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약' 시리즈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5.30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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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 영국의 예술가. 살아있는 현대 미술의 전설이며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는 영국 현대미술의 부활을 이끈 장본인.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은 충격적인 이미지와 엽기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일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초록 창에 ‘데미안 허스트’를 검색하면 나오는 두산백과의 설명이다.
현대미술을 이끌어 가는 예술가 중 하나인 데미안 허스트에 대한 적절한 설명인 것 같다.

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아마도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일 것이다.


f0087791_5207bc1b8d633.jpg▲ Tiger shark, glass, steel and formaldehyde solution, 213 x 518 x 213 cm, 83¾ × 204 × 83¾"


그의 예술세계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바로 ‘약 시리즈’이다. 약국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약, 즉 약 상자나 알약을 이용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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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알약들에 대한 동심이라든지,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알약들의 다양한 색깔, 크기, 형태들에는 우리의 상상력과 동심을 자극하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그 작고 귀여운 형태의 알약들을 물과 함께 넘기면 우리가 갖고 있는 증상이 낫는다는 사실도 참 신기하다. 그래서 가끔 약을 먹을 때면 손바닥 위에 알약들을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보기도 한다.

데미안 허스트는 알약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인식들, 즉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알약의 색과 형태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 약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 등을 작품에 투영했다.
죽음을 주제로 다루는 그가 이 작품들에서는 죽음과 반대되는 치유, 치료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치유, 치료가 우리에게 죽지 않을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치료에 대한 우리의 희망과 믿음이 크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반증하는 것 같다.
따라서, 데미안 허스트는 현대인들의 알약에 대한 맹신과 그것의 시각적인 형태가 주는 환상 등을 표현함으로써 그 반대편에 있는 죽음과 그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첫째 작품은 <약장 Medicine Cabinets> (1988-2008) 시리즈이다. 


DHS5990_771_0.jpg▲ Boredom/Nowhere, 1995, Glass, faced particleboard, pine, ramin, plastic, aluminium and pharmaceutical packaging, Diptych, each: 1372 x 1016 x 229 mm | 54 x 40 x 9 in


데미안 허스트는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약국을 찾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처방전을 받으며 전혀 알지도 못하는 약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건 그의 어머니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약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약국, 약사, 약의 상자와 디자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으로 약을 소비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의문에서부터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을 중심으로 데미안 허스트는 1992년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약국 Pharmacy>라는 전시를 열었다.


DHS335Tate1writingre_771_0.jpg


<약장 Medicine Cabinets>시리즈들을 흰 벽면에 전시하고 전시공간을 하나의 약국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전시장 바닥에는 전기 살충기들이 설치되어 있다. 

내가 만약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가서 이 전시를 봤다면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꼈을 것 같다.
실제 약이 들어있지도 않은 약 상자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나는 그곳에서 마치 약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내 병을 고쳐주고, 나를 건강하게 해준다고 굳게 믿었던 약들은 그저 하나의 디자인된 이미지였을 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우리 병을 고쳐주는 약들과 반대로 벌레들을 죽이는 전기 살충기를 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또 한번 생각하게 되었을 것 같다.  


다음 시리즈는 <알약 캐비닛 Pill Cabinets> (1999- )이다.


hirst_pills.jpg▲ Lullaby, the Seasons Spring 2002 (Detail) | Steel, glass and pill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1.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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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이 거울로 된 캐비닛 안에 수많은 모형 알약들이 진열되어 있다.
이 작품을 가까이서 보면 여러 모형 알약들이 보이고, 멀리서 보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관객들은 알약들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상관관계를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다음 시리즈는 <스팟 페인팅 Spot Paintings> (1986-2011)이다.


DHS4505t_771_0.jpg▲ Nalorphine, 1995, Household gloss on canvas, Diameter: 1454 x 889 mm | 57.3 x 35 in | (2 inch s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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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실제로 본적이 있다. 사실 그 때는 이것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인줄만 알았지, 약에 관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색채와 형태를 다룬 실험적인 작품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회화의 제목들을 알고 보면 제약회사 카탈로그에서 따온 약 이름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관객들은 대부분 나처럼 곧바로 ‘약’을 떠올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거다. 알록달록 예쁜 색깔에 만족하거나 집에 장식하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은 우리가 알약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것 같다.
실제 약이 어떤 효능을 하며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지만 그저 보이는 형태와 색채만으로 호의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2014년에 런던의 Paul Stolper 갤러리에서 'Schizophrenogenesis'라는 전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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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 등장한 작품들은 원래보다 몇 십 배는 더 커진 알약과 약통들이다.
내가 데미안 허스트의 약 시리즈 작품들을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바로 이 전시였다.
이 전시야말로 약에 대한 우리의 호의적 감정과 환상, 맹신들을 제대로 재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손가락에 올려놓고 감상하던 그 알약들이 엄청나게 커져 마치 우리가 소인국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 작품들을 접하고 구글에서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그의 인터뷰를 받아 적어 놓았다.

“I can’t understand why most people believe in medicine and don’t believe in art, without questioning either… I went to the chemist’s and thought, ‘I wish I could make art like that.’ Then I realized I could have it as it was. (나는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심도 없이 약을 믿으면서 예술은 그렇게 믿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약국에서 ‘나도 저런 예술을 만들 수 있으면..’하고 생각했다가 나도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Pills are brilliant little form, better than any minimalist art. They’re all designed to make you buy them… They come out of flowers, plants, things from the ground. And they make you feel good, you know, to just have a pill, to feel beauty. (알약들은 어떤 미니멀리스트 아트보다도 훌륭한 작은 형체이다. 모두 당신이 그것들을 사게끔 디자인되었다. 그것들은 꽃, 식물, 땅에서 자라난 것들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당신을 기분좋게 해준다. 알약 한 알을 먹는 것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얼마 전, 데미안 허스트는 영국인 셰프 마크 힉스와 협업해 런던 뉴포트 갤러리에 '약국 Pharmacy'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인테리어는 화려한 색으로 꾸며진 약국의 모습이며,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메뉴들은 그들의 음식에 대한 열정을 반영한 전통 유러피안 음식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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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FFD3400000578-3444157-Artist_Damien_Hirst_and_and_chef_Mark_Hix_are_opening_a_pharmacy-a-1_1455542801251.jpg


그는 1998년에 '약국 Pharmacy'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던 적이 있지만 그 모습이 실제 약국과 너무나도 닮아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반발로 2003년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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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이런 행보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상반된 의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이 맹신하는 알약 같은 예술을 하고 싶다는 데미안 허스트의 바람은 잘 반영하고 있지 않나 싶다.
분명 이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일 것이고,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구매할만한 여력이 되든 안되든 그의 작품에 둘러싸여 음식을 먹으며, 적어도 그의 예술 세계를 향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약국에 가서 약사가 주는 약을, 그 패키지만 보고 맹신하여 쉽게 받아들이는 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나 또한 언젠가 런던에 간다면 꼭 이 레스토랑을 찾고 싶다. 
나는 예술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아니며, 데미안 허스트의 예술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그의 작품으로 꾸며진 레스토랑에서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고, 예술적인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다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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