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갭이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유 - 성공한 삶에 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5.20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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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이어(Gap year)”
: 학업을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하고 봉사, 여행, 진로 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


layout 2016-5-20.jpg▲ -구글 이미지 발췌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이지만, 영국을 포함한 여러 서구 지역에서는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하기 전 1년 정도의 갭이어를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갭이어를 가졌던 유명인으로는 엠마 왓슨과 로이킴이 대표적이며, 그 기간 동안 엠마 왓슨은 패션 기업 피플트리에서 패션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로이킴은 슈퍼스타k에 도전해 가수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9살이 될 때까지 입시 위주의 공부에만 치중하다보니 정작 대학에 와서는 전공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거나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는 이들이 많다. 학교에 틀어박혀 공부나 하던 학생들에게 이제 20살이니까 너의 진로를 이야기해보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우리나라 사회 초년생들의 현실을 고려해봤을 때, 갭이어는 취지로 보나 특성으로 보나 굉장히 바람직한 문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갭이어에 대한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같다.  



 

 아직 대학생인 나는 휴학을 하고 1년간의 갭이어를 보내고 있다. 내가 갭이어를 시작할 때 정했던 목표는 두 가지였다. 나 자신과 더욱 친해질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것. 이를 위해 나는 학교에서 벗어나 대외활동, 여행, 운동, 역사 공부 등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다. 


o-CRITICISM-facebook.jpg▲ -구글 이미지 발췌
 

 하지만 휴학 소식과 계획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나의 1년을 그냥 ‘노는 것’, ‘시간낭비’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시간에 공부나 하라며 핀잔을 주는 선배도 있었다. 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분명 계획이 있었고 그게 보편적이지는 않을지언정 질타를 받을만한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갭이어에 대해 이토록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물론 20-30대가 처한 최악의 청년 실업난이라는 현재 상황과 이 문제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학 생활의 끝에 밝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면 아무래도 1년 쯤 갭이어를 갖는 것에 대해 훨씬 관대하고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어쩌면 경제적인 상황을 넘어서서 ‘성공한 삶’에 대한 사람들의 정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방관, 선생님, 꽃집 사장님, 식당 주인, 웨이터, 외교관, 미술가, 미용사, 의사, 판사

 위의 단어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을 담아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 란에 한 번 쯤 써봤을 법한 단어들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장래 희망도 이처럼 다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삶을 꿈꾸었고, 성공한 삶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위의 단어들에서 성공한 삶이라고 불릴 법한 단어들을 간추릴 수 있다. 사람마다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선생님, 외교관, 의사, 판사

 정도로 말이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시와 같은 삶, 이에 더해 공무원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어른이 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예전엔 지극히 주관적이었던 성공의 의미는 언젠가 부터 지극히 객관화된 것만 같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이 아닌, ‘안정적이고 보수가 좋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으로 말이다. 


9549034-Bridge-to-the-sucess--Stock-Photo-success-motivation-strategy.jpg▲ -구글 이미지 발췌
 

 이렇게 되고 나면 성공하기 위한 길은 자연스럽게 단순해지고, 획일화 된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한 삶으로 가는 방법은 이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정리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종래엔 성공을 위한 길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부수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고3에게 수능 공부가 아닌 해외여행은 시간낭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성공을 위한 길을 정하고 오로지 거기에 집중하며 끈질기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닌 ‘사회가 말하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래서 그 길을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달라진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선생님이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그것이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휴학 소식을 대학 동기, 선후배, 그리고 친척들까지 수 십 명의 사람들에게 알리다 보니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었다. 


“자격증 준비하게? 공무원 시험 준비하게?”   

 
 놀라울 정도로 같은 질문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받곤 했다. 둘 다 아니라고 답했을 때 호기심과 한심함이 반씩 섞인 표정을 보는 것은 덤이었다. 


 사람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쩌면 내가 사람들이 정해놓은 성공한 삶을 위한 길에서 한참 벗어난, 부수적인 일들을 하기 위해 갭이어를 택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되니까, 취업을 위해 굳이 역사 공부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들의 눈에 나의 갭이어는 시간낭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6105637-Isolated-diversity-tree-hands-illustration-for-greeting-card-file-layered-for-easy-manipulation-and--Stock-Vector.jpg▲ -구글 이미지 발췌
 

 장래 희망 칸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였던 어린 시절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다르지 않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생각하는 성공한 삶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갭이어를 옹호해야 한다는 것도, 사회가 말하는 성공을 쫓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군가에겐 공무원이 되는 것이 성공한 삶인 것처럼, 누군가에겐 꽃집 사장님이 되는 것이 성공한 삶일 수도 있다는 것을, 성공한 삶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반채은.jpg
 

**참고
http://news.joins.com/article/12232580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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