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숲'에 관한 단상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5.0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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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개인적으로 ‘산’보다 ‘숲’이라는 단어의 어감을 좋아한다. ‘산’이라 하면 정복해야할 무엇, 멀리서 우뚝 솟아 있는 어떤 객관화 된 존재로 느껴져서 친근감을 느끼기가 힘들다. 반면, ‘숲’이라 하면 산과는 또 다른 감성이 전해진다. 발음부터가 입이 동그랗게 모아지다 다물려 숨이 혀끝으로 모이기 때문인지 안정적이고 포근한 느낌이다. 그리고 실제로 ‘산’보다 ‘숲’이라 했을 때, 더 복잡하고 울창한 생태계가 그려지기도 하다. 어쩐지 동화적이기도 하고. (잠자는 산 속의 공주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한 음절에 불과하지만 많은 이미지들이 함축된 단어라 생각한다. 


  학창시절 때부터 우리는 숲의 기능에 대해 많은 정보를 배워왔다. 거대한 자원의 보고이자 맑고 깨끗한 물을 저장하는 녹색댐 기능, 야생동물들의 완벽한 터전 등등 숲이 세상에 선사하는 혜택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숲이 인류 문화적인 유적지이자 지금까지도 문화적 현장으로서의 기능을 인간에게 제공한다는 인식은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은 것 같다. 언제나 숲은 도시 그 너머의 병풍 같은 존재다. 그러나 숲은 단지 자연적, 지질학적인 공간이 아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숲에서 사색을 하고, 건강을 찾고, 의식주나 경제활동에 필요한 원료를 채취해 문명 창조를 위한 지혜를 얻어왔다. 많은 문학인, 예술인, 문화인들에게 깊은 영감을 선사했고 그런 영감으로부터 탄생한 시, 소설, 동화, 신화, 음악, 건축물들을 보면 실로 숲의 존재가 갖는 의미는 인간의 삶과 사고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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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자연적, 자연친화적인 것보다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에 대한 신뢰가 더 높다. 먹을 것부터 비롯해 모든 것을 시장에 의존한다. 마치 시장이 모든 것의 원천인 것처럼 말이다. 식료품점에 진열된 식품들이 어떤 과정으로 식탁에 오르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적 검증이 없는 민속적, 토속적 생활에 대한 편견은 말할 것도 없다. 언젠가는 놀라운 대자연 혹은 동네 뒷산 만한 스케일의 숲마저도 돈을 내고 4D영상으로나 접하게 되진 않을지 걱정이다. 인간의 이성과 자연 중 무엇이 우위에 있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자연에 관한 인간의 단절적인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편의에 익숙해지고 인위적인 것들에만 길들여진 인간은 감수성부터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기계음만 듣고 포장도로만을 걸어온 사람들은 자연의 소리에, 자연적인 것의 질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미물들, 다양한 동식물들에 대해서도, 들꽃의 이름들을 알고 계절의 변화에 예민한 사람들과는 감수성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숲이 안겨주는 정신적, 육체적, 종교적, 문화적 가치에 대한 고찰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가치를 놓치고 있는지 진지한 삶의 자세를 갖도록 한다. 모두가 히피족이 될 이유는 없지만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아마존 열대우림이나 숲을 통째로 태우는 식의 목장을 늘리는 일을 바라보면서도 왜 우리가 숲을 지켜야하는지를 모른다면 그건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멀리 외국의 큰 사례들을 보지 않아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가리왕산 활강 경기장 건설을 둘러싸고 환경단체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최근까지도 꾸준히 갈등을 빚어 온 것처럼 수많은 환경 문제들이 바로 눈앞에, 주변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숲에 관한 갈등과 현상을 이해하고 자연에 관련된 정책이나 계획 등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교육이 제대로 필요하다. 자연의 문제에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참여할지에 대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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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진지한 삶을 살기 위해 숲으로 간다.’ 그만큼 숲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간의 원초적, 자연적 본능을 성찰하는 데에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래에 들어 숲 체험, 숲속 연주회 같은 문화예술 공간으로도 숲이 사용되고, 숲의 중요성과 혜택을 알리는 숲 해설사가 등장하기도 하고, 휴가철 휴양림이 각광받는 현상이 자리 잡은 것을 보면 자연에 관한 친근감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숲은 인간의 주변적 존재다. 숲이 인간을, 인간이 숲을 치유하는 사연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흙길과 잔잔한 야생화의 감동, 커다란 나무의 경이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사이를 쏘다니는 바람과 미세한 움직임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처한 위기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이들이 우리 곁에도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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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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