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래도록 스며드는 아기자기한 따뜻함,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5.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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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는 온몸으로 암이 전이되어 시한부 인생인 엄마 사에가 딸 하나를 위해 요리를 가르쳐주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미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모두 보여주니 패를 다 알고 시작하는 것 같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천국과 지옥,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유로운 웃음에 있어 군데군데 새롭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아내 치에, 남편인 싱고, 그리고 딸 하나로 이루어진 한 가족입니다. 그리고 이 세 명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단단하고 강한 존재입니다. 엄마인 사에와 딸 하나에 초점을 두는 게 당연하겠지만 막상 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남편인 싱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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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살 갓 성악과를 졸업한 치에와 한번 이혼하고 신문기자인 34살 '싱고'의 첫만남부터 결혼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왜 싱고와 결혼했나 삐딱하게 보기도 했습니다. 11살이나 차이나는 어린 사에와 결혼에 성공하다니 싱고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어딘가 얼빠진 것 같이 헤실거리는 그의 어떤 점이 매력이었을까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얼빠진 듯하지만 꾸준하고 일관된 모습이 그를 멋진 남자로 만들었다는 것을요. 사에가 이미 결혼전부터 악성 유방암으로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 것을 알고도, 그 암이 재발가능성이 매우 높고 암을 예방하기 위해 아이는 꿈도 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걱정도 고민도 없이 치에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예비 장인어른 앞에서는 부들부들 떨면서 물도 엎지르고 실수투성이같은 허당인데 막상 장인어른이 정말로 아픈 자신의 딸과 결혼하고 싶은지 세 번이나 물어볼 때도 싱고는 멈칫거리지도 않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던 그들에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아이가 생겼습니다. 사실 전처와도 아이를 낳는 문제 때문에 헤어졌던 지라 아이가 생겼는데도 병 때문에 아이를 지우겠다는 치에의 이야기에 싱고는 서운하더라도 아내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아이를 낳기로 했다는 그녀의 말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축복같게도 아이가 무사히 세상에 태어났고 다시 암이 재발하면서 지옥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 2시간 여 걸리는 치료도 마다하지 않고 너무 많은 치료비가 들어도 내색하지 않습니다. 좋은 몸상태를 위해서 일을 하면서도 가사일도, 밤중에 아이를 돌보는 일도 그는 꾸준하게 해냅니다. 그는 소위 말하는 넓은 어깨에 강인한 체력을 가진 남성미가 넘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남자보다도 넓고 강한 마음과 꾸준함을 가진 멋진 남편이자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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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는 영화에서 귀여움 폭격기라고 할 수 있는 딸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는 귀여움만큼이나 씩씩함을 갖고 있습니다. 고사리 손으로 엄마와 함께 첫 미소시루를 만들고 몸에 좋은 현미과자를 만드는 하나를 보면서 찔리기도 했습니다. 하나가 독특한 상황에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딸이 만든 음식을 맛보는 부모님의 심정은 얼마나 뭉클할까요. 저는 보육원을 다니는 하나보다 머리가 몇 개가 큰데도 된장찌개 한 번 끓여드리지 못해서 더 찔렸던 것 같습니다. (그 많은 나이는 어디로 먹은건지!)무려 하나는 엄마 치에가 콘서트를 준비할 때 기운내라고 미소시루를 보온병에 담아 왔던데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 귀찮고 다른 걸 하고 싶어서 미소시루는 뒤로 미루고 싶어도 엄마와의 약속이라 꼭 지키는 씩씩하고 멋진 딸 하나! 저는 생신 때 멸치육수를 내서 국수를 해드린 적은 있지만  미소시루에 비할까 싶네요. 하나를 보면서 요리솜씨가 좋은 어머니께 저도 요리를 배워서 짠 하고 만들어 드려야겠다 다짐하게 됐습니다. 저에겐 엄마하면 생각나는 음식이 엄마표 간장떡볶이, 비지찌개와 고추장찌개, 열무김치, 애호박나물..정말 많네요. 한 상차리게 될 날 기분이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가 이렇게 멋진 아이로 클 수 있었던 건 따뜻한 사랑을 가득 받고 자라서는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치에가 무대에서 부른 노래 '만점별'에는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말이 참 고맙고 따뜻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 해당되는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 아들을 원하다가 딸로 태어나서 별로 축하를 많이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한 구석에 걸리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에이 옛날얘기다 하지만  가끔은 축복받지 못한 아이,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아닌가 하고 서러워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백번 축복받는 환경이나 상황에서 찾아오진 않겠지만 듣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말이라 참 좋습니다.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 존재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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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열심히 견디었던 멋진 아내이자 엄마인 치에입니다. 생각해보면 사에만큼 힘들고 지쳤을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대학다닐때만 해도 동생들 챙기느라 정신없이 보내다가 겨우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부턴 갑자기 찾아온 암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가 생겼을 때도 아이가 좋으면서도 또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암이 재발할 거라는 그 고민때문에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습니다. 죽는게 더 나을 것 같은 항암치료를 가족을 생각하면서 버텨내었던 사에는 마지막엔 온몸에 다시 전이된 암에게도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너무나 즐거워하면서 암이 자신을 너무 우울하게 잡아먹지 않도록 웃음을 찾으려 애씁니다. 자기 자신은 물론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블로그 활동도 하고 암은 너무 단어의 느낌이 우울하니 암대신 '퐁'이라고 바꿔서 불러보자고 하기도 합니다. (자궁경부암, 후두암이 자궁경부퐁, 후두퐁이 되고 암을 예방하고 조심하자라는 말이 퐁을 예방하고 조심하자라고 바꾸니 얼마나 가볍고 귀여워지던지요!) 딸 하나가 자신을 기억할 수 있게 온 몸이 아픈데도 멋지게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며 빛나는 모습을 보면 그녀는 공연장 무대뿐만 아니라 그녀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도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강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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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에는 '나는 참 운이 좋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녀가 몇 번 재발했던 암이 나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운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서 운은 싱고와 치에, 하나가 모두 노력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 훨씬 큽니다. 노력하는 그들에게 주변 사람들 역시 남몰래 따뜻하게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에가 가르쳐준 요리와 요리노트, 노래와 블로그에 남겨둔 수많은 일상의 기록은 싱고와 하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따뜻함을 전해주었습니다. 세상과 마음이 차갑게 느껴질 때 잔잔하게 스며드는 따뜻한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를 추천합니다.

-이 글은 문화의 '소통'을 강조하는 ARTinsight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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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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