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을 비추던 빛 속에서 짐승을 떠올리다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5.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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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비추던 빛 속에서 짐승을 떠올리다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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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다량 함유


 불안한 시선으로 흔들리는 차 밖의 풍경. 화면이 한 차례 바뀐다. 병동 안의 한 남자가 일주일 간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다 깨어난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주위의 소리가 먹먹해진다. 다시 화면이 바뀐다. 시간이 흐른 듯 하다. 석 달 전 사고 후 폐차장으로 옮겨진 차를 찾으러 온 남자. 이미 폐차된 차의 부품이라도 얻고자 하는 그. 기억을 잃은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기억의 조각들을 말이다. 다시 화면이 바뀌고 차창을 두드리는 소녀. 남자의 잠을 깨운다. 미처 잠이 다 깨지 않아 몽롱한 의식 속 아이들이 차창을 두드린다. 정신을 차려보니 온데간데 없는 그들. 정신을 차리고 남자는 갈 길을 재촉한다. 도로를 달리던 심란한 그의 차 플래시 속에 들어온 죽은 듯한 개 한마리. 황급히 핸들을 돌려 피한다. 한참 도로 위를 달리다 뒷 차가 플래시에 켠 채 그의 차를 쫓아온다. 그러다 문득 백미러를 통해 발견한 손자국들. 혼란스러워하다 방향감각을 잃고 이내 사고가 난다. 차가 뒤집힌다. 그 속에서 튕겨져 나온 그의 흐릿한 시야에 보이는 개 한 마리. 그는 상처투성이 이에도 불구하고 개를 피해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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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도망가는 그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과거로 화면이 바뀐다. 웬 젊은 남자가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는 듯 보인다. 이내 즐겁게 웃는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듣자 찾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그 소리를 따라간다. 젊은 남자의 시선을 이어가자 소녀의 몸이 자연스레 부분부분 부각된다. 이윽고 막다른길에 다다른 소녀를 보자 남자의 눈빛은 묘하게 바뀐다. “잡았다.”라는 한 마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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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도망친 아이는 막다른 길에 막히고 만다. 그러자 묘한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걸어오는 남자.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묘하게 달뜬 그의 눈빛이 화면 중앙에 자리 잡는다. 마치 짐승의 눈빛과도 같던 젊은 남자의 눈빛. 그러나 갑자기 뒤에서 개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휙 돌아본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는 듯 한 개의 표정. 화면이 교차되기 전 늙은 남자를 쫓아오던 개의 표정과 흡사하다. 다시 화면이 바뀌고 숲으로 아이를 데려가는 남자. 싫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을 무시한채 차로 데려간다. 그리고 이내 흔들리는 차체가 화면을 채운다. 잘못했어요. 집에 돌려보내주세요. 무서워요. 간곡한 소녀의 요청에도 남자의 달뜬 숨은 멈추지 않는다. 이윽고 남자는 소녀를 탐한다. 절규 속에 소녀의 갈 곳 없는 소녀의 손은 수없이 창문을 짚으며 나가기 위해 몸부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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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화면이 바뀌고 괴로운 듯한 남자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윽고 뒤에서 플래시를 켠 차가 나타난다. 화들짝 놀라 남자는 차를 돌린다. 플래시를 켠 채 경적을 울리며 뒤따라오는 차. 뒤돌아 차 안 가득 들어오는 플래시에 눈을 찌푸리다 문득 소녀가 남긴 절규하는듯한 손자국을 발견한다. 황급히 운전대를 잡던 손으로 지워보려 하지만 닿지 않는다. 그리고 휘청이는 차를 바로잡으려다 개를 치게 된다. 피를 흘리며 처참하게 쓰러진 개. 그리고 화면이 교차되며 다시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자를 비춘다. 다시 폐차장으로 화면이 바뀌고 폐차장을 어슬렁 거리는 개를 보자 무언가 떠오른 듯 손을 벌벌 떨며 남자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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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중요한 내러티브로 화면 교차 방식을 선택한다. 병동-폐차장-사고 당시-과거의 네 장면을 교차해서 편집하며 비서사적으로 사고의 전말을 보여주는데, 이처럼 불규칙하고 비서사적인 전개와 영화 내내 불안한 주인공의 시선들이 영화 전체의 불안감으로 확장된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늙은 남자가 과거에 저지른 소아 성폭행이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1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동안 전개하기에는 상당히 무거운 내용인데, 영화는 이를 전달하기 위해 ‘개’라는 매개체를 내세운다. 교체되는 4개의 화면 속에서 등장하는 개는 자칫 난잡할 수 있는 장면 장면을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개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도로 위 죽어 있는 개는 현실과 과거의 기억을 직접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과거와 똑같은 상황이 점철되며 영화의 내러티브가 과거로 들어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개의 눈이 지속적으로 클로즈업되는데, 이는 가장 짐승 같고 원초적이며 비인도적 행위를 저지르고야 마는 남자의 추악한 모습을 곧이 곧대로 바라보던 담던 개의 눈을 통해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그 모습을 가감없이 바라볼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녀를 보며 달뜬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젊은 남자의 시선과 개의 시선을 교차 편집하고, 사고를 당해 피를 철철 흘리는 늙은 남자와 죽어있는 개의 모습을 교차 편집하며 등장하는 개를 통해서 과연 누가 인간이고 짐승인가라는 의문을 발견하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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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결코 이렇다할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플래시 속에 비친 적나라하게 비친 젊은 남자와 늙은 남자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 한숨을 쉬는 그의 모습과 소녀의 손자국을 지우려는 젊은 남자의 모습에서 스스로 저지른 행위에 대해 부정의 모습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몇십 년이 지나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늙어버린 남자에게도 소녀의 환상을 보여주며 아직까지 추악한 행위에서 구제되지 못하고 얽매이고 괴로워하며 도망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과연 인간이 저지르는 추악의 행태가 무엇인지, 짐승과 구분되던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추악함의 말로는 무엇이며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암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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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누가 인간이고 누가 개인가? 
그 답은 당신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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