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5월 18일의 상흔을 이야기하다 [문학]

글 입력 2016.05.2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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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실로 그 파급력은 대단했고, <채식주의자>가 한 매체에 따르면 1분에 9.8권꼴로 팔려나가고 있다고도 한다.  
 

layout 2016-5-25.jpg▲ -구글 이미지 발췌
 

 하지만 <채식주의자>를 읽어보지 않아서였는지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소년이 온다>가 먼저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그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4.jpg▲ -구글 이미지 발췌
 

 한강의 또 다른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처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나서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모습,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군인들에게 피터지게 맞는 모습. 중학생이었던 내게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고 그래서 두려웠으며 또 화가 났었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한스러움을 위로하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은 한 사람이 아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죽은 이들을 관리했던 동호, 동호의 친구, 시위대를 이끌었던 김진수의 감옥 동기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물론 그들이 가슴 속에 품은 이야기들은 저마다 달랐다. 1980년 5월 18일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고, 그 이후 누군가는 친구의 죽음을, 누군가는 자식의 죽음을, 누군가는 자신의 양심을 어찌하지 못하고 살아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차분하게 읊어낸 이야기 속에는 하나같이 한스러움이 녹아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 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에게 대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일에  익숙한 듯, 
그는 술잔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소년이 온다> 中- 



 억울할 때, 서러울 때, 그리고 한이 맺혔을 때, 상대방에게 그 아픔을 되돌려주는 것이 쌓인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억울함과 서러움을 알아주고 또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굳이 여러 명의 화자를 책 속에 담아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던 이들의 ‘한스러움’을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하나의 창구가 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한 맺힌 이야기들을 들어줌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을 위로해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현재진행형”


 <소년이 온다>에는 화자만 여럿인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시점과 장소 역시 제각각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운동이 끝난 이후 감옥에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각자의 일상에서, 회사 사무실에서 등등. 하지만 그들은 그 날의 일이 꽤나 오래 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적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곷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소년이 온다> 中-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매년 5월 18일이 되면 열리는 추모 행사,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일상 속에 잠시 스쳐가는 일처럼 무심히 여겼다. 다음날이 되면 나는 5월 19일을 살았고, 그 다음날이 되면 5월 20일을 살았으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무심하게 지나쳤던 그 날의 일 때문에 매일이 5월 18일인 사람들이 있었다니. 그토록 자연스러운 일조차 쉬이 하지 못하는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대에 살아가고 있었다니. 1980년의 일이니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건만, 그럼에도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을 <소년이 온다>는 일깨워주었다. 살아있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 하루하루가 장례식인 사람이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5.18 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와 같은 문구를 수차례 보았지만 그 의미를 처음으로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5.jpg▲ -구글 이미지 발췌
 

 맨부커상 수상의 엄청난 열기로 이미 <소년이 온다> 역시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소년이 온다>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 책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의 책’이라는 커다란 타이틀에 가려 이 책이 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림자 속에 묻힐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걱정이 일었다. <소년이 온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만큼이나,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이에 동참했던 이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으면 했다. 이 책과 함께 그들의 넋을 함께 기렸으면, 뿐만 아니라 그 아픔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 역시 알아주었으면 했다. 

 
 5월 18일도,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일도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래서 때가 늦은 오피니언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다시 한 번 <소년이 온다>를 펼치는 순간 그것이 부질없는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오피니언이 언제 쓰이고, 언제 누군가에게 읽히는가는 중요치 않았다. 소년이, 5월 18일의 상흔이 여전히 그곳에 있는 한 말이다. 




반채은.jpg
 

**참고자료
http://news.donga.com/3/0703/20160518/78170943/1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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