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들과 우리는 닮았다, 사랑도 삶도. [문학]

글 입력 2016.05.2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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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캠벨 '신화의 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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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나는 방학이 되면 거의 매일 집 앞에 있는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있었다. 이른 아침 먼저 도착해서 어린이 열람실 사서 선생님께서 문을 열러 들어가실 때 함께 들어가곤 했는데, 밤사이 꺼놓았던 모든 스위치들이 다시 켜질 때 그 열람실 안이 여름에는 참 덥고 겨울에는 참 추웠다. 어린이 열람실에 가서 나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엄마가 정해준 수학문제집을 풀고, 방학숙제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공부하기는 싫어서 항상 다른 또래가 올 때까지 만이야, 하고는 만화책을 읽었는데 그렇게 닳도록 읽던 만화책이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그땐 그 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18권(지금은 시리즈가 더 나왔을지 모르겠지만)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왜 그렇게 재미있었나 생각해보면 그때 내겐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가 참 파격적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아들을 먹어버리고, 머리에서 자식이 태어나고, 가족들 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혹은 주술로 전쟁을 하는 등 전혀 현재 삶과는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신화가 약 10년이 지나 다시 마주하니 현실이 되어 있었다. 상상과 오직 재미요소였던 신들의 이야기를, 캠벨은 우리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 속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고 그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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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되었던 부분은 사회가 신화의 의례로써 존속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신화에 우리의 삶이 녹아있는걸 넘어서서 우리가 실제로는 깊이 잘 알지도 못하는 신화를 본받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전해져 내려온다는 것의 위대함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반성해야할 일인 것 같기도 했다. 본 받아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신화에 대해 더 연구하고 깊게 살펴볼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그저 신의 이야기로서만 생각해왔다. 우리는 신화를 따르고 이는 곧 다시 우리 삶이 된다. 이 순환관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상상을 현실로 가능케하며, 다시 그것을 역사로 남긴다는 것이 신화와 현대를 잇는 가장 의미 있는 매개체인 것 같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신화가 이러한 외적인 부분들에만 관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인 면에서도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것이었다. 이는 진정으로 신화가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깃들여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배로 더한다. 그래서 신화는 우리 몸의 에너지가 은유적인 모습으로 현현한 것이라고 표현되며, ‘꿈’이라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내면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사실 신화가 내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해주었던 와 닿는 표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꿈은 우리의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꿈이다. 그러니 신화는 공적인 꿈이고, 꿈은 사적인 신화다.” 신화가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감싸고 있다는 사실은 어린이 열람실에서 읽었던 옛날이야기와는 사뭇 달랐으며 한층 더 진지하고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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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현재 우리가 같다고 가장 많이 느꼈던 부분은 사랑이야기였다.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은 모두에게 같은 떨림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도)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신도 예외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도 마음껏 사랑하고 또 눈물을 머금고 이별한다. 인간적인 모습이 가득 담긴 부분이었다. 이는 자신의 삶을 바치는데 의미를 찾는 영웅이나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자아를 찾는 과정인 천복과는 달리 유일하게 현대와 견주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꼭 리뷰에 넣고 싶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의 범위와 결혼이었다. 교수님이 내주신 사랑의 허용범위에 대한 주제에 내 의견을 정리하면서 나 역시 신화에 대해 한층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먼저 밝힌다. 사랑의 허용범위에 대해 조원들과 논하면서, 지금 사회에서는 당당할 수 없는 사랑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나는 그들의 사랑방식을 반대하는 쪽이었는데 오직 사랑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순수하게 그 자체의 사랑을 존중하는, (어쩌면 그래서 근친이나 동성이 가능한)신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역시 신화와 우리네 삶은 같지만, 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사회의 질서에 어긋나는 사랑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려보기도 했다. 이러한 사랑이라는 포괄적인 감정단어에 대해 논의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참 짜릿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재미로만 읽었던 그리스 신들과 더욱 친해지는, 그리고 이제야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였던 것 같아 첫째로는 기뻤다. 그저 흥미로 끝날 수 있었던 그들의 삶은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신기한 점이 많았다. 하나 더 얻은 게 있다면 다른 신화에 대한 관심이다. 다른 생활상을 담은 신화들도 읽고, 또 비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 있는 고뇌와 토론이었다고 생각한다. 신화에 대한 관심이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이 신화 속을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룬 이야기이고, 또 우리는 그들을 닮아가게 될 테니까.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더욱 더 풍성해질 때까지 나는 신화를 엿보고, 또 더 배우려 노력하려고 한다. 또 먼 훗날 내가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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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캠벨
 

[김지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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