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모배열의 멋지은이가 되는 일 [문학]

글 입력 2016.05.2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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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소설가의 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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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참 매력적이군요. 너는 참 매력적이야. 아, 그거 정말 매력적이었어. 저자 김연수도 책에서 말한다. 주인공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이야기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는 다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69쪽> 소설 수업에서도 적잖이 들을 수 있었다. 교수님은 “이 친구의 문장은 분명히 매력이 있는 거 같지요?”나 “인물을 매력적이게 설정한 것을 알 수 있어요.”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내가 가장 질려버린 단어이다. 매력, 매력, 매력? 매력적이라는 것이 뭔지, 도대체 어떤 것이 매력적인 건지, 나는 결국 학기(수업)가 다 지나도록 깨닫지 못했다. 이 두루뭉술한 말이 싫었다.
어느 날은 수업을 마치고 교수님의 소매를 붙잡고 여쭙고 싶었다. 대체 교수님이 매력적이라고 하시는 문장은 무엇 인가요! 예시를 들어 설명해주세요, 제발! 저도 알고 싶다구요, 저도 쓰고 싶다구요! 그러나 나를 정말로 답답하게 했던 것은 누군가의 문장이나 글에 “매력적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찝찝하지만, 이를 느낌적인 느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와 나만의 소통이라고 단정지어버렸다. 이 책은 그런 내 뒤통수를 갈겼다. 나는 얼얼한 머리를 부여잡고 그의 책을 폄과 동시에 다 읽었다. 김연수는 매력적이라는 자신의 표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매력적인 인물’을 ‘생고생할 때 그걸 지켜보는 독자의 내부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공감의 감정 없이는 작가는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어렵고, 독자는 한 페이지를 읽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69쪽의 다섯째 줄부터 쓰인 이 두 문장이 김연수의 소설을 말해줄 거라고 확신했다. 첫째로 나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어서 나는 단번에 그의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 매력적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구나. 매력적이라는 것에 답이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언제 매력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이러한 단면적인 이유보다 더 좋았던 점은, 그는 자신이 사용한 표현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으며 그러한 그의 글은 마치 누군가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궁금하다’며 의문을 품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설명해줄 수 있을 것처럼 견고해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문장은 ‘김연수만의 문장’임을 알렸다. 책의 전체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재치 있는 문장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은 저 한마디들이 나는 비밀을 단번에 알아챈 듯 더욱 스릴 있게 느껴졌다.
 
비슷한 문장을 더 예로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자신이 생각한 소설가에 대해 묘사한 문장이다. 소설가는 세상만사를 비틀고 뒤집어서 보는 사람이니까. 아흔아홉 명이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데, 왼쪽으로 가는 한 명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게 여기는 작자가 소설가다.<144쪽>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렇게 담을 수 있구나 하며 유쾌하게 읽었다. 동시에 나는 저 왼쪽으로 가는 한 명을 궁금해 할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의 문장에는 이러한 힘이 있었다. 내가 소설가임을 고민하게 하기보다는 그가 내민 명제에 나를 대입시켜 보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문장들이 이 책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책이 산문집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책이 산문집이라는 점에서 작가가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데 경솔했다고 느껴지는 점도 적잖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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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
 
 
산문집은 소설과 다르게 하나의 상황이나 사건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특정한 분위기를 이어갈 필요도 없다. 그래서 산문집을 읽을 때는 마치 작가와 대화를 하듯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작가 역시 편안한 듯 보인다. 김연수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소설가의 일’을 이야기해주기 위해 그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예시를 든다. 그러나 그 범위가 넓고 다양해서 읽는 나로서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울 때가 많았다. 물론 작가가 가진 지식에 미치지 못해 이해를 못했을 수도 있다. -속되게 말하자면 그리 현학적이지도 않았는데 네가 무식한 탓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내가 이해를 했느냐 못 했느냐와는 다른 문제다. 종종 그가 든 예시를 읽다보면 그래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주객전도가 되어버린 탓에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많은 지식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그가 말한 핵심내용들이 단번에 정리되어 떠오르지는 않았다. 우주를 관통해서 설명해야만 했던 퇴고의 중요성이나 철학관을 넘나드는 사례들을 보며 나는 잠깐 책에서 눈을 떼고 먼 곳을 응시했다가 다시 읽어야 했다. 예시를 드는 분야도 한 분야였다면 그리 복잡하지 않았을 터인데 가지각색 분야의 예시들이어서 오롯이 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주제로 향하는 글의 뼈대가 샤프심같이 너무 얇아서 부러질까 노심초사, 뼈대를 찾지 못할까 안절부절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이것과 연장선상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다. 글을 읽는 데는 모두 각자만의 취향이 있다. 작가가 가진 유려한 문장력이나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취향과는 약간 다르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핵심이다. 그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어렵게 쓰인 글이 좋은가, 쉽게 쓰인 글이 좋은가와 같은 논쟁인데, 이는 습작생인 문창과 동기들 사이에서도 고르게 갈리는 편이다. 누군가는 어려운 단어가 나오거나 단어의 배열이 복잡하고 끈질겨서 그것을 해독(?)하는데 짜릿함을 느끼는 가하면, 누군가는 스르륵 하고 쉽게 책장이 넘겨지는 책을 좋아한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고심한 티가 많이 나는 어려운 문장도 나름대로 -감탄하며-읽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평범한 일상어의 조합으로 생각지 못한 감동을 받았을 때 더 여운이 남는다. 하지만 작가는 책에서 소설가가 쓰는 단어를 강조하다가 지나친 사례를 들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강연회 같은 곳에서 “왜 그렇게 어려운 단어를 쓰십니까? 소설 읽으면서 독자들이 사전을 찾아봐야만 합니까?”같은 질문이 나왔다. 내 대답이란 “저도 사전 찾아가면서 썼으니까 여러분들도 사전 찾아가면서 읽는 게 당연하지요”였다.<177~178쪽> 소설에 이렇게 익히 알려진 단어보다 숨은 단어들을 더 많이 쓴 건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얻기 위해서였다.<178쪽>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적합하게 표현하기 위해 일상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데에는 백번 동의하는 바이다. 때론 독자의 입장에서도 생소한 단어가 조미료와 같은 역할을 해 이야기의 맛이 더 풍요로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단어를 찾느라 책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이 역시 주객전도된 모습이 아니겠는가?
 
<소설가의 일>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습작생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병아리 습작생인데 이와 같은 제목의 책을 읽으니 글을 쓴다는 자부심이 들어 괜스레 으쓱해지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일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이 일이 나의 일이어서 기쁘다.
심장이 뛴다. 나를 사로잡는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흥분된다는 증거다. 이윽고 탄성을 내지른다. 와……. 나는 이 소중한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감탄을 이끌어내는 예쁜 얼굴도 아니고, 노래 속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도 내게는 없다. 천재적인 머리가 아니라서 무언가를 개발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심청이 저리가라 하는 효녀도 아니다.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읽는 이들의 심장을 마구 흔드는 ‘자모배열의 멋지은이’가 되는 것. 내가 그랬듯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글을 쓰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 내가 보고 느낀 소설가의 일은 그랬다.


[김지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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