리는 오해영 자신이다. 왜 하필 내가 결혼식 전 날에 차여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여자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자책과 무력감과 함께 말이다. 그러던 그녀에게 나타난 남자 박도경.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사람이기에 씩씩하고 당당한 현대여성 코스프레를 집어 던지고 처음으로 박도경이라는 타인에게 자신의 비참함을 토로한다. 도저히 통제가 안되는 눈물 콧물은 덤으로 선사했다. 별 일 아니라고 하는 쓰잘데기 없는 위로보다 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냐는 그의 태도.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왜인지 모를 안도감과 위로를 얻으며 해영은 매일 술로 지새우던 날을 청산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직장상사로 등장한 ‘이쁜 오해영’과 자신을 비참하게 차버린 전 남자친구 ‘한태진’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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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네가 말을 안하는데 내가 대체 어떻게 알아.” 드라마에서 뻔히 볼 법한 대사다. 내가 상대에게 말하지 않아도 남몰래 알아주길 바라는 심정.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하나하나 다 알 수 있겠는가. 당연히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사실 당연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사정은 존재한다. 개개인에게 존재하는 개인의 사정들, 그 남자의 사정 그리고 그 여자의 사정 등 무수한 사정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업이 망해 구속이 되어 감옥에 들어가는 상황을 보이고 싶지 않아 상처 주는 말을 하며 결혼을 깨버리는 극 중 한태진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측은지심이라도 좋다며 불쌍해서라도 자신이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 오해영(전혜빈)이 과연 그가 동정으로 나와 결혼하는 것인가라는 비참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해 결국 결혼식 당일 남자의 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사정이 존재한다.


 여기엔 그 누구의 잘못과 실수도 없다. 다만 어떻게 대처하고 헤쳐나가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뿐이다. 두 명의 오해영과 박도경과 한태진 이 네 주인공들의 사정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누구도 무작정 미워할 수 없게끔 만드는 측은함과 그럴 수 있지 라는 일종의 정당함과 이해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 사정을 말하지 않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마음을 움츠린 채 가진 차에 짙은 썬팅을 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차 안쪽에선 모든 것이 이해되나 차 문만 나서도 당장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검게 선팅된 창문만 보일 뿐. 아무 것도 설명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다. 한태진이 끝까지 보여주지 않으려 했던 자신의 비참한 모습으로 인해 망가질 자존심과 진실 대신 모진 말을 들은 채 결혼식 전날 버려진 신부가 되어버린 오해영의 모습 중 전자를 선택한 사정도 오해영에겐 전혀 설명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비록 나중에 그것이 밝혀졌더라도 선팅지가 낡아 그 안이 흐릿하게 보일 뿐 결코 그 차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쪽팔림의 판타지

별일 아니란 말보다 괜찮을 거라는 말보다
나랑 똑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백 배 천 배 위로가 된다.

한 대 맞고 잠시 쓰러져 있었던 것뿐.
생각해보면 '다 줄거야'하고
원없이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재고 마음 졸이고 
나만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 걱정하고.
이젠 그런 짓 하지 말자.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 만나면
발로 차일 때까지 사랑하자.

꺼지라는 말에 겁먹어서 
눈물 뚝뚝 흘리면서 조용히 돌아서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다신 하지 말자.
꽉 물고 두들겨 맞아도 놓지 말자.
아낌없이 다줘버리자.
인생에 한 번쯤은 
그런 사랑 해봐야되지 않겠니?

-오해영(서현진)


 사실 오해영(서현진)도 그녀만의 자신을 가두게 되게끔 만들 사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비교 당하며 무시 받고 조롱받았던 그녀의 과거와 더불어 결혼 전날 밥을 먹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졌다며 차인 비참한 상황으로 인해 지레 ‘1급수는 1급수끼리 만나기 마련이야’ 나 같은 3급수는 3급수를 만나기 마련이고 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여기서 머무르며 끝나지 않는다. ‘그래 내가 이렇게 재고 따지고 계산적인 사랑을 해왔구나. 이젠 그러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을 가진다.


 이는 물론 수많은 비참함 속 돌파구적인 생각으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 이 생각을 하게끔 한 것은 오해영(서현진)의 입장에서우연히 찾아온 박도경이라는 남자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건네 받은 위로와 공감의 힘은 그녀에게 쪽팔림이라는 궁상맞은 판타지를 선물했다. 그로 인해 더 이상 그녀는 재고 따지지 않았다. 시작은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구나’ 라는 공감과 안도감이었으나, 차츰 그에게 느껴지는 이상한 설렘의 감정에 있어 그녀는 너무도 찌질해 매일 밤 이불킥을 할 정도로 밀고 당기는 것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한다. 그를 좋아하게 된 자신의 사정을 자신의 것으로만 남기지 않는 것이다. 박도경에게 상처받고 울고 있던 상황에서도 ‘다섯 번 울리고 받을 거 세 번 울리고 받았어. 나 쉬운 여자 같아 보이지.’ 라며 솔직한 자신의 사정과 감정을 털어놓는다. ‘측은지심이라도 좋아. 그것도 감정 있다는 거니까.’ 처럼 자신을 비참하게 하는 말도 서슴치 않고 뱉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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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집에 들어가면 이불을 수백 번 걷어차고 명상할 걸 뻔히 알면서도 망설이다 결국 말하고 보는 그녀의 이러한 찌질함에 우리는 결코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버럭 화를 내다가도 보고 싶단 도경의 한 마디에 후레한 차림으로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 찌질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모습에 결국 상대로 하여금 그녀의 찌질함 뒤에 존재하는 그녀의 사정을 알아가게 하고 이해하게 만든다. 그 결과 상대도 재고 따지지 않게 만들며 자신의 사정을 내밀며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오게끔 만든다. 이것이 기묘한 찌질함과 쪽팔림의 판타지이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서 아파하지 않을 수 있으며 아쉬워서 울다 잠들지 않아도 되는 판타지. 찌질하고 눈살이 찌푸려지고 답답하더라도 그녀가 선택한 쪽팔림의 판타지는 ‘또오해영’ 이라는 드라마가 주는 연애의 관계와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나갈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의 난제 속 나름의 해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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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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